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로맨스 소설] 터울거리다 - 목격자 [단편]

권정선재 2014. 6. 11. 14:27

시후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막았다. 날카로운 비명. 골목 너머를 쳐다봤다. 한 사내가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사내가 고개를 드는 순간 시후는 숨었다. 한참 골목 끝에 숨어있다 침묵이 골목을 삼키고 나서야 돌아봤다. 너무나 깨끗했다. 잔뜩 주위를 경계하며 안식처로 향했다. 문을 잠그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살인사건을 검색해도 무엇도 검색되지 않았다. 혹시 문이라도 두드릴까 긴장한 채로 현관을 바라보며 누구라도 자신을 공격하면 바로 방어할 수 있기 바라며 주방에서 칼 하나를 가져와 품에 안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한참이나 낯선 한 여자가 죽어가면서 그에게 도와 달라 이야기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편의점 신선식품 코너에 선 시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악몽을 꾸느라 잠자리를 뒤척인 것이 문제였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그가 늘 먹던 도시락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도시락이라도 먹을까 망설였지만 손을 거두었다. 물 한 병 들고 카운터에 섰는데 직원이 생긋 웃으며 도시락을 내밀었다. 직원은 송곳니까지 드러나게 밝게 웃으며 바코드를 찍었다. 이런 호의에 익숙지 않았다. 모두 그에게 차갑게 대했다. 다들 그를 피하고자 했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의 편한 표정에 시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챙겼어요.”

역시나. 애초에 이런 것을 챙긴다 해서 호감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시후는 쓴 웃음을 지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돌려주면서 직원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저 보러 여기에 오시는 것 맞죠? 아닌가? 아니면 완전 쪽 팔린데.”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를 따라 시후 역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두려운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고 말을 하게 만들었다.

만일 제가 지금 그쪽이 하는 이야기처럼 일부러 오는 거면 영화라도 보러 가실 겁니까?”

겨우 용기를 낸 그의 말에 직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후는 이내 실망스러운 무언가를 느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포기하려는 순간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채반율이에요. 자기소개를 해야죠.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 잡아요?”

시후는 황급히 바지에 손바닥을 닦고 반율의 손을 잡았다.

목시후입니다. 목시후.”

번호 알려주세요. 같이 영화 보러 가고 하려면 연락처 알고 있는 것이 편리하잖아요.”

시후가 번호를 다 누르고 반율은 비닐 봉투에 시후의 물건을 담고 내밀었다. 시후는 머뭇거리며 반율을 바라봤다. 반율은 밝게 웃었다. 시후 역시 미소를 지으며 편의점을 나섰다.

 

기계처럼 멘트를 반복하며 몇 시간이나 티켓을 판매하니 목에 무언가 가득 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꿈이 또렷했다. 잔인하게 누군가 죽는 모습. 선명한 피가 떠오르자 시후는 몸을 떨었다. 냉장고를 열고 미리 사둔 편의점 도시락을 들고 건물 밖 난간으로 향했다. 계단에 걸터앉아, 마치 사료라도 먹는 것처럼 후다닥 식사를 끝냈다. 물로 대충 입가심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아래 사람들이 마치 어릴 적 밟아죽이던 개미처럼 보였다.

 

-저는 지금 저녁 먹어요. 시후 씨는 저녁 드셨어요?

메시지에 시후는 잠시 당황했다. 황급히 바른 자세로 앉아 한참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

-아니요.

-왜요? 시간이 늦었어도 식사는 꼬박꼬박 제대로 챙겨야 하는 거라고요. 왜 안 먹었어요?

? 당혹스러웠다. 누구도 식사를 하지 않는지 묻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낯설었다.

-그냥요.

-시후 씨 바쁘구나? 답장이 왜 이렇게 짧아요? 서운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고 나서야 자리에 누웠다.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묘했다. 배가 고파 입맛을 다시다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묘한 소리가 들려 잔뜩 경계하며 걸음을 옮기다 간절한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암녹색 코트를 입은 사내에게 목이 졸린 반율이 보였다. 그녀가 손을 뻗는 방향을 따라온 사내는 씩 웃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서늘한 눈빛에 공포가 느껴졌다. 그녀가 축 늘어지자 사내는 옷을 툭툭 털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시후의 주먹이 하늘을 갈랐고, 사내가 여유롭게 피하자 균형을 잃은 채로 넘어졌다. 사내는 시후에게 다가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관심 갖지 마. 관심을 가지는 그 순간. 너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이 되겠지.”

