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하정우’감독의 세 번째 세상을 기대하며
[허삼관]은 흥행성적과 무관하게 ‘하정우’ 월드를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박수 받아 마땅한 영화이다. 수많은 감독들이 있지만 시리즈를 연출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만의 색이 있다는 감독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감독들의 경우 지나치게 비슷한 자기 반복의 영화를 제작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정우’는 다르다. ‘하정우’는 아직 두 편밖에 만들어내지 않은 감독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장르도 다르고 영화의 특성도 매우 다르지만 [허삼관]은 감독의 전작 [롤러코스터]와 쏙 빼닮은 영화다. 완벽히 다른 장르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정우’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설정한 후 그 안에서 흥미로운 사건들을 전개한다. 또한 강자에 대한 풍자가 도드라지는 것 역시 ‘하정우’의 스타일이다.
해학적인 그의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조롱과는 그 맥락을 달리 한다. 일부 몰지각한 영화들 같은 경우는 장애나 사회적 약자, 혹은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곤 한다. [수상한 고객들]에서 틱 장애를 웃음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과 [방가? 방가!]에서 인종을 하나의 웃음으로 사용하는 것 등이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절대로 풍자가 될 수 없다. 풍자란 약한 자가 강한 사람을 바탕으로, 혹은 그 상황 안에 같이 포함된 사람이 해야지만 풍자일 텐데 대다수의 영화들은 관찰자 시점에서, 그리고 지배자적인 시점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웃게 만든다. 하지만 ‘하정우’의 두 작품은 다르다. [롤러코스터]에서는 재벌 회장 역을 맡은 ‘김기천’의 기이한 행동이 웃음의 대상이고 톱스타인 ‘정경호’가 조롱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허삼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의 아버지라거나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일락’이의 친부가 바로 그 대상이다. 가장 큰 권력을 지닌 대상들이 웃음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상황을 통해서 웃음을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 극 안에서 누군가를 구별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고 물리는 관계로 설정이 되거나, 동시에 같은 상황에 빠지는 존재로 그려진다. 우선 [롤러코스터]를 살펴보면, 비행기 사고로 사망 위험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생사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여기에서 그들은 구별되지 않는다. [허삼관] 역시 마찬가지다. 가난,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생존의 위기인 사람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일 정도로 가난하다는 거다. 영화는 그들을 구별 짓지 않는다. 유일한 부자로 등장하는 ‘일락’의 친부 역시 다른 곳에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며, 또한 결혼에 실패하고 아들도 못 낳는 존재라고 설정하며 결국 그들의 상황이 모두 다 약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즉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포인트는 내가 누구보다 더 우월해. 라는 생각에서 오는 거만한 역겨움이 아니라 동질감, 그리고 비극적 상황에서 펼쳐지는 해학적 성격에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정우’의 영화들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고 배우 그 자체로 보인다는 점이다. ‘하정우’의 영화는 분명히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장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다소 과장되게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그러한 성격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경호’가 ‘정경호’ 그 자체로 보인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경호’라는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것이다. 이는 [허삼관]에서 더욱 부각된다. ‘성동일’은 그저 ‘성동일’ 그 자체로 거기에 존재할 따름이고, 이는 주연을 맡은 ‘하지원과 ’하정우‘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맡은 어떤 배역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지원‘과 ’하정우‘로 비춰진다. 이건 배우들의 연기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이는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이벤트처럼 활용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스토리를 위한 인물로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특히나 완벽하게 만들어진 배경 역시 영화를 다소 연극처럼 만들게 만드는 부분이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둘 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영화와 연극은 분명 달라야 한다. 연극을 볼 적에 우리는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만, 반대로 영화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인지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정우’의 영화는 그 배우가 거기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다소 강하게 들게 만든다. 배우들이 시대 안에 고스란히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 장소에서 연기라는 것을 하고 나서 다시 빠져나오는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세트장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가 아닌 특수한 상황을 두 편의 작품으로 만들었기에 이러한 부분이 더욱 세밀하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정우’ 감독이 추구하는 바가 바로 거기에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허삼관]은 70억이라는 전작에 10배에 달하는 제작비를 소모했는데 그 비용은 더 넓어진 배경을 완벽하게 채우는데 사용됐다. 영화 안에서도 완벽한 배경을 만들고자 하는 감독이 영화를 영화가 아닌 연극처럼 느껴지며 묘한 이질감에 들게 만들고 만 것이다.
수많은 배우들이 소품처럼 등장하는 것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배경 안에서 지나칠 정도로 짧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오롯이 자신의 배역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지녔던 이미지를 소모하는데 그친다. ‘성동일’이 의아할 정도로 짧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나, ‘조진웅’, ‘김기천’ 등의 이미지를 소모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차라리 ‘윤은혜’가 맡은 역할처럼 짧게 치고 빠지면서 관객의 뇌리에 박힐 수 있는 역할이라면 배우들에게도 더 긍정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정우’는 그런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아주 사소한 배역까지 제대로 된 배우를 선정하고 그에게 어떤 색을 입히는 것은 주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그 배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 이상의 배역을 활용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하정우’의 원맨쇼가 되어버린 [허삼관] 안에서 심지어 아내인 ‘하지원’ 마저도 여성으로의 매력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하지원’ 그 자체로만 소모되고 만 것은 다소 아쉬운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정우’의 세 번째 세계가 기대되는 이유는 그만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정우’의 영화는 절대 미운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고 거기에 있어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미운 사람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악인은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해학으로 그려낸다. 독특한 세계 속에서도 그만의 정신을 오롯이 이어나가며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억지로 큰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냥 보면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정말 엄청난 걸작을 만났어. 내 인생에 영화야.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요즘 괜찮은 영화 없어? 라고 말을 할 때 이 영화 괜찮을 걸?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하정우’가 창조한 세계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무릇 휴식을 위할 수 있는 장르여야 한다고 믿는다.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담은 채 사회에 커다란 돌을 던지는 영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영화도 분명 있어야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 방향으로만 나아갈 필요는 없다. ‘하정우’는 한 발, 한 발 자신의 세계를 묵묵히 끌어가는 감독이다. 작은 영화는 물론 중간 규모의 영화까지도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감독. 그러면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감독에 박수를 보낸다. ‘하정우’는 나에게 주저할 필요 없이 극장에 달려갈 수 있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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