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조 선생. 미안한데. 우리 애들이 줄어서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아. 그 동안 고생했는데 미안해.”
“네?”
원장의 말에 은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겨우 석 달 남짓 학원에 다닌 그녀였다. 아이들의 수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는 것이 보이는데 은비가 이런 식으로 내보내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조 선생이 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뭐 퇴직금을 주거나 그럴 이유는 하나 없지만. 그래도 조 선생이 일을 잘 해주었으니까. 그래도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돈을 좀 넣었어요.”
“원장님.”
“미안해.”
원장은 그렇게 은비만을 두고 원장실을 나섰다. 은비는 멍하니 봉투를 내려다보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었다. 그 안에는 만 원짜리 네 장이 들어있었다. 은비는 어이가 없어서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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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 선생도 그렇게 나가는구나?”
“네?”
같이 일하는 선생님의 말에 은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래 우리 원장이 그렇게 사람들 내보내고 그래. 그냥 한 텀씩. 지금 조 선생이 석 달 했으면 한 텀 한 거잖아.”
“네? 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 자리를 하고 싶은 애들은 이미 수두룩하니 말이야.”
“말도 안 돼.”
“어쩔 수 없는 거지.”
은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동료 선생은 은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은비는 머리를 뭔가 쿵 때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성실하게.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전부였다.
“이게 다야?”
원래 그런 거라고?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은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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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잘린 거야?”
“응.”
“뭐하고?”
은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은비. 너 똑부러지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냥 그렇게. 네 저를 잘라주세요. 이러고 나온 거야?”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 식으로 그냥 당한 거였는데. 내가 뭐라고 하니?”
“그러니까 더 네가 싸워야지.”
“싸워?”
은희의 말에 은비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전에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
“조은비.”
“내가 지금 뭘 할 수가 있겠어? 그게 관행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아.”
“아무리 그게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이런 식으로 사람을 내쫓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야. 싸우기라도 해야지.”
“싸우면?”
은비는 힘없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속상했지만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
“나는 네가 이렇게 기가 팍 죽어있는 것을 보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너무 낯설어. 왜 이렇게 기가 팍 죽어 있는 거야?”
“그러게.”
은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속상할 것이 은비라는 것을 알기에 은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을 뿐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은비는 그저 빨대만 잘근잘근 씹어댈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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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안녕하세요?”
“어? 상현아.”
카페에 들어선 상현을 보며 은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왜 왔어?”
“제가 못 올 곳이었나요?”
“아니.”
“뭐. 막 올 곳은 아니죠.”
상현의 미소에 은희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상현이 못 올 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은비도 없는데. 그런데 오니까 그러는 거지. 여기가 내 카페인데 도대체 왜 네가 못 올 곳이야?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냥 왔어요.”
“은비가 없는데.”
“그러니까요.”
상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희는 일단 상현을 자리에 앉히고 음료수를 두 잔 가지고 가서 상현의 앞에 앉았다.
“손님은 많지 않네요?”
“이제 겨우 임대료만 빠져. 인건비도 제대로 못 건진다. 그래도 아직 적자는 아니니까 버텨야지. 마셔. 내가 직접 담근 자몽 청이야. 요즘은 뭐 핫 프룻티 파는 곳도 많아져서 더 이상 특별한 메뉴가 아니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거니까.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거야.”
“고마워요.”
“고맙기는.”
은희는 음료를 마시는 상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네?”
“은비랑.”
“모르겠어요.”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누나를 잡고 싶기는 한데. 막상 누나가 저에게 겁을 내고 물러서려는 것 같으니까요.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내가 뭘 할 수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너무 겁쟁이 아닌가?”
은희의 물음에 상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자신은 너무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뭐 방법이 없죠. 누나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다는 거. 누나에게 이미 상처를 주었다는 거 분명하니까.”
“지금 그런 행동 탓에 더 그런 거 아니야?”
“네?”
“은비. 지금 학원에서 잘렸어.”
상현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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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상현의 후배들은 저마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한다고 해서 그게 모두 다 정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런 일은 없어야 하는 거잖아.”
“맞아요.”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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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큰일입니다.”
“뭐가?”
