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 4
“축의금을 달라니?”
“그러니까.”
집으로 가니 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서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였다.
“아까 퇴근을 하는데 회사 앞에서 기다리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만났더니 축의금을 달라고 하더라고.”
“뭐?”
은화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염치로?”
“자기가 여기저기 낸 돈이 많다고.”
“미쳤어.”
은화가 휴대전화를 잡자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엄마 하지 마.”
“뭘 하지 마?”
“엄마. 제발.”
우리가 아랫입술을 물면서 간절한 표정을 짓자 은화는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딸에게 아무 것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왜 이리 무능하니?”
“엄마. 그러지 마요.”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고 은화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엄마가 있어서 어떤 결정이건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만나서 얘기해야겠어.”
“내가 할게.”
“하지만.”
“어차피 나를 또 찾아올 거야.”
우리의 말에 은화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모든 일이 너무 어렵게만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너한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라니? 이게 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생기는 거 같아.”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우리는 은화의 머리를 만져주며 입꼬리를 올렸다.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야. 사랑해요.”
“그래. 딸 고마워.”
은화는 그런 우리의 손을 곡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모르겠어요.”
정식의 물음에 우리는 혀를 살짝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뭔가를 해야 하기는 하는데. 내가 먼저 나서서 연락을 하자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사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무섭거든요. 정식 씨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는 것으로도 좋다고 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식은 재빨리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감히 서우리 씨의 마음 같은 것에 대해서 지레짐작 하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서우리 씨가 아니니까. 그냥 나는 서우리 씨 곁에서 서우리 씨가 하자는 거. 그대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냥 서우리 씨가 어떤 결정을 내리건. 나는 그 결정을 지켜볼 겁니다. 알죠?”
“고마워요.”
우리는 정식의 손을 꼭 잡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정식의 커다란 손이 더욱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
“에? 그렇게 작게?”
“왜?”
“아니.”
우리가 결혼식을 하더라도 선재의 카페에서 한다고 하자 소망은 입에 젓가락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작다.”
“뭐가 작아?”
“아니. 너도 회사 다니면서 여기저기 낸 돈이 얼마인데? 그런 거 다 생각하면 너무 아쉽지 않아?”
“그거 다 축하하려고 내는 거지. 뭐 다 돌려받으려 내는 거야?”
“사실 다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의 대답에 소망은 볼을 잔뜩 부풀렸다.
“나는 아까워.”
“그래서 너는 초대하려고. 염소망. 너는 유일한 내 회사 동기니까 축의금 얼마 받는지 제대로 기억할 거야.”
우리가 머리를 가리키며 밝게 웃자 소망은 입을 삐쭉했다.
“하여간. 내가 서우리를 말로 이길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지. 하여간 서우리 말은 잘해요. 내가 말로 어떻게 이겨?”
“알면. 잘 해.”
“예. 예.”
소망이 손을 비비는 흉내를 내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식당 밖을 보고 그대로 몸이 굳었다.
“너 왜 그래?”
“그러니까.”
지광은 그대로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우리의 음식을 바닥에 던지고 그녀의 뺨을 때렸다. 엄청난 소리. 그 기세에 누구도 지광을 말리거나 할 수 없었다.
“아, 아저씨 누구에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소망이었다. 하지만 소망에도 지광은 눈을 사납게 뜨며 쏘아봤다.
“내가 이 년 애비다. 이 망할 년. 네가 네 애미한테 뭐라고 지껄였길래 그 미친 여편네가 전화를 하고 지랄이야! 감히 나한테 눈도 못 뜨던 년이! 뭐? 네가 하자는 대로 해? 이런 건방진 년!”
우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거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나가서. 나가서 얘기해.”
“뭘 나가서 얘기해!”
“나가서 얘기하자고.”
우리가 아랫입술을 물고 자신을 노려보자 지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광은 그리고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우리야 괜찮아?”
“응.”
소망은 우리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지만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괜찮았다.
“나 가서 할게. 내가 알아서 할게.”
“하지만.”
“괜찮아.”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들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한 후 허리 숙여 인사하고 가게를 나섰다.