시후는 침을 꿀꺽 삼키다 사내가 그에게 훅 끼치는 순간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흐르고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눈을 떴다.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시후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그냥 보고 있었다. 생생한 감각이었다. 사내의 얼굴은 명확히 그려지지 않지만 그래도 반율의 얼굴까지 모르지는 않을 거였다. 자신은 너무나도 무능했다.

 

목시후 씨 영화 안 좋아하죠? 어떻게 나만 봐? 내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건가? 신경 쓰여서 혼났잖아요. 다음 편도 되게 궁금하다. 그런데 다음 편까지 내가 살 수 있으려나?”

순간 시후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반율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반율 씨 알고 있는 겁니까? 당신의 운명.”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내 운명을 어떻게 알아요?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반율은 화장실로 달아났다. 시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복잡했다. 모든 것은 다 망상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순간 여자 화장실에서 비명이 들리고 여자들이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사내가 씩 웃으면서 여자화장실을 나서는 게 보였다. 시후는 다급히 화장실로 들어가다 치이익하는 소리에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신발에서 김이 올라왔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반쯤 녹아버린 반율이었다. 시후는 어어어 소리를 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 넘어졌다. 반율은 손을 내밀었고 알 수 없는 독한 용액은 점점 시후에게 다가왔다. 반율이 스러지며 용액이 훅 끼치는 순간 시후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편의점에 가서 확인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 건지.

시후 씨 괜찮은 거예요? 어제 저 화장실에 좀 다녀온다고 했더니, 그냥 가버렸잖아요.”

무슨 상황지 이해가 안 갔지만 분명한 것은 반율이 괜찮다는 거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반율이 퇴근까지 기다려 집까지 걸었다. 집에 다 도착해서 안도하는 순간 사내가 나타나 반율에 칼을 꽂았다. 시후가 악을 쓰며 사내의 멱살을 잡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칼을 꽂고 또 꽂았다. 시후의 주먹이 사내의 얼굴로 날아가는 순간 사내가 칼을 시후에게 휘둘렀다. 시후는 얼굴에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사내는 반율의 몸에 미친 듯 칼을 난자했다. 반율을 지키기 위해서 다가가는 순간 고통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 보니 칼날이 자신의 배에 들어왔다. 다시 고개를 들어서 사내가 누구인지 확인을 하려는 순간 시후는 정신을 잃었다.

 

배의 상처는 분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팠다. 전혀 치료가 된 흔적도 없고 조금 아물기는 했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는 분명했다. 시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시후는 고개를 숙였다. 티셔츠로 피가 배어 나왔다.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자신만 느끼는 게 분명했다.

 

 

그럼 여기에서 헤어져요. 어차피 바로니까. 여기에서 헤어져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 반율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시후는 반율이 어두운 골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쯤이 되어서야 몸을 돌렸다. 순간 서늘함이 느껴졌다. 혹시? 라는 생각에 골목으로 향했다. 멀리 무언가 느껴지고 시후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휴대전화 랜턴으로 앞을 확인했다. 전기톱을 든 채로 자신을 향해서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에 시후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사내가 다시 반율에게 전기톱을 내리는 순간 그에게 달려들었다. 사내와 부딪쳤다고 생각을 한 순간이 지나고서야 시후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골목. 시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따라 오신 거예요? 하긴 여기가 좀 그래요. 어두워서 이상한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시후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은 건가? 반율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런 시후의 뺨에 재빨리 입을 맞추고 집으로 들어갔다. 시후는 확신했다. 이건 환상이 아니었다.

 

우리 주말 나들이나 갈래요? 싫어요? 바쁜가?

시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나마 집 근처에서는 어느 정도 그녀를 지킬 수 있을지 몰랐지만 이것보다 더 멀리 간다면 자신이 그녀를 지킬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어디 멀리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러니 더 나가야죠. 연애를 할 때가 아니면 그런 곳에 나갈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반율과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지만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그녀를 지킬 수 있을까? 그게 괴로웠다. 반율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여행.”

정말이죠? 나중에 혹시나 다른 말 하는 거 없어요. 시후 씨가 직접 대답한 거니까요.”

. 같이 가요.”

 

횡단보도 건너에 반율이 보였다. 반율은 신호가 바뀌자마자 그에게 달려왔다. 차가 한 대 달려와서 시후는 미간을 모았지만 다행히 차는 정지선에 맞춰 섰다.

그렇게 뛰어오면 어떻게 해요?”

너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신호 바뀌었어요.”

