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와 재필의 사정 1
“서우리 씨 저 오늘 야근을 좀 해야 할 거 같은데요?”
“또요?”
외투를 챙기던 우리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자 정식도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입을 내밀었다.
“정말 너무하네.”
“염소망 씨 기획안이 우리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밀기로 한 거 서우리 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요?”
“일을 해야죠.”
“치. 우리 데이트는요?”
“그러게요.”
정식은 우리를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에 턱을 올렸다. 우리는 정식의 허리를 꼭 안으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쩔 수 없죠.”
“그렇죠?”
“기다릴게요.”
“아니요.”
정식은 몸을 살짝 떨어뜨리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서우리 씨 어제도 그리고 그저께도. 나를 기다렸잖아요. 계속 그렇게 기다리라는 말 할 수 없어요.‘
“그럼 팀장님은 내가 야근을 하면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가겠다. 뭐 그런 이야기에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헐. 말도 안 돼.”
우리의 반응에 정식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우리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 눈치를 살폈다.
“뭐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 보는데.”
“야. 이미 껴안고 있는 거부터 문제야.”
소망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하는 퉁명스러운 대답에 우리가 떨어지려고 하자 정식은 더욱 꼭 우리를 안았다.
“염 대리 부럽습니까?”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소망은 볼을 부풀리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내 애인 여기에 취업이나 시켜야겠다. 입사를 해야 나도 그런 거 하지. 하여간 눈꼴 시어서.”
“너도 해라.”
우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정식의 뺨에 입을 맞췄다. 소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홍대에 있을게요.”
“그 친한 오빠라는?”
“네. 우리 결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하려고요. 나한테는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거든요.”
“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이 너무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는 입을 내밀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
“아니. 솔직히 말을 해서. 나랑 뭐. 그렇잖아요. 거기 내가 전에 사귀던 애 사촌 형이 하는 곳인데요.”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겁니까?”
정식의 물음에 우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요.”
“네?”
“어차피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서우리 씨는 가겠다고 하고 그건 싸움이 될 거잖아요. 그건 싫어요.”
“역시. 내 애인 현명해.”
소망은 옆에서 손가락을 입에 넣어 토하는 시늉을 했고 우리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때렸다. 소망은 입을 내밀었다.
“그런 건 좀 나가서 해. 사무실에 아무리 나밖에 없다고 해도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일 하세요. 팀장님.”
“알겠습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가만히 그녀의 손을 만졌다.
“서우리 씨의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그 사람이라고 한 거 기억하고 있어요. 제대로 말이죠.”
정식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그러니까 친구를 만날 수도 있는 거고요. 나도 동창회에 가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만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서우리 씨. 나에게 미안해하거나 불안하게 생각할 이유 하나 없어요. 나는 이미 서우리 씨에게 너무나도 큰 확신을 갖고 있는 걸요? 서우리 씨는 나만 좋아한다. 맞죠?”
“네. 맞아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이 이렇게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럼. 끝나고 홍대로 와요. 맛있는 거 엄마 걸아 어머니 거랑 포장해놓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 건요?”
“그것도요.”
우리는 소망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정식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정식도 그런 우리를 보며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손을 흔들었다.
“안 불안하세요?”
“뭐.”
소망이 묻자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불안하다고 하면 서우리 씨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거잖아요. 어차피 그곳에 갈 건데요.”
“대단하세요.”
“제가 좀 대단합니다.”
소망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자 정식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한 번 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이 정도가 제가 해줄 수 있는 거니까요. 제가 아무리 서우리 씨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서우리 씨의 모든 부분을 다 공유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 시간을 공유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 염 대리도 부탁합니다.”
소망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는 그럴 자격이.”
“서우리 씨는 염 대리 되게 좋아해요. 알죠?”
“네.”
소망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우리의 자리를 바라봤다. 한 번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은 좋은 친구였다.
“친구니까 질투도 하는 겁니다. 그럼 오늘도 힘내서 해볼까요?”
