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맛 사탕
“오늘은 우리 반에 전학생이 있어요.”
왁자지껄한 아이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이 교실 앞으로 향했어요. 곧 외국인처럼 생긴 아이 하나가 교실로 들어왔어요.
“뭐야? 쟤 원주민 아니야? 원주민?”
“맞아. 피부 까만 것 좀 봐.”
“아아아아.”
장난기 많은 민규의 외침에 반에 웃음이 터졌어요. 선생님이 무서운 표정을 지었지만 민규는 선생님이 하나도 무섭지 않은 모양이에요.
“안녕. 나는 리카야. 내 엄마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고. 잘 부탁해.”
리카라는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숙였어요.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 리카를 오게 했어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우리 엄마는 네팔 사람이라서 나는 새까만데 리카는 너무나도 하얬거든요.
“안녕. 나는 리카. 너는 이름이 뭐니?”
“미향이.”
“미향이.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자.”
“어? 어.”
리카는 나를 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에요. 다른 친구들은 다들 나를 이상하게 생각을 하거든요. 나는 까만 사람이니까. 괜히 리카에게 심술이 나서 책상에 연필로 정성들여서 선을 그었어요.
“이 선 넘지 마.”
“어?”
“여기까지가 내 책상이고. 거기가 네 책상이니까. 넘지 말라고.”
“알았어. 네가 싫다고 하면 넘지 않을게.”
리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책을 꺼냈어요. 괜히 나만 이상한 것 같아서 더 속상했어요. 아니 도대체 왜 선생님은 나랑 리카랑 같이 앉힌 걸까요?
“리카 걔 엄마도 그러면 외국인인 거야?”
“응. 미향이랑 같이.”
화장실로 가는데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너네 나라로 돌아가!”
“쟤 이름은 원래 뭔데 미향이래?”
“몰라. 외국인이면서 자기가 미향이라고 그러더라.”
괜히 눈물이 흐를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여기에서 울면 지는 거라고. 늘 아빠가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친구들을 봤어요.
“우리 아빠가 한국인인데. 그럼 내가 한국 사람이지 어느 나라 사람이야?”
“뭐래? 새까매가지고. 너는 엄마가 외국인이잖아. 그러면 너도 외국인이지.”
“엄마가 네팔 사람이기는 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거든? 내 이름은 전미향이야. 외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고.”
“거짓말. 너처럼 새까만 한국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다들 왜 미향이에게 그러는 거야?”
그 순간 리카가 뒤에서 나타났어요. 리카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친구들을 바라봤어요.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을 하면 할머니가 짓는 표정하고 비슷했어요.
“다들 미향이랑 친구면서 왜 그렇게 미향이를 괴롭히고 있는 건데?”
“너도 외국인이라고 미향이 편을 들고 있는 거야?”
민규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어요. 나는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지만 리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손을 꼭 잡고 아이들을 마주했어요.
“여러 사람이 연약한 여자를 괴롭히는 것은 그럼 좋은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너는 도대체 뭔데 그러는 거니? 갑자기 전학을 와서.”
친구들이 뭐라고 하고 사라지고 나서야 리카는 내 손을 놓았어요. 나는 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리카는 씩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어요.
“미안해. 네 일에 내가 끼어들면 안 되는 건데. 하지만 이건 비겁한 일이잖아.”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애들이 더 괴롭혔을 거야.”
“앞으로 쟤네들이 나를 괴롭히면 말 해. 알았지?”
리카는 밝게 웃으면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사탕 하나를 건넸어요. 노란 색 레몬 맛 사탕이었어요.
“나는 레몬이 좋거든. 내 머리카락 색처럼.”
리카의 말처럼 리카의 머리카락은 샛노란 색이었어요. 마치 레몬처럼요. 입에 레몬 맛 사탕을 넣었는데 엄청 신 맛이 강했지만 또 달콤하기도 했어요. 나도 리카를 보며 밝게 웃어줬어요. 리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미향아. 집에 같이 가자.”