반율이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을 짓자 시후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은 나란히 걸었다.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개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저 멀리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개들이 미친 듯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개들은 반율을 갈기갈기 찢어 삼켰다. 손을 내밀었지만 반율은 가쁜 숨만 헐떡일 뿐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내가 있는 곳을 보기 위해서 바라보는 순간 빛이 번쩍했다.

횡단보도 건너에 반율이 보였다. 반율은 신호가 바뀌자마자 그에게 달려왔다. 차가 한 대 달려와서 시후는 미간을 모았지만 다행히 차는 정지선에 맞춰 섰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시후가 갑자기 화를 내자 반율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율 씨는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겁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시후 씨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그러죠. 시후 씨는 나를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반율 씨 봐서 좋죠.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일 하는 것 내키지 않습니다.”

반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한 바퀴 팽그르르 돌았다.

예쁘죠? 오늘 나름 신경을 좀 섰어요. 처음으로 멀리 가는 거니까.”

반율은 씩 웃으면서 앞서 걸었다. 주위를 살폈지만 다행히 개는 보이지 않았다.

 

수영도 못 하는데 바다는 왜 오자고 했어요?”

그냥 볼 수 있죠. 꼭 수영을 잘 해야지만 바다에 오나요? 뭐 엄청난 심해도 아니고.”

반율은 가볍게 발장난을 했다. 시후도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은 저 먼 곳을 응시했다. 반율은 조심스럽게 시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한참 있다 일어나 해변을 걸었다. 반율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드는 순간 탕 하는 소리가 나고 반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반율이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졌다. 너무나 익숙한 존재. 그러나 다시는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의 모습이 보였다. 시후가 그를 따라가려고 하는 순간 다림이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시후가 다림을 한 번 보고 다시 사내를 찾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시후 씨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반율 씨는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은 비밀 누가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시후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반율에게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반율은 양손으로 시후의 얼굴을 감싸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시후는 가볍게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시후는 쿡 하고 웃으며 반율의 코를 가볍게 깨물었다.

시후 씨는 은근 비밀 많아요. 싫기도 하지만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으니까.”

시후는 반율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움. 간절함. 반율을 집으로 이끌었다. 달빛 아래 탐스러운 젖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유두를 간질였다. , , 쇄골, 가슴, 배꼽을 혀로 핥았다.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애무하고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은 처음부터 시후가 안에 있었던 것처럼 그대로 빨아들였다. 안에서 착 감기면서 그를 뜨겁게 감싸는 반율에 시후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바라보며 서서히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시후의 등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려 그의 등을 타고 흐르고 반율의 젖가슴도 출렁였다. 서로의 교성이 점점 더 커지고 시후는 그대로 그녀의 안에 사정한 채로 무너져 내렸다.

 

내가 커피 사올게요.”

반율이 사라지자 고민들이 밀려왔다.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아픔으로 다가오자 괴로웠다. 그 순간 카페에서 비명이 들렸다. 시후는 고개를 돌렸다. 사내였다. 사내의 손에는 톱이 들려있었고 그는 시후를 향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후는 사내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사내는 몇 번 저항을 하고는 시후를 발로 차서 뒤로 넘어뜨린 후 시후의 갈비뼈를 세게 발로 찼다. 시후는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오직 바람 빠진 풍선에서 나오는 쉬, 쉬 하는 소리였다. 사내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시후는 그리고 숨을 멈추었다.

 

도대체 누구랑 부딪친 거예요? 정말 싫다.”

반율은 병원 보호석에 앉아 한숨을 토해냈다. 시후는 반율이 돌아와 참 다행이라는 생각하는 동시에 그의 갈비뼈가 나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도대체 누구랑 싸우기라도 한 거예요? 어떻게 내가 카페에 잠시 다녀온 사이에.”

반율은 울상을 지으며 시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시후는 가만 미소를 지었다.

고작 갈비뼈 하나 금이 간 겁니다.”

시후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앉았다. 반율은 입을 내밀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시후의 곁에 앉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괴로웠지만 편안했다. 시후는 집에 가기 무섭게 침대에 몸을 뉘였다. 머리가 아프고 복잡했다. 반율은 죽었다. 그리고 돌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빨랐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사실이 답답했다. 반율을 아무리 구한다 하더라도 다시 살아나는 것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는 거였다 시후는 그녀의 죽음을 바라봐야 했다.

 

여기는 왜 왔어요?”

집에 데려다 줘야 하니까요.”

