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유나은.”
“왜요? 백 사장님. 그 회사 그냥 드시려다가 막히니까. 괜히 저에게 화가 나고 뭐 그러시는 건가요?”
나은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백현은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나은을 응시했다. 나은은 입을 쭉 내밀고 백현의 맞은 편에 앉았다. 백현은 기다란 손으로 테이블을 어루만졌다.
“뭘 원하지?”
“당신의 숨통.”
“이미 쥐고 있는 거 아닌가?”
“아니.”
나은은 이가 드러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바로 표정을 지운 채로 서운을 노려봤다.
“네 옆에 있는 저 더러운 벌레. 저게 이제 없어져야 내가 괜찮은 거지. 저거 있으면 나는 너무 불쾌해.”
“죄송합니다.”
“닥쳐.”
서운의 사과에 나은은 곧바로 욕을 내뱉었다. 그러다 다시 백현을 보고는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 귀찮은 거 딱 질색인 거 당신이 더 잘 알지? 그러니까 그냥 쉽게 해결이 될 수 있기를 바라. 괜히 복잡한 문제를 만들면서 서로 싸우거나 그러지 말자고.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식품회사 하나니까.”
“그게 작아?”
“작아.”
나은은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백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반대야.”
“뭐라고?”
나은의 목소리가 묘하게 갈라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은도 백현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회사가 누구 회사인지 잊었어? 유 회장님 거야. 유 회장님. 그리고 유 회장님은 내 아버지고. 그걸 아는 사람이 이런 일은 하지는 못할 텐데? 이미 회장님이 나에게 이 회사를 맡으라고 했다며. 그런데 당신이 뭔데 회장님의 뜻까지 거스르려고 하는 거야? 그거 우습지 않니?”
“뜻을 거두셨어.”
“뭐라고?”
백현의 말에 나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럴 리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나은이 바라는 것을 가지지 못하게 한 적이 없는 양반이었다. 나은은 백현을 노려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확인하고 와.”
나은은 백현의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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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요.”
“왜 안 되는 건지 대답을 해주겠냐?”
유 회장의 느긋함에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처사였다. 그 회사는 자신이 맡기로 이미 태화와 모든 합의가 끝이 난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유 회장이 뒤집을 힘은 없었다.
“그게 없으면 그 사람이 더 저를 보지 않을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그 회사를 제가 가지려는 걸 막으시는 건데요? 아버지가 보시기에 내가 행복한 게 그렇게 싫고. 불편하고 그런 거예요?”
“그래. 불편해.”
유 회장은 간단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침을 삼켰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불편하다는 거죠?”
“네가 그 망할 자식 탓에 힘들어 하는 게 다 보이는데 도대체 내가 뭘 하기를 바라는 거냐? 응? 대답을 해봐. 답을 할 수 있어?”
“그건.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를 보면 다 해결이 될 거라고요.”
나은의 절규에 가까운 말에 유 회장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사람 가질 거예요.”
“이미 너를 떠난 사람이다.”
“하긴. 어차피 아버지는 그 사람을 싫어하셨잖아요. 한 번도 그 사람을 좋아하신 적도 없으면서. 마치 저 때문이라는 위선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그거 되게 불편하거든요.”
나은의 싸늘한 미소에 유 회장은 침을 삼켰다. 나은은 숨을 쉬더니 가만히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엄마 유산 쓸 거예요.”
“그건 태화 녀석이 너를 위협할 때.”
“아니요.”
나은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이미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미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앞으로도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까 나는 백현 그 사람만 망가뜨리면 돼요.”
“내가 싫다고 해도?”
“네.”
나은의 대답에 유 회장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나은은 미소를 지은 채로 유 회장의 곁에 가서 가만히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아빠. 딸을 위해서 양보 좀 해줘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내가 뭐 어려운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네가 그 일을 하고 나면 아파할 거니까. 나는 그게 걱정이 되는 거야. 결국 네가 다치게 될 거니까.”
“아니요.”
나은은 생긋 웃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망가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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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러게.”
서운의 물음에 백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 여자가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내 말 같은 건 듣지 않을 사람인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 비서는 그런 게 궁금한 건가?”
“죄송합니다.”
