달님의 노래
“나푸름. 너 양치질 안 했지!”
“했어.”
“하기는. 얼른 이리 안 와?”
엄마의 호통이 정말 싫습니다. 우리 엄마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아니, 내가 양치질을 안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했다고 하면 내 말을 한 번은 믿어줘도 되는 거잖아요. 꼭 저렇게 나를 혼내고 그런다니까요. 엄마는 칫솔에 매운 맛 치약을 듬뿍 짜서 내 방으로 가져왔어요.
“이거 내 치약 아니잖아.”
“네 치약 맞거든. 나푸름. 너 이제 초등학생이야. 초등학생 언니. 그런데 무슨 딸기 맛 치약을 달라고 하는 거야?”
“치 언니는 무슨. 알았어요.”
어쩔 수 없이 매운 맛 치약이 듬뿍 짜져 있는 칫솔을 받았어요. 얼마 전에 동생이 태어나서 언니가 되었거든요. 언니가 되어서 이런 걸 가지고 엄마랑 싸우는 것도 싫었어요. 매운 맛 치약에 입 안에 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꾹 참고 양치질을 했어요.
“거 봐. 할 수 있다니까. 괜히 투정이나 부리고 말이야.”
“그래도 맵거든. 엄마는 내가 어떤 치약 쓰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어이구. 너는 엄마가 다 해줘야 해? 너 혼자서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어?”
“다 혼자서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
“뭐라고? 나푸름. 너 지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엄마가 없어도 된다는 거야?”
“그래. 매일 나에게 잔소리만 하고. 엄마는 나보다 보라가 더 좋잖아. 아니야?”
엄마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 봤어요. 혹시나 꿀밤이라도 콩 하고 때릴까 무서웠는데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혼이 나지 않아서 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그냥 방으로 들어가니까 되게 미안하고 그런 거 있죠?
“그러니까 나한테 막 뭐라고 하지 말지. 치.”
“너희 엄마도 너한테 막 잔소리하고 그래?”
“그럼. 엄마들은 원래 잔소리하라고 있는 사람이야.”
“정말 싫다. 나는 우리 엄마가 보라만 자꾸 신경을 쓰는 거 있지?”
푸름이는 입을 쭉 내밀고 오렌지 주스를 마셨어요. 친구들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에 제일 즐거웠어요. 괜히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요. 분명히 엄마는 화를 잔뜩 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우리 부천역 가서 화장품 보자. 머리끈도 보고.”
“미안. 나 미술 학원 가야 해서.”
“나도 오늘 보습 학원가야 하거든. 오늘 수학 숙제까지 있어.”
“그래? 알았어. 내일 학교에서 보자.”
“미안해.”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 겨우 아파트 앞에 왔는데 마음이 콩콩콩콩 뛰는 거 있죠? 그래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데 집이 조용해요. 평상시라면 엄마가 늘 라디오를 듣고 있을 텐데 말이죠. 안방 문을 빼꼼 열어도 엄마가 없어요.
“어디에 간 거지?”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하품이 자꾸만 나왔어요. 그래서 침대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까무룩하고 잠이 들고 말았어요.
“엄마.”
하품을 하고 방 밖으로 나왔는데 집이 온통 캄캄했어요. 엄마가 아직도 안 온 건가? 아빠는 한참 더 늦은 밤에야 오거든요. 텔레비전을 틀어서 만화를 보고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와서 소파에 앉았어요. 엄마가 나 때문에 삐친 건가? 사실 뭐 아무렴 어때요? 엄마가 없으니까 만화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이렇게 간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잖아요.
“엄마가 없으니까 너무 좋다.”
간식도 다 먹고 만화도 다 봤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혹시나 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엄마는 바보처럼 핸드폰을 놓고 간 모양이에요. 안방에서 엄마 핸드폰이 울렸거든요.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자꾸만 흐르다 보니까 더 엄마가 보고 싶고 그런 거 있죠? 그래도 아빠한테 전화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괜히 내가 더 잘못해서 그런 것 같고, 아빠가 나를 혼낼 것 같았거든요.
“엄마가 뭐 오겠지.”
혼자 있는 집이 괜히 무서워서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고 방으로 왔어요.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았는데 달님이 보였어요.
“달님. 엄마가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 걸까요?”
“푸름이는 엄마가 푸름이를 싫어하는 거 같니?”
깜짝이야. 달님이 나에게 대답을 해줬어요. 놀라서 눈을 깜빡였는데 정말 달님인 모양이에요. 엄마인가 해서 거실까지 나가봤는데 거실이 캄캄했거든요.
“네. 엄마는요. 저보다 보라를 더 좋아하고. 늘 저에게는 잔소리만 하시거든요.”
