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수다] 역린은 왜 관객을 가르치려 들었나?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결국 350만 무렵에서 멈추고 말 것으로 보이는 [역린]의 실패 요인은 어설픈 영화보다도 그들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애초에 드라마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역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에 대해서 명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정순왕후가 왜 할머니인지 관객들이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이상하다고 하네요. 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태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볼 때는 정순왕후의 나이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녀의 역할이 정조를 압도할 정도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다. 허나 [역린]에서는 그저 ‘한지민’이라는 여배우를 내세워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섹슈얼한 느낌으로 모든 이야기를 덮으려고 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관객들이 역사적 인식이 부족해서 그래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적어도 이 정도 배우들이 나오고 상반기 최대 기대작이라고 했다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어야만 한다.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에 이어서 또다른 문제는 [역린] 자체가 재미가 없다는 거였다. 그 이유는 기존의 영화 호흡과 전혀 다른 문법 탓이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한 인물을 따라가는 호흡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보여주어야만 하기에 이 같은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장 효과적인 무언가를 보일 수도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관객들에게 호평을 듣는 [끝까지 간다]의 경우 ‘이선균’이 맡은 ‘고건수’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표적]의 ‘류승룡’이 맡은 역할도 그랬다. 그러나 [역린]은 지나치게 많은 인물들에게 모두 포커스를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진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를 무너뜨리고 만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로 끝이 나버리는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다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감독이라면 필요에 의해서 어떤 장면을 들어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할 거다. 그런데 [역린]은 그런 결단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많은 캐릭터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를 원했고 감독이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준 결과 영화는 흔들리고 무너지고 집중력을 잃게 만든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여럽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 역시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역린]을 보고 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현빈’은 ‘이병헌’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광해]가 개봉했을 때 모든 리뷰들에 같은 말들이 있었다. ‘이병헌’이 싫어서 영화를 보기 싫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병헌’이 좋아지더라. 적어도 ‘현빈’은 그 정도 저항력을 가진 배우는 아닐 거다. 시트콤을 한 경력도 있고 드라마를 통해서 매우 친숙한 배우가 바로 ‘현빈’이니 말이다. 허나 그는 극을 장악하지 못했다. 아니 장악할 여유를 감독이 주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거다. ‘정재영’이나 충무로 최고 블루칩인 ‘조정석’ 역시 마찬가지다. 두 배우 모두 연기를 못하는 배우들이 아니지만 어색한 옷을 입은 것 마냥 멍하니 보일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무너지고 만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너지니 캐릭터가 덜 사랑스럽게 보이고, 더 극에 몰입하기 어렵게 된다. 결과적으로 감독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욕심을 보였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영화를 무너뜨리는 단초가 되었다는 거다. 과도한 플래시백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정조’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였기에 옳았다. 허나 ‘갑수’와 ‘을수’ 이야기가 포인트가 되려면 차라리 그들만의 영화가 따로 나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를 하려던 영화이다 보니 차라리 영화보다는 20부작 드라마로 나오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영화를 곱씹게 되면 그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완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모든 이야기도 너무 사랑스럽다. 빨래방 나인은 ‘정은채’의 이야기도 아름답고,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는 ‘조재현’의 이야기도 그 뒤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갑수’와 ‘정조’의 이야기도 흥미롭고, ‘혜경궁 홍 씨’도 나름 이야기가 된다면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터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두 시간에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그 어떤 인물에도 중심을 잡지 않은 채로 갑자기 정조가 활이나 쏘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감독이 나름 힘을 준 부분들도 너무 심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거다. 참 괜찮은 영화였고 기대가 컸던 만큼 너무 아쉬운 결과가 아닐까 싶다. 찍은 것이 아깝더라도 과감히 덜어나는 결단만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나만의 것일까?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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