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잊혀진 역사를 불러온 감독의 영리한 선택
개인적으로 사극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여성의 노출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간신]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성을 단순히 벗기는 소재로만 활용하며 남성들의 눈요기로만 전락시키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도 우선 들었다. 하지만 [간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노출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야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최근 수많은 영화들에서 여성을 남성의 강압적인 폭력에 가까운 섹스를 통해서 소모되는 리얼돌과 같은 존재로 표현한 것과 다르게 [간신]에서 여성들은 여성으로 존재한다. 남성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연산군’이 춘화를 그리면서 여성의 노출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단순히 성적으로 그녀들을 억압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놀이 그 자체로 활용한다. 이 부분이 [간신]을 다른 노출이 많은 영화에 비해서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부분이다. 이성 간의 성행위가 적은 것은 피로도 역시 낮춘다. [간신]에서 여성들은 춤을 추고 성적 행위를 하지만 비장하고 아름답다. 화려한 색감을 통해 한국 사극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부각시킨 것도 점수를 줄 부분이다.
쓸데없는 사족이 많지 않은 것 역시 [간신]을 매끄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되면 당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어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감독에게 애착이 가지 않는 캐릭터가 없게 마련이니, 당연히 배경 설명이 덧붙게 되고 각자의 에피소드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영화의 완성된 모습을 일그러지게 만들고 만다. 관객이 하나의 스토리에 제대로 몰입하게 만들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들이 던져 놓은 스토리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마무리 짓게 되는 영화가 부지기수라는 것이 바로 그 증명이다. 하지만 [간신]은 기본적은 스토리를 따라간다. ‘임숭재’와 ‘연산군’ 사이에서 뭔가 묘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화하지 않는다. 그냥 스쳐가는 대사처럼 그것을 처리하며 관객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몰입시킨다. 후반으로 가면서 스토리가 다소 흔들리는데 그럼에도 하나의 물줄기의 방향을 급격하게 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장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자신이 그 캐릭터에 몰입해서 극에 빠지게 된다. [간신]은 그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맥을 짚은 영화이다. ‘연산군’의 시대에 대해서 다루면서도 정작 ‘연산군’이 아닌 ‘임숭재’와 ‘단희’의 캐릭터에 더욱 포커스를 준 것 역시 관객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은 부분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캐릭터가 아닌 다소 낯설면서도 익숙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제대로 극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캐릭터들에게 스토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관객들이 시선을 두지 않은 채로 오롯이 자신이 원하고 감정이 동하는 캐릭터들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선택이다.
거기에 뻔한 클리셰가 난무하지 않는 것 역시 강점이다. 당연히 이 순간에 나와야 할 것들이 나오지 않다 보니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흥미롭다. 절정을 넘도록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결론을 낼지 정하지 않은 느낌이다. 이미 죽었어야 마땅할 ‘임숭재’를 살려두고, ‘단희’라는 허구를 실제 역사와 엮어내며 감각적인 영화를 만들어낸다. 다만 마지막 결말 같은 경우에는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칠 정도로 직접적이다. 굳이 그들을 한 공간에 마주하게 두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할 부분이었는데, 감독은 굳이 그것을 상세하게 설명을 하려다 잘 친 난초 그림에 먹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만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간신]은 이미 잊힌 역사를 우리 앞에 꺼내놓음과 동시에 여성을 성적으로만 착취하지 않는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인 영화이니 말이다. ‘민규동’ 감독은 억압당한 여인들을 ‘흥청망청’이라는 단어의 유래와 함께 풀어낸다. [간신]은 요 근래 만난 사극 영화 중 가장 열리하고 재밌다.
'☆ 문화 > 영화와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영화와 수다] 스포) 스파이 브릿지, 나는 종북이 아닙니다. (0) | 2015.11.10 |
---|---|
[스크랩] [영화와 수다] 스포) 검은 사제들, 강동원은 정말 섹시하다 (0) | 2015.11.10 |
네 명의 여배우를 통해서 보는 대한민국 여배우들의 미래 (0) | 2015.07.06 |
[허삼관] ‘하정우’감독의 세 번째 세상을 기대하며 (0) | 2015.02.11 |
[영화와 수다] [한공주]와 [거인] 얼음들의 세상에 아이들은. (0) | 2015.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