“네. 최대한 빨리 퇴근하죠.”
“알겠습니다.”
소망은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정식은 뭔가 늘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서우리 좋은 남자 만났네.”
소망은 웃음을 지은 채로 자판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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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어?”
“어? 어.”
선재의 가게에 오면 재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선재 때문일까? 무엇 때문일까?
“여전히 자주 오나봐?”
“아무래도 그렇지.”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직도 재필을 보는 것은 그다지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었다.
“너는?”
“나도.”
“아 그래.”
돌아가야 하나? 우리가 망설이는 순간 재필 역시 망설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이러지 말자.”
“어?”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로 지내는 거 너 뿐이야. 헤어진 사이에서 이러는 게 엇기기는 한데. 이러지 말자.”
“이래도 되는 거야?”
재필의 물음에 우리는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에게 좀 너무한가?”
“뭐냐? 너.”
“그러게.”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헛기침을 했다.
“잘 지내?”
“또 그 이야기.”
“나는 잘 지내. 너는?”
“이번에 춤 가르치기로 했어. 고등학생들.”
“잘 됐다.”
“돈은 안 돼.”
재필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재필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
“고맙다.”
“그리고 나 결혼할 거 같아.”
“결혼?”
“응.”
“축하한다고 말하면 우습나?”
재필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축하한다고 말을 해주면 고맙지. 우스울 건 뭐가 있어? 누가 축하를 해주건. 특히나 고등학교 동창의 축하라고 하면 더 반가운 거 아니야? 그런데 너 나 축하해줄 생각은 있는 거야?”
“당연하지.”
우리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필은 여전히 어색하게 웃더니 헛기침을 하고 가게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오는 것을 본 선재가 미간을 모았다.
“너희 뭐냐?”
“이 앞에서 만났어요.”
“왜? 불만이야?”
재필이 공격적으로 말하자 선재는 입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불만이라고 그래?”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늘 앉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재필은 머뭇거리면서 그 옆을 얼쩡거리다 다른 자리로 향했다.
“야!”
그걸 본 우리가 재필을 불렀다.
“같이 앉아.”
“어?”
“같이 앉자고요.”
우리의 말에 재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쭈뼛쭈뼛 자리로 왔다. 우리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너 뭐야?”
“이러다가 네 애인이 보면 화내겠다.”
“팀장님은 그렇게 속이 좁으신 분이 아니라서요. 너랑 되게 많이 다른 분이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걸?”
“그거 서운하다?”
“뭐가?”
“나도 너 남자랑 시간 보내도 아무 소리 안 했거든.”
재필의 볼멘소리에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너도 안 그랬네.”
“그러니까.”
“그런데 우리는 헤어졌지.”
우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자 재필은 침을 삼켰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 내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해서.”
“아니야.”
재필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왜 그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선재는 음식 세 그릇을 한 번에 가지고 오며 가볍게 어꺠를 으쓱했다. 우리와 재필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제 이것들 정신 좀 차렸네.”
“그럼요.”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보며 박수를 쳤다.
“오빠 음식은 진짜 최고에요.”
“그걸 몰랐어?”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밝은 대답에 선재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필도 그런 둘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해.”
“뭐가?”
“두 사람이 친한 거.”
“이게 뭐가 신기하냐?”
선재가 가볍게 타박을 하자 재필은 입을 내밀었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 이 상황을 그저 즐겼다.
“그런데 요즘 손님이 줄어서 어떻게 해요?”
“이게 딱 좋아.”
“딱 좋다고요?”
“괜히 많아 봐야. 단골들은 서비스가 나빠졌다고 하고 있고. 새로운 사람들은 그 정도 맛이 아니라고 하고. 이게 딱 좋아. 그리고 네가 와도 네가 먹고 싶은 거 바로 먹을 수 있는 거고 말이야.”
“그러네요.”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다. 적당한 사람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 모든 게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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