됐어요. 집이 뭐 엄청나게 먼 것도 아니고. 목시후 씨는 나를 아이로만 보는 것 같아. 어차피 목시후 씨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반율은 밝게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시후는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괜찮다 이야기하는데 강요할 일도 아니었다. 시후는 물끄러미 반율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반율 씨. 내가 꿈에서 자꾸만 당신이 아픈 것을 봅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죠?”

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잦으면 실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시후 씨가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니라. 반율 씨가. 그러니까 자꾸만 내 눈앞에서 죽어갑니다.”

내가 죽어요? 뭐 그런 나쁜 꿈을 꾸고 있어. 아니다. 꿈은 현실에서 반대라고 이야기를 했으니 그거 되게 좋은 거 아니에요? 꿈 반대라면 지금 나는 오래 산다는 거잖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시후 씨.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반율의 눈에 공포가 어리자 시후는 입을 다물었다. 반율은 잠시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시후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확신도 없었다. 반율은 손을 내밀어서 시후의 얼굴을 가만히 감싸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당신이 나를 걱정해준다는 거. 그거 정말 기분 좋아요. 고마워요.”

 

이제 헤어져야 하네.”

반율은 시후를 보며 입을 내밀었다.

목시후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모를 대화들이 오고간 뒤 겨우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묘한 미소로 반율을 응시했다.

나 말이에요. 가끔 무서워요. 그냥 우리 사랑이 이대로 끝이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그런 생각 하지 않도록 할 수 있어서. 당신하고 만나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녀를 들여보내고 아무런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토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반율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엄청난 불길이 일었다. 사람들도 나오고 소방관들까지 나타나 불을 끄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까맣게 탄 곳에서 반율이 아닌 새까만 사람의 형체를 발견했다. 시후는 반율에게 걸어가 곁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이게 뭐야? 채반율. 정신 차리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시후가 멍하니 반율만 바라보자 경찰이 시후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혹시나 방화라도 저지른 사람이 아닐까 하는 표정이 불쾌했지만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같이 서로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후가 머뭇거리자 형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후도 더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경찰차의 문을 여는 순간 시후는 골목의 초입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오늘 밤 같이 보낼래요?”

일단 집에 들여보내면 안 된다는 간절함. 반율은 잠시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뜨겁게 입을 맞추고 거칠게 서로의 몸을 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차갑게 얼어갔다. 반율은 죽었다. 새까만 시체가 되었다. 허나 지금 몸을 섞는 여인도 바로 반율이었다.

 

나를 기다린 거예요?”

반율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후를 살폈다. 시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반율 씨를 집에 데려다 줘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죠.”

반율은 밝게 웃으며 입을 내밀었다.

이런 말 하면 뭐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반율 씨 분명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시후 씨랑 그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요.”

뭐라는 거예요?”

반율 씨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시후의 간절한 물음에 반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시후 씨랑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반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며 그냥 몸을 돌리는데 시후가 손을 잡았다.

가지 마요.”

이거 놔요. 이거 놓으라고요!”

반율의 고함에 시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에 놀라기는 시후만이 아니라 반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반율 씨. 지금 도대체 무슨?”

내가 이미 이야기 했잖아요. 시후 씨는 오늘 대화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요. ”

반율 씨가 정말로 위험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만 두라고요.”

시후가 다시 손을 데려고 하자 반율은 뒤로 물러났다.

지금 시후 씨가 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나를 위한 일이 될 수가 있다는 거죠? 나는 죽어가지 않아요. 무슨 나쁜 꿈을 꾸었건. 그건 사실이 아니란 말이에요. 시후 씨 이상해요.”

반율의 말에 시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반율을 보아도 뭐라 입이 열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시후 씨 이상해. 시후 씨가 이렇게 이상한 사람인지 몰랐어. 내게 연락하지 마요.”

이야기 좀 하자는 겁니다.”

도대체 나랑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죠? 아니 지금 시후 씨 나랑 이야기를 할 생각이나 있나요? 지금 시후 씨는 나랑 아무런 대화도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나에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지금 나 그냥 가고 싶다고요. 그러니 보내달라고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둬요. 나 지금 너무 무서워요. 우리 사이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냥 그만 두자고요.”

시후는 물끄러미 반율을 응시했다.

이대로 그냥 끝날 수 없는 사이 아닙니까?”

우리 둘 무슨 사이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는 사이에요..”

지금 헤어지자는 겁니까?”

그게 낫겠네요. 우리 두 사람 애초에 별로 공통점도 없는 사이였잖아요.”