“리카 너도 이쪽으로 가는 거야?”
“어. 이 길을 쭉 따라 가면 내가 이사온 집이 있거든.”
이상하다. 이쪽으로 가면 집에 딱 한 집만 있거든요. 우리 할머니도 정말 무섭지만 우리 할머니보다도 더 무서운 슈퍼 호랑이 할머니가 사는 집. 그런데 리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에요.
“너 정말 이쪽으로 가는 거야?”
“응. 왜? 이쪽으로 가면 안 되는 거야? 나랑 같이 가는 것이 싫어?”
“아니. 여기에 사시는 분이 완전 무서운 할머니 한 분 밖에 없거든.”
“아. 그게 우리 할머니야. 우리 할머니 정말 엄청나게 무서운 분이거든.”
“어? 리카 너는 그럼 집에서 어떻게 지내? 할머니가 완전 무섭게 하시지 않아?”
“그렇지 않아. 우리 할머니 그래도 되게 좋은 분이야. 나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리카의 말이 정말 신기했어요. 나는 슈퍼 호랑이 할머니가 늘 무섭기만 했거든요. 우리 집이 먼저여서 리카에게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리카가 멀어지자 조심스럽게 리카의 뒷모습을 봤어요. 슈퍼 호랑이 할머니가 리카를 혼내지 않을까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슈퍼 호랑이 할머니가 평소와 다르게 다정하게 리카를 꼭 안는 거 있죠?
“우리 강아지 왔누. 얼른 들어와. 어여.”
우리 동네 애들에게는 늘 무섭기만 한 할머니인데. 리카에게는 다른 모양이에요. 그래도 리카가 막 혼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다행이에요.
“엄마. 오늘 우리 반에 리카라는 우즈베키스탄 엄마를 둔 애가 전학을 왔어.”
“아. 옆집 할머니. 집에. 온. 아이를. 말. 말하는 거지?”
“응.”
우리 엄마는 아직도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요. 그래서 늘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말한답니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랑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아요.
“나는 옆집 할머니가 되게 무섭다고만 생각을 했는데. 리카에게는 아니더라고.”
“리, 리카가 누구야? 옆집 할머니. 집에. 온 아이가 리카야?”
“응. 머리는 샛노란 색이다. 그리고 되게 착하고 멋져. 잘 생기기도 하고.”
“우리 미향이가. 리카를 좋아하나. 보다.”
“에? 아니거든.”
엄마의 말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엄마는 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곤 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더 많이 혼나기도 하고요.
“엄마 나는 숙제할게요.”
그리고 후다닥 방으로 돌아왔어요.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거든요. 심장도 콩닥콩닥.
“엄마는 괜히 그런 말을 해서.”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자꾸만 리카 생각이 나는 거 있죠? 나는 이불을 얼굴까지 쓰고 누웠어요.
“전미향 학교 가자.”
아침밥을 먹고 나가려고 하는데 리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고개를 내보니 리카가 책가방을 메고 나를 기다리는 모양이에요.
“나랑 같이 가려고?”
“어차피 학교 가는 길도 같잖아. 같이 가자. 나도 심심하고. 너랑 가고 싶기도 하고. 너는 싫어?”
“아, 아니.”
엄마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어요. 뭐 리카가 나랑 이렇게 같이 가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굳이 같이 가기 싫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잖아요.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엄마가 손을 흔들어줬어요. 리카는 큰 길에 와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리카의 손에는 레몬 맛 사탕이 하나 놓여있었어요. 리카를 보고 밝게 웃고는 입 안에 레몬 맛 사탕을 쏙 넣었어요. 어제보다 훨씬 더 달콤한 사탕이었어요.
“맛있다.”
“앞으로 같이 다니는 거다. 아침 저녁으로.”
“응. 고마워. 리카.”
학교 가는 것이 늘 힘들었는데. 이제 리카가 있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을 거 같아요. 이제는 리카도 있고, 달콤하고 또 새콤한 레몬 맛 사탕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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