백현의 말에 서운은 그제야 다른 사람들을 응시했다. 회사에서 귀가 없는 곳은 없었다. 그녀의 실수였다.
“오후 일정 체크하겠습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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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장은?”
“회의에 가셨습니다.”
서운은 능글맞은 태도의 태화를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반응을 본 태화는 미간을 모았다.
“너도 나를 무시하는 거지?”
“아닙니다.”
“아니기는.”
태화는 손을 내밀어서 서운의 턱을 잡았다. 서운은 눈을 내리깔고 그런 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태화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녀를 밀쳐냈다.
“뭐 하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네가 감히 백 사장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해? 나는 처남하고 내 동생을 다시 엮어줄 생각이라고.”
“그렇게 하시죠.”
서운의 덤덤한 대답에 태화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장소에서 더 이상 나서는 것은 무리였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여기서 하시죠.”
서운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태화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어떤 힘에 이끌려 손을 놓았다. 태화는 멍하니 있다가 서운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가 한 거네?”
“함부로 행동하시지 마시죠.”
“그냥 비서가 아니었어?”
태화는 킬킬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서운의 뺨을 때렸다. 엄청난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지만 서운은 피하지도 않았다. 태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운은 평범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네가 막을 줄 알고.”
“뒤를 보시겠습니까?”
태화는 고개를 돌렸다. 천장의 카메라가 보였다.
“젠장.”
“돌아가시죠.”
“한서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는 알겠지만 더 이상 나서시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는 눈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협해서 사장님을 약하게 하실 거라면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저는 사장님의 약점이 아닙니다. 사장님이 오히려 저의 약점이겠죠.”
태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운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태화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도 뭐 더 하려고 한 건 아니니까.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면야. 뭐 나도 어쩔 방법은 없겠지.”
“그럼 돌아가시죠.”
태화는 문이 열리는 기미가 보이자 곧바로 나가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백현이었다.
“가시죠.”
“너 뭐야?”
“네?”
“네 얼굴.”
백현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서운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 백현은 아랫입술의 하얗게 변할 때까지 세게 물었다.
“유나은이야?”
“아닙니다.”
“그럼 누구야?”
“아시는 분입니다.”
백현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주먹을 세게 쥐고 그대로 벽을 쳤다. 그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
“유태화.”
“나서시면 안 됩니다.”
“그 회사 인수 거절한다.”
“하지만.”
“가지.”
백현은 심호흡을 하고 먼저 이사실로 걸음을 옮겼다. 서운도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런 그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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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회사 고문 변호사는 미간을 모았다. 백현의 제안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꽤나 복잡한 문제였다.
“만일 주가가 폭락하고 나서 조사가 들어오면 꽤나 복잡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지만 그 동안 회사의 경영에도 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 마시게.”
이사는 백현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회장님의 아들이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유 회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실 줄 알고. 결국 다 자네에게 다시 돌아와서 괴롭힐 걸세.”
“괜찮습니다.”
백현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는 끙 하는 소리를 내고 변호사를 바라봤지만 변호사도 더 이상 그를 말릴 방법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태화의 회사가 그의 회사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백현의 행동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백현은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회사에 자금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건 왜?”
“내일 아침에 터뜨립니다. 그리고 주가 폭락하면 우리가 전량 그 주식을 사죠. 최소한 개미들은 손해를 보지 않게.”
“기관도 덤빌 겁니다.”
“기관이 덤빈다. 그건 내가 수습하죠.”
백현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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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주가를 떨어뜨린 다음이 먹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야지. 그러면 최소한 개미들은 손해를 보지 않을 테니까.”
“기관에서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라지.”
백현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건물 밖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작은 사람들. 저 아래 움직이는 차들이 가짜 같았다.
“너를 다치게 한 사람이야.”
“다른 이들이 다치게 될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칼이라도 꽂고 싶어. 죽이고 싶다고.”
서운은 그대로 백현의 뒤로 와서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서운의 풍만한 가슴이 그대로 백현의 등에 닿았다.
“개미들이 죽더라도 내버려둬. 그거 살리지 않으면 네가 이 회사 갖는 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생각. 해보지.”
백현의 미적지근한 대답에 서운은 더욱 꼭 그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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