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9장. 어떤 쉬운 것]

권정선재 2016. 9. 1. 10:07

9. 어떤 쉬운 것

뭘 그렇게 봐?”

?”

 

우리는 고개를 들었다. 재필이 미간을 살짝 모은 채로 그녀를 보는 중이었다.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

 

얘가 왜 이래? 평소에는 내 표정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그래도 이런 식의 관심은 좋았다. 요즘 들어서 서로 조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무심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재필의 이런 말이 자신에 대한 관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주말에 엄마가 너 보재.”

?”

이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갑자기 머리를 무언가로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 나 약속 있는지 안 물어봤잖아?”

약속 있어?”

그런 건 아닌데.”

그럼 괜찮은 거잖아.”

 

재필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재필의 태도에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그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재필이 조심스럽게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런 것에 대해서 물어야 하는 거잖아. 내가 그날 어떻게 될지 알고 어머니에게 간다고 해.”

우리 집 가기 싫은 거야?”

?”

그럼 안 간다고 하면 되지.”

.”

 

재필이 휴대전화를 꺼내자 우리는 재빨리 그 전화기를 빼앗았다.

 

너 뭐 하자는 거야?”

뭐가? 네가 지금 우리 엄마 만나기 싫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지금 안 간다고 하는 거잖아.”

임재필. 내가 언제 어머니가 싫다고 했어?”

지금 한 이야기가 그거 아니야?”

이게 어떻게 그래?”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재필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아니면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데. 우리 엄마가 너 힘들게 한 적 있어?”

없어.”

그런데 왜 그래?”

그건 다르잖아.”

 

그냥 기분 좋게 밥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왜 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건지. 우리는 재필의 눈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어머니를 뵙는 게 싫다는 게 아니잖아. 그냥 이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미리 물어보고 정해도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네 마음대로 내 스케줄까지 정할 게 없잖아.”

아니. 너랑 나랑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너 평소에도 약속이 없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실망이다.”

?”

 

재필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인지 몰랐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우리 엄마가 얼마나 잘 해줬냐? 엄마가 우리 먹으라고 반찬도 해주고. 어떻게 그래?”

그게 어머니께서 나를 먹으라고 해주신 거니? 너 주려고 하고 내가 그냥 같이 먹은 거지.”

서우리.”

됐어.”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이런 식의 이야기를 계속 해봐야 좋을 것은 하나 없었다.

 

난 네가 엄마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언제 어머니 싫다고 했어?”

 

우리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재필의 어머니가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약속하지 않은 일정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미리 말을 해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준비를 하고 그래?”

우리 엄마가 너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 됐어.”

 

재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만나게 할 생각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너 괜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

. 너 지금 무슨.”

 

우리의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재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우리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임재필. 너 왜 자꾸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냐?”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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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확인 좀 부탁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정식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소망은 다급히 우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 ?”

서우리 씨. 지금 회의 시간에 뭐 하고 있는 겁니까?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우리는 다급히 사과했다. 정식은 미간을 모은 채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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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무슨 일이야?”

별 거 아니야.”

 

우리는 이리저리 목을 풀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냥 재필이랑 일 때문에.”

?”

아니 주말에 어머니를 보자고 하더라고.”

너한테 미리 묻지도 않고?”

. 그래놓고 내가 미리 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내가 자기 어머니를 안 좋아한다느니 그러면서 혼자 막 난리를 치는 거 있지? 정말 미치겠다. 그렇게 오래 만나도 달라지는 게 없어.”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벽에 기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재필이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기는 은화랑 만나자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달아나면서 우리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여간 망할 자식이라니까.”

나 말입니까?”

 

우리는 다급히 눈을 떴다. 정식이 자신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우리는 소망을 찾았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이 타서인지 소망은 반대쪽 벽에 가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정식을 바라봤다.

 

아니요. 제가 팀장님께 감히 어떻게 그런 말씀을 드리겠어요. 그냥 소망이랑 개인적인 말을 하다가요.”

회사가 개인적인 말을 하는 곳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정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먼저 내렸다. 소망이 다급히 우리의 곁에 섰다.

 

팀장 왜 저러냐? 완전 까칠해.”