반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시후는 짧게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집에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제 집에는 무슨 일로 들어오시려는 거죠?”

그게. 지금은 당장 설명을 하기가 그렇지만. 일단 좀 들어갈 일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반율은 장된 표정으로 시후를 응시했다. 그녀의 표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해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시후는 성큼성큼 그녀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 어디에도 방화를 일으킬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반율은 여전히 대문 앞에서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도대체 뭘 한 거죠?”

미안합니다.”

아니 그냥 미안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남의 집에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들어가는 거. 그거 되게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요.”

시후의 무덤덤한 대답에 반율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시후는 그녀를 잡으려다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입에 담배를 물고 한 갑 가득하던 담뱃갑이 가벼워지고 나서야 어두운 골목을 벗어났다.

 

이제 여기에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물건을 계산을 하고 나서 봉투에 담으며 차갑게 말하는 반율말에 시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럴 수 없습니다.”

시후의 대답에 반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시후 씨 하는 행동 스토커라고요.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 그렇게 강요하는 거. 되게 우스운 일 아니에요? 이상한 거라고요. 그거. 그러니까 당장 가요. 경찰 부르기 전에 그냥 가라고요.”

그러니까 나는 지금. 반율 씨를.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저 맴맴 돌뿐 하나의 문장이 되어서 흘러나올 수 없었다. 당신이 죽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당신을 그리 둘 수 없었다. 허나 당신은 죽지 않았다. 시간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반율은 그 무엇보다도 역겨운 것이라도 보는 눈빛으로 시후를 노려봤다.

당장 나가요.”

반율 씨가 위험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시후 씨 무슨 무당이에요? 설사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건 내가 스스로 감당을 할 일이에요. 시후 씨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요. 되게 이상한 행동이에요.”

당신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지르고 말았다. 아차, 반율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미쳤어요? 내가 지금 목시후 씨를 상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이런 식의 이야기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더 이상 당신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 제발 그만 둬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럼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나는 당신을 지키고 싶은데.”

제발 그만!”

반율의 고함에 시후의 얼굴이 굳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시후 씨 꿈에 내가 여러 번 죽어. 그런데 그게 실제로 내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왜 자꾸 나를 꿈과 이으려고 하는 거죠?”

이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반율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죽지 않았어요. 내가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반율 씨가 시간이 돌아가서 살아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죽는 겁니다. 내가 봤다고요.”

내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도대체 왜 자꾸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나 안 죽었어요.”

반율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죽은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 당신은 죽었어. 당신은 죽었다고.”

다가오지 마. 나를 죽일 것만 같아. 그래서 나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하는 것 같아.”

서로를 노려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밖에 경찰차가 보이자 반율은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경찰차에 손을 흔들던 사이 반율은 어딘가에서 나타난 트럭에 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닥에 풀썩 떨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트럭은 후진해 반율을 깔아뭉갰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그였다. 시후는 사내에게 달려가 목을 조르다 자신의 목이 졸리는 느낌에 켁켁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내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반율의 몸에 칼을 가져갔다.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자신은 여기에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반율에게 손을 댈 수가 있는 걸까?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분명히 자신이었다. 반율과 부딪치는 것이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방법이 없었다. 만일 그 사내가 자신이라면 자신을 다치게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저 닮은 사람 이다. 이렇게만 생각을 하기에도 다소 낯선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읠 부딪침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였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채반율이라는 사람을 사랑했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후가 고개를 드니 경찰 두 사람이 그이 앞을 막아선 채였다. 별다른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니 곧바로 그를 제압하고 수갑이 채워졌다. 시후가 제대로 따지기도 전에 그는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졌다. 지금 그가 이곳을 떠난다면 반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시후에게 이 모든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능력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그 여자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담당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시후를 바라보더니 책상을 큰 소리가 나게 내려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담당 형사는 혼자 열을 내다가 어딘가로 가버렸다. 시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는 이가 없었다. 반율을 지켜야만 했다. 시후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그 어떤 경찰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 시후는 마치 민원인인 것처럼 태연하게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반율은 시후가 가게로 들어오자 미간을 모았다.

목시후 씨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이러면 안 되는 거죠.”

내가 무슨 스토커라는 거죠?”

내가 싫다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 말 이해를 못 해요?”

반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 더 이상 목시후 씨랑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자꾸만 이런 이야기 하다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래도 잠시나마 그쪽을 좋아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더 이상은 이러지 마요. ?”

나는 그저 당신을 지키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나를 왜 밀어내려고 하는 겁니까?”