부원장의 말에 원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이 그만 두기라도 한 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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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인터넷이 온통 은비를 자른 학원에 대한 규탄으로 가득했다. 원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 조은비 선생은 뭐 하는 거야? 조은비 선생하고 관련 있는 거 아니야?”
“아니요. 이 글이 올라온 시간에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지금 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거 같고요.”
“그럼 누구야?”
“전에 일하던 선생들 같습니다만.”
“이런 배은망덕한.”
석 달만 되면 사람들을 갈아치운다는 이야기가 온 인터넷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었다. 원장은 이마를 짚었다.
“그 글 내려.”
“하지만.”
“명예훼손이건 뭐건. 무조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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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늘 되게 신기한 일이 있었다?”
“뭐가?”
“우리 학원 원장. 사람들을 너무 막 자른다고 방송국에서까지 와서 막 원장을 취재하고 간 거 있지?”
“그래?”
“정말 다행이야.”
은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이 여론을 의식해서 그런 건지. 나를 정말로 나가라고 한 것이 아니다. 뭐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
“정말 다행이네.”
“그렇지? 그런데 너무 신기하다?”
“뭐가?”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 동안 나갈 때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이번에 내가 나가게 되니까 이렇게 시끄러워진 거야. 되게 신기하지?”
“그러게.”
은비는 은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은희를 보고 은비는 미간을 모으고 입을 내밀었다.
“언니 뭐야?”
“뭐가?”
“나한테 뭐 숨기고 있지?”
“아니.”
“아니기는.”
은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언니가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절대로 못 속일 거라고 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인 건데?”
“아무 것도 아니야.”
“언니.”
은비가 진지하게 바라보자 은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상현이에게 말했어.”
“뭐?”
“상현이에게 그냥 네가 어떤 상황인지. 그거 이야기를 했어. 그거 말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도대체 왜 걔한테 이야기를 하는 건데? 아니. 상현이가 도대체 지금 내 상황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뭔데? 언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내가 부탁하지도 않은 것을 왜 하는 거니?”
“네가 부탁이나 했겠니?”
은희는 은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 지금 너무 자존심만 세우고 있는 거 아니야? 결과적으로 상현이가 알아서 잘 된 거 아니야?”
“아니.”
은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우연히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 달랐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거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은비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나 그만 둘 거야.”
“조은비.”
“이건 내가 얻은 게 아니야.”
“네가 일을 잘 하지 않았더라면 원장이 너를 잘라도 다른 사람들이 네 편을 들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네 편을 들어주는 건. 그 만큼 네가 그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야.”
“하지만 이건 자존심이.”
“무슨 자존심?”
은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은비의 눈을 바라봤다.
“너 지금 되게 이상한 거 알아?”
“뭐가?”
“너는 상현이가 어른스럽지 않아서 싫다고 이야기를 했잖아. 그래놓고 지금 상현이가 어른스럽게 행동을 하니까 그게 또 네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거야? 조은비. 너 제발 균형 있게 행동을 해. 네가 하는 행동을 보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너 너무 어려워.”
“언니한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어.”
“조은비.”
“안녕.”
은비는 고개를 돌렸다. 상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은비는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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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야?”
“응.”
은비의 대답에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몰랐네.”
“도대체 왜 나를 도운 거야?”
“누나도 나랑 같았을 테니까.”
“뭐라고?”
“아니. 그냥 나는 누나를 돕고 싶었어. 우리가 연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 얼마나 오래 알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전혀 문제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 헤어진 사람이야.”
“아니.”
상현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지금 누나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건 알고 있는데.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을 할 일은 절대로 아니라고 봐.”
“상현아.”
“그리고 내가 누나에게 별다른 도움을 준 것도 아니야. 누나에 대한 이야기. 누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들 싸웠을 거야.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누나가 지금 아니었더라도 누구라도 나는 나섰을 거야.”
“거짓말.”
은비는 심호흡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상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물끄러미 은비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은비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상현은 단호했다.
“누나. 나는 누나가 좋아.”
“우리 이미 헤어진 사이야.”
“누구 마음대로.”
