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이거 어머니께 어울리려나?”
“모르지.”
백현은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화자와는 그다지 어울리는 디자인도 아니었다. 화자는 무조건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게. 다른 사람들이 보고 놀라도록.
“너는 어머니 보러 언제 다녀왔어?”
“내가 거기를 왜 가?”
백현은 그대로 자리에 멈춰서 서운을 바라봤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도 않아. 이제는 너만 찾지.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후로는 더더욱 너만 찾고 말이야. 그런데 내가 도대체 뭘 할 수가 있겠어? 어차피 나는 엄마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데.”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 너는 알잖아.”
백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별 것이 아니라는 표정을 짓자 서운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운은 심호흡을 한 후 가볍게 벽을 만졌다. 손 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촉감. 서운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가지 말자.”
“뭐라고?”
백현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서운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렇잖아. 솔직히 나에게나 너에게나 그다지 좋은 여자는 아니었어. 나는 그 여자를 보고 싶지 않아. 그 여자를 다시 보고 나면 네가 힘들어하는 그 순간도 나는 견딜 수가 없어. 너무 싫어.”
“그러지 마.”
백현은 서운에게 다가와서 그녀의 뺨을 만졌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한서운. 정신 차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니까.”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백현은 가만히 손을 내밀어서 서운의 입술을 엄지로 매만졌다.
“어머니에게 그러지 마. 그래도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오늘까지 살아날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어머니가 너를 죽일 뻔 했지.”
서운의 말에 백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거꾸로 그녀가 없었더라면 살 수가 없기도 했다. 화자는 그를 살린 사람이었고 죽일 뻔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화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들이었을 테니까.
“어머니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아.”
“저녁 먹고 갈래?”
“아니.”
서운의 간절한 물음에 백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서운은 가볍게 백현의 가슴을 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어쩌면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백현은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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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시죠.”
“그래.”
백현은 먼저 아파트로 들어갔다. 서운은 그의 집에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한 후 집으로 햐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열어주는 동우를 무심하게 바라본 후 지나갔다. 동우도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서운은 옷을 모두 벗고 창가에 섰다. 그리고 백현의 그림자를 보며 가만히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백현이 불을 끄자 욕조에 들어가 몸을 둥글게 말아서 한참이나 뜨거운 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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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백현은 멍하니 창을 보고 섰다. 그러다 서운의 시선을 느낀 후 블라인드를 내리고 불을 껐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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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얘 부모 아는 사람 없어?”
“없대도.”
“미치겠네.”
시장 상인의 대답에 화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백현을 쳐다봤다. 백현은 무슨 죄라도 지은 듯 몸을 잔뜩 움츠렀다. 화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는 사내새끼는 필요가 없어. 아주 지긋지긋한 사람이야. 그러니 너를 고아원에다 맡길 거야.”
백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자는 아마도 이런 백현의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화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우악스럽게도 백현의 손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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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가 고아원인데 왜 애를 안 받아? 여기가 근처에서 유명하고, 다 아는 곳인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저희 아동의 수가 이미 포화 상태라서요.”
수녀의 대답에 화자는 웃옷을 천박하게도 펄럭였다. 커다랗고 주근깨가 박힌 화자의 젖가슴이 다 보일 정도였지만, 화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화자는 소파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리며 백현을 바라봤다.
“아니 내가 얘를 여기에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거였잖아. 내가 미친년이지.”
“그러지 말고 어차피 데려간 아이. 보살펴 주시지요. 그 아이를 다시 버리시면 갈 곳이 없을 겁니다.”
“내가 알 바 아니지.”
화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백현을 차갑게 본 후 수녀가 내준 주스를 모두 마신 후 요란하게도 컵을 내려놓았다.
“지금 당신이 이 자식을 데려 가지 않으면 이 녀석의 삶은 더 힘들 거야. 그런데도 버리는 거야? 하나님을 믿는다고. 수녀복을 입은 당신이?”
“죄송합니다.”
“됐어.”
화자는 그대로 성큼성큼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백현은 수녀가 자신을 보는 그 불편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몸을 더욱 작게 말았다. 아무도 그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버려졌다. 그 순간 화자는 자리에서 우뚝 서더니 백현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고 심호흡을 한 번 고함을 질렀다.
“안 일어나!”
백현은 놀란 눈으로 화자를 바라봤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지랄이야? 너는 여기에 남겨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내일부터 일을 엄청나게 해야 할 거야. 얼른 가자.”
백현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화자의 곁에 섰다. 수녀는 미소를 지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화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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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은 농담이 아니야. 너는 이제 오늘부터 진짜로 고생을 할 거야. 내가 너 일 시킬 거다.”
“네.”
백현의 짧은 대답에 화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입을 열다가 다시 다물었다. 어차피 지금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백현에게 그다지 들리지 않을 거였다.
