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수다] [한공주]와 [거인] 얼음들의 세상에 아이들은.
벌써 지난해가 되어버린 2014년 가장 아픈 영화라고 한다면 [한공주]와 [거인]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청룡의 선택을 받은 ‘천우희’가 주연을 맡은 [한공주] 속의 성폭행 피해자 ‘공주’ 그리고 그 어떤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을 수 없어서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가녀린 존재 [거인] 속의 ‘영재’ 이 두 아이는 얼음들의 세상에서 죽지 못해서 사는 아이들이다. 힘겹게 살아가고 겨우겨우 버티고자 하는 안타까운 존재들. 이 가녀린 존재가 두 영화에 고스란히 살아난다. 두 아이의 선택과 그 결과는 다르지만 이 두 영화를 묶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아이들이 살고자 아등바등하는.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사자처럼 아이들을 절벽에서 밀어버리며 아이들이 이것을 견디지 못하면 한심하게 바라본다. 도대체 왜 너희는 그런 것을 못하니? 하고. 우리가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서 아이들이 버티지 못하게 하는 거면서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모른다. 그저 우리는 늘 정의로운 존재라고 생각하며. 이걸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을 늘 한심하게 바라본다.
성폭행을 당한 아이에게 네가 문란해서 당한 거라고 지껄이며, 가족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족이 상처를 주는 세상은 영화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인]과 [한공주]를 보면서 그리 아팠던 모양이다. 두 영화 속의 아이들은 계속 살려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먼저 [한공주] 속의 ‘한공주’는 성폭행 피해자인 가녀린 아이다. 이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힘든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순간 그 모든 고백을 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순간이다.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 가녀린 아이가 마지막으로 손을 내미는 곳이 자신을 버린 어머니이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마저 버리고 만다. 더 이상 세상에 그녀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하나 없는 것이다. 아비라는 자는 그녀의 성폭행으로 인해서 돈을 벌기 급급한 상황이고, 그나마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교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그녀는 그 어떤 믿음도 품지 못한다. 가녀린 소녀는 결국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이후 세상에 그녀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것을 하나하나 경험한다. 그리고 차가운 세상. 얼음들의 세상에서 결국 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저 어른 하나 손을 내밀어주면 되었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은 [거인] 속의 ‘영재’에게도 마찬가지로 펼쳐진다.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허리를 다친 어머니 사이에서 ‘영재’는 자기 나름의 살 곳을 찾는데 그곳은 임시 보호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그에게 따뜻한 곳은 아니다. ‘영재’가 살고 싶다고 아무리 외치더라도 그 누구도 그가 살 수 있는 곳을 선사하지 않는다. 세상이라는 곳은 그가 무능해서 이 모양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결국 아이가 잔혹하게 스스로의 살 길을 마련하게 만들고 만다. 세상이라는 공간은 ‘영재’가 친구와 같이 살아갈 수가 있는 곳이 아니다. 친구를 배신하고 죽여야지만 살 수 있는 차가운 공간. 이 공간 안에서 ‘영재’는 신부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 마저도 요원한 길이다. 아이가 살고자 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어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부모도 보듬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보호소의 부모라는 존재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심지어 교사나 신부마저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영재’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 없을 것이다. 불안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에게 과연 사람들은 정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인가?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하고 누군가가 안아주기만 할 아이에게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고 보듬지 않는다. 결국 사회는 ‘영재’를 더욱 밀어내고 만다.
얼음들의 세상은 예쁜 아이가 아니라면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고 처음부터 무리에서 내쫓는다. 더 이상 그들을 무리 안에 제대로 넣지 않는 것이다. 사실 가해자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이 두 아이가 더욱 마음이 가는 이유다. 두 아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세상 안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다. 세상의 규칙을 최소한이라도 지키고자 노력을 하는 아이들이고 세상을 향해서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들의 손을 잡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 아이들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아이들과 어울리면 우리들마저 그 더러움이 묻을 거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주’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다. 그 아이는 더러운 아이가 아니고 남자애들을 꼬여내서 잔 나쁜 년이 아니다. 하지만 ‘영재’는 도둑질만 하는 나쁜 놈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공간 안에서 그렇게 밖에 아이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세상이 만들어내는 무언가일 뿐이다. 두 아이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올곧게 행동을 했다면 절대로 아프지 않았고 불안해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답답하다. 같은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가 아닌 살고자 발버둥 치는 아이들. 하지만 얼음들의 세상에서 이 아이들은 숨을 쉴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고 이는 두 작품 속에 고스란히 살아난다.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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