나는 죽지 않아요.”

이미 죽었어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내가 도대체 뭘 안다는 거죠?”

다 알고 있으니 이러는 것 아닙니까? 당신은 당신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어.”

시후가 앞으로 한 발 다가오자 반율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이러지 마요. 나 정말 모른다고요. 목시후 씨가 왜 이런 행동하는 건지 이해도 안 되고.”

당신 알고 있으면서 왜 모르는 척 하는 거죠? 자꾸 죽는 거 알고 있잖아요.”

시후는 손을 내밀어서 반율의 얼굴을 만졌다. 반율은 움찔하면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살이 이렇게 빠지고.”

목시후 씨가 스트레스를 줘서 그래요.”

반율은 시후의 손을 치웠다. 손님이 들어오고 계산을 하는 동안 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님이 나가고 다시 카운터에 섰다.

그냥 돌아가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지금 목시후 씨 사랑 아니에요. 내가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사랑이죠?”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반율 씨에게 뭘 보여주어야 하는 겁니까?”

아무 것도 보여주지 마요. 더 이상 시후 씨랑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목시후 씨는 그저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목시후 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반율의 차가운 말에 시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대체 그런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느끼기에 나를 괴롭히니까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도대체 채반율 씨에게 잘못한 것이 뭐냐고요!”

시후가 고함을 지르자 들어오려던 손님이 나갔다.

뭐 하는 짓이죠? 나 지금 일하는 중이라고요.”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따로 만나 이야기해요. 적어도 남의 직장에서 이런 피해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고작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주제에!”

시후의 외침에 반율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는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요. 시후 씨가 그렇게 말할 자격 없어요. 지금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경찰을 부른다고 해도 내가 여기에서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반율은 침을 꿀꺽 삼키고 테이블 아래를 더듬거렸다. 비상벨에 손에 가는 순간 시후가 황급히 카운터로 넘어왔다. 그리고 반율의 입을 막고 그녀를 조리 공간으로 밀어 넣고는 그녀의 손목을 청 테이프로 둘둘 감았다. 그 다음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편의점 문을 잠근 후 모든 불도 꺼버렸다. 반율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시후를 쳐다봤다.

나는 반율 씨가 죽는 것을 봤습니다. 여러 번 죽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없습니다. 당신을 무조건 살려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반율 씨가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겁니다. 여기에서 나가면 결국 당신은 죽게 될 테니까요.”

시후는 캔 콜라 하나를 가져와 한 번에 모두 들이켰다. 대충 소매로 입가를 닦고는 반율의 앞에 앉아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반율의 두려움에 시후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나는 지금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낯선 소리에 시후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경찰관 두 명이 편의점 안을 이리저리 살피는 중이었다. 시후는 조심스럽게 카운터 아래로 몸을 낮추었다.

강제로 들어갈까요?”

일단 여기 편의점 사장하고 연결해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요.”

시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반율도 지키지 못하고 자신에게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당신은 오늘 죽어.”

반율의 눈이 커다래졌다. 시후는 다급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뭐든 해야만 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였다. 오랜 시간 마음에 담은 그녀인 만큼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다시는 그 놈이 당신을 못 죽이게 할 거야.”

거기 안에 사람 있어요?”

경찰은 유리창에 얼굴이 가까이 가져가서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시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경찰들도 지금 믿을 수 없었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만큼 저 중 누군가가 반율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 어딘가로 가야만 해요. 여기에 있으면 당신은 죽을 거야.”

반율은 시후를 세게 발로 차고 출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경찰이 문을 열고 그녀를 구하러 들어오는 순간 시후가 뒤에서 그녀를 덮쳤다. 반율은 그대로 바닥에 세게 머리를 부딪치고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시후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씩 웃으면서 반율에 다가서고 있었다. 저 자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반율은 계속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거였다. 방법은 하나였다. 시후가 반율의 목을 세게 졸랐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이내 축 늘어지고 나서야 시후는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안아 올렸다. 총성이 울리고 반율을 놓친 후 그녀에 무너져 내렸다. 사내가 흐리게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반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죽어야만 했다. 자신이 결국 그녀를 죽이게 되는 거니까. 시후는 손을 내밀어서 따뜻한 그녀의 뺨을 느끼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율은 멍하니 창밖을 보다 종소리가 들리고 나타난 사내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절름발이의 사내는 반율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도시락 하나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갔다. 반율은 그 사내에게 묘하게 시선이 머물다가 다시 멍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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