“어서 걸어. 너 때문에 오늘 장사 공칠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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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네가 다 주워온 거야?”
백현은 손에 가득 들린 버려진 채소 잎들을 가득 든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밝게 웃었다. 서운이 주워온 것들보다 훨씬 더 깨끗한 것들이었다. 화자는 살짝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네 밥값을 하려는 모양이다. 가자. 서운이 그것이 네가 어떻게 될지 목이 빠져라 걱정을 할 테니까.”
백현은 부지런히 화자의 걸음을 따랐다. 화자는 백현이 제대로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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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오지 않을 줄 알았어.”
서운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백현은 가만히 그런 서운의 손길을 느꼈다.
“너는 나를 떠나면 안 돼. 너는 내가 버리기 저에 나를 버리지 마.”
“응.”
서운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을 품에 꼭 안았다. 백현도 그런 서운의 품을 가만히 느꼈다.
“더러운 거지새끼가. 도대체 누구 딸에게 엉기는 거야! 저리 떨어지지 못해! 저리 꺼지라고!”
그 순간 문이 열리고 화자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우악스럽게도 백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대로 마당에 던져버렸다. 백현은 바닥을 뒹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곧바로 화자의 몽둥이가 날아왔다.
“불쌍한 거 주워서 키워줬으면 되는 거지 어디에서 감히 덤벼.”
“엄마 하지 마. 하지 마.”
서운은 화자의 허리를 안았지만 화자는 술이 이미 거나하게 취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백현을 밟기 시작했다
“남자는 다 더러워! 다 더러운 거야. 어디 그 더러운 손으로 내 딸을 만져! 죽어. 죽으라고!”
화자는 발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백현은 몸을 둥글게 말았다. 온 몸으로 날아오는 충격에 숨을 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적어도 아침이 온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염마 제발 이러지 마.”
서운의 비명에도 화자는 발에 주는 힘을 빼지 않았다. 점점 더 거칠게 백현을 밟아갔다. 서운은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됐다.
“엄마 제발 이러지 마. 엄마 이러지 마. 이러다가 정말 죽겠어. 엄마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응? 엄마.”
“미친년이. 너도 내 핏줄 아니랄까봐 지금 사내에 정신이 나가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야? 그러지 마.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너도 그렇게 남자 밝히다가 결국 네 인생 끝이 나는 거야. 너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 이러지 마. 응? 제발.”
화자는 점점 더 발에 힘을 주었다.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백현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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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젠장.”
백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았다. 온 몸이 땀으로 가득 젖었다. 백현은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켰다. 새벽 3시. 또 악몽이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그 어린 시절의 꿈. 백현은 스탠드를 켰다. 그리고 벽에 기댄 후 숨을 내쉬었다. 토할 거 같은 기분. 백현은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운이 뛰어들어왔다.
“괜찮아?”
“왜 왔어?”
“괜찮냐고.”
서운은 곧바로 백현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가만히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 흘렸다. 백현은 서운에게서 느껴지는 온기에 천천히 눈을 감고 조금씩 여유를 즐겼다.
“미안해.”
서운은 백현을 꼭 안고 서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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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오는 거야?”
동우의 물음에 서운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도대체 남의 집 앞에서 뭐 하는 거야? 너 이러면 다음에는 신고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뭐 하는 거지?”
“좋아해.”
동우의 고백에 서운은 싸늘하게 웃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동우를 응시하더니 그에게 다가가서 그대로 뺨을 때렸다. 복도를 울리는 소리. 하지만 동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서운에게 다가와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입맞춤. 서운은 가볍게 입을 열어서 그를 맞이하다가 곧바로 뒤로 물러나서 입술을 닦으며 경멸스럽다는 눈으로 동우를 바라봤다.
“더러운 새끼.”
“좋아해.”
동우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고 그대로 서운은 뺨을 날렸다. 동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운의 집 문을 열었다. 서운은 그런 동우의 뺨을 다시 한 번 때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동우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뺨을 만졌다.
“좋아해.”
동우는 가만히 서운의 현관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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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께서 많이 피곤하시면 스케줄 정리도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말씀만 해주신다면. 제가 간단하게.”
“아니.”
서운의 제안에 백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것까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는 거였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지?”
“여기를 보시면.”
백현의 덤덤함에 서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악몽을 꾸고 난 이후에는 유난히 힘들어하는 백현이었다. 서운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백현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다.
“동정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백현의 차가운 말. 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심호흡을 한 후 가만히 서류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에는 어머니를 뵈러 갈 수 있겠군.”
“그렇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백현은 서운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멀어졌다. 서운은 가만히 그런 백현의 등을 바라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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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너무 재미있단 말이야.”
나은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바라보다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가만히 혀로 아랫입술을 훑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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