됐다. 또 뭐라고 할지 모르겠으니까. 나 음료수나 하나 마시고 갈게. 너도 뭐 마실래? 뽑아 줄까?”

아니. 나는 괜찮아.”

 

우리는 소망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복도를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굳었다.

 

어디 갑니까?”

아니 음료수 좀 마시려고.”

회의 시간에 정신 놓고 있다가 지금 회의가 끝이 나기가 무섭게 음료수나 마시겠다 뭐 그런 겁니까?”

죄송합니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이 망할 자식 오늘 따라 유난히 왜 이래?

 

서우리 씨. 회사 일을 하기 싫으면 그냥 그만 두면 되는 거 아닙니까?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려는 겁니까?”

주의하겠습니다.”

 

주의하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 말라는 겁니다. 명심하십쇼.”

. 명심하겠습니다.”

 

정식은 우리를 둔 채로 찬바람이 불 정도로 쌩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쟤 오늘 왜 저러냐?”

 

우리는 힘없이 자판기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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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와? 오늘 아르바이트 있는 날도 아니잖아.”

엄마 보고 왔다. 왜 나도 보기 싫어?”

 

재필의 말에 우리는 뭔가로 머리를 세게 맏은 기분이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우리 엄마 싫다며?”

내가 언제 그랬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재필은 우리도 보지 않은 채 그대로 옷만 정리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필의 옆에 섰다.

 

임재필. 나랑 이야기를 좀 하자고. 너 혼자서 그렇게 꽁하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거잖아.”

네가 우리 엄마를 싫다고 하는데 내가 너랑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냐? 너는 내가 네 엄마 싫다고 하면 좋아?”

내가 언제 싫다고 했냐고.”

 

재필의 같은 말에 우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재필은 더욱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 봐.”

뭘 봐?”

너는 그게 지금 대화를 하자는 사람의 태도냐? 아니잖아. 너 혼자서 잘나서 지금 나를 설교하려고 하는 거잖아. 안 그래? 지금 네 생각만 옳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잖아. 아니야?”

내가 맞으니까.”

 

우리의 대답에 재필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무 속상했다. 재필이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아주 조금만 배려해달라는 것이 전부일 따름이었다.

 

너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네가 내 남자라면 그래야 하는 거잖아.”

그렇게 내가 부족하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럼 헤어져.”

 

재필의 말에 우리는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재필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헤어지자고.”

임재필.”

. 우리 이제 어린 나이 아니야. 결혼도 생각을 해야 하는 나이고. 그런데 너라면 자기 부모 싫어하는 여자랑 살 수가 있겠냐? 너 아니라고 하지만 나 무시하잖아. 그리고 나를 무시하니까 우리 엄마도 무시하게 되는 거라고.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거냐? 그냥 헤어지자. 이 말밖에 할 수가 없는 거지. 그냥 헤어져. 우리 둘 아닌 거 같다. 정말.”

농담이지?”

 

우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지만 재필은 오히려 무덤덤하게 보였다. 재필은 우리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진심이야.”

너 지금 나 헤어지자고 하면 나 다시는 너 안 볼 거야. 알아? 너 헤어지자고 하면 그냥 그걸로 끝인 거라고.”

바라던 바야.”

바라던 바라고?”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쉬려고 하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재필을 바라봤다.

 

고작 이런 걸 가지고 그래?”

고작 이런 게 아니야. 나에게는.”

너 지금 헤어지자고 하면 나 정말로 헤어질 거야. 우리 두 사람의 관계 여기에서 끝을 내도 좋은 거라면 헤어지자고 말해.”

 

우리는 힘을 주어 대답했다. 재필은 그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우리.”

너무 오래된 거 같다.”

뭐라고?”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너에게 설레지 않는다고.”

 

재필의 말은 그대로 심장에 와서 박혔다. 글자 하나 하나, 그대로 그녀의 심장에 들어와서 박혀 버렸다.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설레지 않는다고?”

“1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무뎌진 거 같다. 네 짐. 일단 가지고 나가. 나는 나가있을게. 오늘은 안 들어올 거니까 천천히 챙겨서 나가. 다시 들어오면 네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맞는 거 같다.”

 

재필은 그대로 우리만을 남겨둔 채로 나가버렸다. 우리는 그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