“우리 푸름이가 이제 언니가 되었으니까. 엄마가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저도 아직 엄마가 좋다고요. 그런데 엄마는 늘 나보고 언니니까 참으라고 해요. 지난 번에는 제가 아기 때부터 좋아하던 인형까지 빼앗아서 보라를 줘버렸다니까요?”
“이런. 엄마한테 그게 싫다고 이야기를 해보기는 했니?”
“아니. 뭐. 그리고 솔직히 동생이니까 주는 게 이상한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럼 우리 푸름이가 더 좋은 마음으로 동생에게 인형을 준 걸로 하면 안 될까?”
달님의 말을 듣고 보니 이것도 맞는 거 같아요. 그냥 동생에게 선물을 해준 거라고 생각을 하면 되는 거였는데. 괜히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더 싫은 거 있죠?
“엄마도 푸름이한테 많이 미안하고 그럴 거야. 푸름이를 먼저 챙겨주고 그래야 하니까. 그런데 못 그러고 있으니까 엄마도 걱정이 많을 텐데. 푸름이가 엄마 말을 좀 잘 들어주면 어떨까? 그러면 엄마도 걱정도 줄어들 거 같은데.”
“엄마는 늘 엄마 마음대로 한다고요. 나는 아직 매운 치약으로 양치질을 하기 싫은데. 그 매운 치약을 듬뿍 짜서 주는 거 있죠? 입 안에서 불이 나는 거 같았어요. 달님도 매운 치약으로 양치질을 하세요?”
“아니. 나는 노란색 달님이라서 레몬 향이 듬뿍 나는 달콤한 치약으로 양치를 한단다. 나도 솔직히 매운 치약은 별로 아 좋아해.”
“그거 봐요.”
달님도 나랑 같이 매운 치약을 싫어하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엄마는 왜 자꾸만 그렇게 매운 맛 치약을 주는 걸까요?”
“이제 멋진 언니가 되라고 그러는 거지. 푸름이도 이제 스스로 매운 치약으로 양치를 해보는 게 어때? 다른 친구들 중에서는 이미 매운 치약으로 양치질 하는 친구도 있는 것 같던데?”
“달님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나는 달님이니까. 온 세상이 다 보이거든.”
“우와. 나도 달님이 되게 부럽다.”
하늘에서 빛이 나면서 온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으니까 달님은 정말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해님은 낮이 되게 더워서 힘들겠지만 밤은 시원하잖아요.
“나도 엄마한테 화내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자꾸만 내 편을 안 드니까 화가 나요.”
“그럼 푸름이는 엄마랑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이전처럼 엄마가 간식도 꼭꼭 챙겨주고. 보라랑 놀다가도 나랑 이야기도 해주고. 만화도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푸름이가 더 씩씩한 언니가 되면 엄마가 그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을까?”
“정말로요? 달님이 볼 때는 그래요?”
“응. 내가 보기에는 푸름이는 엄마를 정말로 사랑하는 거 같아. 그리고 엄마도 푸름이를 정말로 사랑하는 거 같아. 그럼 두 사람 정말 사이가 좋을 수 있잖아. 엄마도 보라 때문에 힘들 수도 있고. 그러니까 푸름이가 우리 엄마를 조금만 더 도와주자. 알았지?”
“흐음. 엄마가 그러면 정말 나를 전처럼 사랑할까요?”
“푸름이는 엄마가 푸름이를 전처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네. 엄마는 늘 보라가 우선이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괜히 기분이 우울해지는 거 있죠? 엄마는 요즘에 늘 보라 먼저. 보라야. 보라야. 저는 이제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이제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에요.
“아니야. 푸름아. 엄마도 푸름이를 많이 사랑하는데. 보라가 아직 아기니까 더 많이 울고 그러니까 그런 거야. 푸름이 간식도 엄마가 다 챙기고 그러잖아.”
“엄마가 집에 왔으면 좋겠어요.”
“어? 엄마 푸름이 혼자서 한 밤 코 자고 나면 돌아오실 거야.”
“정말로요? 그런데 나 혼자서 자는 거 너무 무서운데.”
“뭐가 무서워? 내가 밤새 밝게 만들어줄게.”
달님은 달님의 말처럼 정말 밝았어요. 조금 무서웠지만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꼭 감았어요. 그리고 달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잠에 빠져들었답니다.
“나푸름. 안 일어나?”
“어? 엄마 일어났어요.”
엄마의 목소리에요. 나는 밖으로 토끼처럼 뛰어가서 엄마의 허리를 꼭 안았어요.
“엄마 사랑해.”
“얘가 왜 이래? 그래. 엄마도 우리 예쁜 딸 사랑한다.”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면 이마에 뽀뽀를 해줬어요. 뭐 보라가 울어서 바로 보라에게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늘 달님처럼 나를 지켜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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