“그냥 이러지 말자. 우리 더 이상 멀어지면 안 되는 거야. 누나는 내가 싫어?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런 게 아닌데 우리 이렇게 한심하게 행동하는 거 이해가 안 되지 않아? 나는 이해가 안 돼?”
“그럼.”
“다시 시작하자.”
“아니.”
은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다시 시작하다가는 결국 다시 아플 거였다. 사랑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네가 좋아.”
“누나 지금 되게 비겁한 거 알아?”
“김상현.”
“알아. 내가 누나에게 부족하다는 거. 하지만 누나도 지금 누나 마음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많이 부족하고 한심하다는 거 알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남자는 다 늑대라고. 상종도 하면 안 된다고 하던 그 조은비 어디 갔나?”
“뭐라고?”
“누나는 그렇게 당당하고. 자기 할 말 다 할 때가 가장 매력적인 사람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는 거냐고. 일단 한 번 저지르면 되는 거잖아. 우리 학교 다닐 적에 이것보다 더 힘들었어.”
“이제 나는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나이야.”
“억지로 벽 세우지 마!”
상현이 목소리를 키우자 은비는 심호흡을 하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상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누나. 나는 지금 누나에게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너무 부족하고 투정만 부린다는 거 알고 있는데. 이 유치한 나를 가장 먼저 알아봐준 사람이 바로 조은비라는 사람이니까. 다시 한 번 함께 하자는 거라고.”
“다시 아프면?”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하는 거야.”
은비는 상현의 눈을 바라보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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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모르겠어.”
은비가 베개를 끌어안고 울상을 짓자 은희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뭘 그렇게 가리는 게 많아?”
“뭐가?”
“아니 그냥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뭘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야. 이해가 안 되잖아.”
“나 김상현이 사람으로 좋은 게 아닌 거 같아서 그래.”
“뭐?”
“상현이랑 섹스가 너무 좋다.”
우유를 마시던 은희가 우유를 뿜었다. 은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휴지를 건넸다.
“뭐 하는 거야? 더럽게.”
“너야 말로 뭐 하는 거야? 아무리 우리가 친한 사이라고 해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섹스는 무슨.”
“그래서 헷갈려.”
은비는 볼을 부풀리며 입을 내밀었다.
“내가 지금 김상현을 그리워하는 건지. 단순히 김상현과의 섹스만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그럼 다시 자봐.”
“언니!”
“왜?”
은희는 입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다 큰 남녀가 섹스를 한다는 게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이미 두 사람 잘 만큼 자보지 않았니?”
“나보고 섹스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해놓고서는 지금 언니가 나보다 더 하고 있는 거 알아? 미쳤어.”
“뭐가 미쳐? 아니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해보면 되는 거야. 너처럼 그렇게 망설이고 그럴 이유 아니라니까?”
은비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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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자고 한 거야?”
“저기.”
은비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너랑 한 번 자려고 나왔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상현과 다시 잠자리를 한다면 명확해지기는 하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미안해서 밥이나 먹자고.”
“그래?”
상현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한테 되게 고마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괜히 너를 막 몰아세우고 그런 것만 같아서.”
“그런 거 아니야.”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밀어붙이는 거라면 자신이 은비보다 훨씬 더 한 상황이었다.
“누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거 알고 있어. 우리. 이미 헤어진 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다시 만난 거. 솔직히 다시 만난 거라고 이야기를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니까.”
“그렇지.”
은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상현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눈웃음을 치면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데 누나가 좋아.”
“너?”
“그 시절. 술자리에서 내기처럼 시작된. 남잔 다 늑대냐? 라고 했던 그 누나의 말에서 시작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그래도 내 첫 여자가 조은비라는 사람이라서 좋았어. 누나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우리 자자.”
“어?”
“우리 자자고.”
은비의 말에 상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 뭐 시험하고 그러는 거야?”
“어?”
“여기에서 내가 대답한 거에 따라서 누나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달라지는 건가? 흐음. 안 자. 내가 왜 누나랑 자? 나는 지금 누나랑 단순히 섹스를 하고 싶어서 만나자는 게 아니야. 그런 거라면 돈만 주고 할 수 있는데 많다고. 나는 정말로 조은비라는 사람 곁에 있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누나가 좋으니까. 누나랑 같이 있으면 너무나도 행복하니까. 그래서 이러는 거라고.”
