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엄마 괜찮아?”
“너는 왜 왔어!”
화자의 고함. 서운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화자가 힘을 주었지만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저리 가.”
“엄마.”
“내 아들. 내 아들을 불러와.”
“엄마가 아들이 어딨어!”
서운의 고함에 화자가 가만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엄마한테 아들 없잖아요. 엄마한테 나만 있잖아. 엄마는 딸만 있어. 딸만 있는 사람이 무슨 아들.”
“내 아들. 백현. 내 아들.”
“엄마.”
“백현 내 아들!”
서운은 화자의 고함이 밖에 들릴까 눈치를 살폈다. 지금이라도 백현이 돌아오면 그녀는 그에게 안길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백현은 병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버린 모양이었다.
“엄마 아들 없잖아. 엄마는 아들이 없어. 오직 딸 하나만 낳았다고요. 그게 나야. 한서운. 한서운. 엄마. 지화자 씨. 정신 차려요.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내 말 좀 들어요. 제발? 응?”
“너는 내 딸이 아니야.”
“엄마.”
“너는 내 딸이 아니라고!”
화자의 악다구니에 서운은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그러지 마. 그러면 백현이가 다 알아.”
“나쁜 년.”
“백현이가 다 알 거야.”
“내 아들. 내 아들 데리고 와라.”
“그러지 마. 엄마. 응?”
서운은 눈을 꼭 감았다.
“엄마가 이러면 나는 다시 한 번 엄마 아들을 버리고 올 수밖에 없어. 엄마가 엄마 아들을 알아봐도. 나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엄마가 자꾸 이러면 엄마 아들만 더 불행해지는 거야.”
화자는 커다란 눈만 끔뻑거렸다. 서운은 몸을 떼고 가만히 화자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이 부잣집 사위 됐어.”
“부잣집?”
“응.”
“얼마나?”
“고깃국 매일 먹는 집.”
“아이고요. 잘 되었다.”
화자의 밝은 미소. 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웃었다. 이게 옳은 거였다. 이게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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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백현이 비틀거리자 영재는 재빨리 그를 붙들었다. 백현은 허탈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니라고 하는군.”
“네?”
“아니야.”
백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어색하게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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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운이라는 분. 어떤 분입니까?”
영재의 물음에 나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그걸 왜 물어?”
“그게.”
“네가 그걸 왜 물어!”
나은의 악다구니에 영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백 사장님이 너무 힘들어하셔서. 도대체 어떤 분이라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힘들어 해?”
“네.”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영재는 나은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유 사장님 표정 같았습니다.”
“나?”
“네.”
“뭐라는 거야?”
나은은 허무하게 웃으며 영재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여자.”
“네?”
“백현 그 사람을 구해준 사람이야. 그 사람이 어릴 적 버림을 받았을 적에. 한서운. 그 여자 어머니가 백현 그 사람을 길렀어. 그렇게 한 집에서 자랐고. 그 여자는 백현의 머릿속에서 어린 구원자였고. 그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지. 뭐 지금은 사랑이라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구원자.”
영재는 나은의 말을 가만히 따라했다. 나은은 그런 영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그의 뺨을 만졌다.
“그런데 너는 뭐니?”
“그게 무슨?”
“나한테 왜 알려주는 거니?”
“연인이 되어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재의 말에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손을 거뒀다. 영재는 그런 나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여우십니다.”
“감히 나를 동정하지 마.”
“그런데 동정을 하게 됩니다.”
나은은 다시 영재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의 뺨을 때렸다. 영재는 그녀에게 뺨을 맞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여우십니다.”
“미친 새끼.”
나은은 욕지거리를 내뱉고 다시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결국 영재는 그녀의 손찌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였다.
“내가 그렇게 불쌍하니?”
“네.”
“그럼 내가 가엽기만 하고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니?”
영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답이었다. 영재는 나은을 가여이 여길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그렇게 불쌍하구나?”
“가여우십니다.”
“가엽다.”
나은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유난히 도드라지는 붉은 입술. 그리고 두꺼운 화장. 하지만 나은의 표정은 그 무엇도 감춰지지 않았다.
“돌아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됐어.”
나은은 술잔을 비우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영재는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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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괜찮아.”
동우는 서운이 자신을 웃은 채로 상대하는 것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서운이 이런 표정을 보인다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거였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병원.”
“어머니?”
“응.”
서운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거라니? 도대체 왜 자꾸만 내 목을 조르는 거야?”
“괜찮아?”
“응. 괜찮아.”
동우는 재빨리 서운의 집을 열었다. 그리고 서운을 침대까지 부축한 후 그녀를 눕혔다. 서운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한서운.”
“엄마가 미워.”
서운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 동우는 그런 서운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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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
“뭐 하는 거야?”
“위로.”
동우는 식탁을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대충 머리를 헝클고 욕실로 들어갔다. 동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까칠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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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어나셨습니까?”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혹시나 위험한 일을 하실까 여기에 있었습니다.”
“미친 새끼.”
영재의 대답에 나은의 입에서 곧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네가 여기에 있으면 백현. 그 사람은 도대체 누가 케어하는 거야? 네가 거기에 가야 하는 거잖아!”
“이제 저는 더 이상 백 사장님의 기사가 아닙니다.”
“그렇지. 이제 기사가 아니지. 더 중요한 비서야. 비서라는 건 훨씬 더 중요한 거야. 당장 백현에게 가.”
나은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영재는 그런 나은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뭐라고?”
“지금 유 사장님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나 신경 쓰지 마.”
나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너는 내 사람이 아니야. 너는 백현. 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가.”
영재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 나은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나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는 유 사장님보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위로하는 법을 알지는 못합니다. 이게 제가 아는 유일한 위로의 방법입니다.”
영재는 몸을 떨어뜨리고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제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얼른 꺼져.”
영재가 밖으로 나가자 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저 미친 새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나은은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절대로 뛰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심장이 뛰었다. 백현이 아닌 사람에게 뛰었다.
“이거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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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위로라니까.”
식탁에 앉은 서운은 미간을 모았다. 잘 차려진 집밥. 서운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뭐 하는 거니?”
“네가 나를 구해줬으니까. 나는 너를 도울 거야.”
“미친 새끼.”
서운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동우는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먹어.”
“비켜.”
“먹으라고.”
“채동우.”
“먹어. 괜찮아.”
동우는 서운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서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국을 떠서 한 숟갈 먹었다. 맛있었다.
“뭐야?”
“집밥.”
“집밥?”
서운은 어색하게 웃은 채로 밥을 넣었다. 따뜻한 밥. 그리고 찌개를 먹었다. 맛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이게 뭐야?”
서운은 고개를 숙였다. 허무했다. 자신은 사랑을 주지 못할 거였다. 그리고 받지도 못할 거였다. 어머니는 그녀를 버린 사람이었다.
“너무 맛있어. 너무.”
동우는 가만히 서운의 어깨를 감쌌다. 서운은 한참이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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