===============
“그게 무슨?”
소망에게서 전화를 받은 정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
“이런 배은망덕한 년.”
“뭐라고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돈 네가 다 먹어서 뭐 하려고?”
“걱정하지 마요. 어차피 축의금 안 받고 결혼할 거야. 그러니까 그런 거 아까워하지 말아요. 어차피 거기에서 돈 벌 생각 없으니까.”
“뭐라고?”
우리의 말에 지광의 눈은 흔들렸다.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혀로 아랫입술을 적신 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폭행죄로 신고할 거고.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 낼 거예요?”
“이런 미친 년이. 어디 지 애비한테!”
“당신이 아버지라고?”
우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기 딸한테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아버지야?”
“건방진 년!”
“닥쳐요!”
우리가 고함을 지르자 지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역겨워.”
“미, 미친.”
“내가 왜 당신 같은 사람의 딸인지 모르겠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이 너무 부끄러워.”
“뭐라는 거야. 이 망할 년아!”
지광은 다시 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손을 보고 피하지도 않고 매섭게 노려봤다. 지광은 감히 그녀를 때리지 못하고 가만 손을 내렸다.
“나는 너를 그 동안 키워줬으니 그 돈을 다 받아야겠다.”
“청구해요.”
“뭐?”
“법적으로 청구하시라고. 그러면 내가 법원에 공탁을 할 거니까. 엄마한테 위자료는 제대로 줄 준비 하고 있어요?”
“위자료?”
지광은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만 있었던 여편네한테 내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나는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법언도 그리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우리의 덤덤한 대답에 지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뒤로 넘긴 후 고개를 흔들었다.
“나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야.”
“미친 년.”
“지금 당신하고 사는 그 여자가 불쌍하네. 당신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당신 같은 멍청이를 좋아하고.”
지광은 결국 다시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우리에게 내리치려는 순간 정식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만 하시죠.”
“너는 뭐 하는 거야!”
지광은 정식에게도 고함을 치며 주먹을 날렸지만 정식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여유롭게 그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지광은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서 앞으로 몇 걸음 내딛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서우리 씨 가죠.”
정식은 그대로 우리의 손을 꼭 쥐고 끌었다. 우리는 잠시 지광에 시선을 두더니 그대로 따라왔다.
=================
“괜찮습니까?”
“네.”
차에 오르고 나서야 우리는 얼굴이 붉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창피해.”
“뭐가 창피해요?”
“회사 앞 식당이야. 그리고 소망이도 있었어. 나 너무 창피해. 나 너무 부끄러워. 그냥 죽고 싶어.”
“내가 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품에 안았다.
“서우리 씨. 나는 서우리 씨가 너무 좋습니다.”
“지금 갑자기요?”
“네. 갑자기요.”
정식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우리 씨는 그래도 밝게 자란 거 아닙니까? 너무나도 선하게.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말이죠.”
“아니에요.”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고마웠다. 잘 컸다는 말이 행복했다.
“나 정말로 잘 컸어요?”
“네.”
“고마워요.”
우리는 그대로 정식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나 너무 부끄러워. 나도 저런 사람이 될까봐. 나도 저렇게 무서운 사람이 될까봐. 나쁜 사람이 될까봐.”
“내가 계속 서우리 씨를 믿고 서우리 씨 옆에서 지켜줄게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우리 씨를 사랑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말아요. 서우리 씨. 당신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염소망 씨도 다른 이들에게 아무 말 하지 않을 거예요. 염소망 씨가 가끔 푼수처럼 이야기를 하기는 해도 그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정식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우리는 미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댁이고 정식의 눈을 바라봤다.
“나 눈 부었죠?”
“그래도 예뻐요.”
정식은 우리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가볍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후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그 입술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
'☆ 소설 창고 > 우리의 시간[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마지막 장 6] (0) | 2016.11.24 |
---|---|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마지막 장 5] (0) | 2016.11.23 |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마지막 장 3] (0) | 2016.11.18 |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마지막 장 2] (0) | 2016.11.18 |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마지막 장 1] (0) | 2016.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