“그러니까 자보자고.”
은비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 공사판으로 나가는 거였다. 은비는 눈을 반짝였다.
“너랑 자고 나서 확인할 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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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 지금.”
“자려는 거지.”
모텔 방에 침대에 앉아서 두 사람은 어색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겨우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나 잔 사이인데도 너무 어색했다.
“우리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니까.”
상현의 물음에 은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확인해볼 것이 있어서.”
“확인?”
“그러니까. 내가 너를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섹스 탓에 좋아하는 건지 궁금해서. 그걸 내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너를 왜 좋아하는 건가. 그거 좀 확인하고 싶어서 이래.”
“어?”
상현은 은비의 눈을 바라봤다. 은비는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야? 그게?”
“어?”
“남잔 다 늑대라고. 다 똑같은 새끼라고 하더니. 지금 정작 조은비가 완전 늑대였네. 이거 여잔 다 여우구나.”
“뭐래?”
은비가 볼을 부풀리면서 말하자 상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상현을 노려봤다.
“너랑 장난치고 싶은 그런 기분 아니거든.”
“나도 그래.”
상현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은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상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누나.”
“어?”
“아직도 그 말 믿어?”
“뭘?”
“남잔 다 늑대라는 거.”
“아니.”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자신이 객기로 내뱉은 말이었다. 상현은 늘 신사로 자신을 대해줬고 자신의 말처럼 그렇게 짐승 같은 짓도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어?”
“그럼 내가 보여줄게.”
“어?”
“누나 말이 맞다는 거.”
“뭐가? 으아.”
상현은 그대로 은비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은비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을 덮어버렸다. 은비는 상현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상현은 은비에게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집요하게 그녀의 입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하, 하지 마.”
“정말로 하지 마?”
“어?”
상현의 물음에 은비는 순간 당황했다. 상현은 쿡 하고 웃고는 그대로 은비의 목덜미로 입을 가져갔다. 신음을 흘리려고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다음 상현의 입이 그녀의 쇄골을 핥았다. 움푹 파인 곳에 상현의 혀가 닿자 은비는 저절로 몸을 움츠리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간지러워.”
“사랑해.”
은비가 놀란 표정을 짓는 순간 상현이 은비의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쥐었다. 몰캉하는 순간 상현은 은비의 셔츠를 벗기고 그녀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은비는 읏하고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상의를 벗었다. 이전보다 단단한 상현의 바디에 은비는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다.
“운동 좀 했죠.”
“멋있네.”
“그렇죠?”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브래지어의 후크를 열었다. 툭 하고 가슴이 꽃이 피어나듯 모습을 나타냈다. 상현은 부드럽게 가슴을 혀로 얼렀다. 그리고 천천히 혀를 아래로 가져갔다. 명치, 배꼽. 그리고 은비의 바지를 벗기고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손으로 쓸었다. 은비의 허리가 뒤로 살짝 젖혀지고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은비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버클을 풀고 바지를 벗고 부푼 상현의 드로즈 끝이 살짝 젖어있었다.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드로즈를 벗었다. 투명한 액체가 맺힌 상현의 페니스. 상현은 천천히 은비의 샘에 고개를 묻었다.
“아. 아응.”
시트를 세게 쥐었다. 간질간질한 느낌. 상현은 집요하게 그녀의 샘을 자극했다. 점점 더 그녀의 샘은 많은 샘물을 뿜어냈다. 상현은 조심스럽게 그 샘을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기다랗고 뜨거운 손가락에 은비의 허리는 점점 더 뒤로 휘어졌다. 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은비의 눈을 바라봤다. 은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은 조심스럽게 은비의 안으로 자신의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이전보다 더 강한 느낌. 은비의 몸이 점점 더 뒤로 휘었지만 이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은비는 두 팔로 상현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점점 더 상현의 움직임에 자신을 맞추었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이 은비의 온 몸을 뜨겁게 감쌌다. 서로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좁은 방에 두 사람의 땀 냄새가 가득해지고 신음이 점점 더 커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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