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고비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슨 컨설턴트가 이래?”
“네?”
원종이 빈정거리자 태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이틀 식당에 나타나지 못한 거였다. 그런데 손님의 수가 엄청났다.
“돈이라도 쓴 겁니까?”
“뭐라고요?”
지우가 눈을 흘기자 태식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재빨리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걸쳤다.
“뭘 해야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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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꼬맹이들은 안 오고 있어요?”
“학교에 있죠. 제가 학기 중에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데. 여기에서 일을 하고 나서 녹초가 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지우의 말에 태식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며 한숨을 토해냈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뭐가 안 되는 건데요?”
“너무 빠르잖아요.”
태식의 대답에 원종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식당이 잘 되면 좋은 거지. 그래서 안 될 이유는 또 뭐가 있습니까? 이 사람 이상하다니까?”
“가만히 좀 있어.”
지우가 자신을 타박하자 원종은 입을 내밀고 지우개 밥을 들고 식당을 나섰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빠른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음식만 하더라도 저 혼자 하는 것이 감당이 안 되고 있으니까. 그리고 원종이에게 도움을 달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혼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요.”
“네?”
“갑자기 더 준비도 하지 말고요. 그냥 끝이 나면 오늘은 영업을 그만 하면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건.”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식당에 손님이 줄을 서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그걸 그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렇게 장사를 하다가 말 거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식당 더 오래 가기를 바라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거라면 이제 완급 조절을 해야만 합니다. 더 달리기만 하면 안 될 겁니다.”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식의 말이 옳았다. 한 번은 숨을 고라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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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 그래도 너무 가게 안 오는 거 아니야?”
“네?”
태식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준재는 고개를 들었다.
“왜요?”
“요즘 손님이 너무 늘었어.”
“손님이요?”
준재와 형진이 놀라서 서로를 바라봤다. 태식은 가볍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입을 내밀었다.
“어떤 블로거가 그 식당을 썼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낮에 줄을 설 정도로 엄청나다고 하더라고.”
“그게.”
준재는 침을 삼켰다. 부끄러워서 피한 거였다. 괜히 창피해서. 태식은 준재를 보더니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너는 꼬맹이가 아니라고 하더니 하는 일은 꼬맹이 같다.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믿어.”
준재는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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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왜?”
“내가 바보 같아서.”
형진은 가만히 준재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뭐가 바보 같냐?”
“아니 고백 좀 하고 차였다고. 어떻게 한 번을 안 갈 수가 있냐? 사장님 혼자서 얼마나 바쁠지 다 알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고 멍청한 거냐?”
“그래서 네가 뭘 할 수가 있는 건데?”
“어?”
형진은 진지한 눈으로 준재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한숨을 토해냈다.
“야. 친구야. 너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너 당장 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데 네가 지금 도대체 누구를 도와? 네가 민폐만 안 끼쳐도 그거 괜찮은 거야.”
“그건 그렇지.”
준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사실이 없다는 게 괴로웠다.
“나도 남자이고 싶어.”
“너 남자 맞아.”
“아니.”
준재는 허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남자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남자야? 내가 사장님에게 좋다고 말을 했는데도. 사장님은 나를 아무 걸로도 보지 않는데. 나는 사장님에게 아무 것도 될 수가 없는 사람인데. 내가 도대체 어떻게 남자야?”
“사장님이 너를 이상하게 보면 그게 더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그게 더 이상한 걸 걸? 내가 보기에 그래?”
“그런가?”
준재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복잡했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식당.”
“늦었어.”
“하지만.”
“지금 가면 민폐야.”
형진의 말에 시간을 확인하니 그 말이 옳았다. 준재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형진을 바라봤다.
“나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더라도 그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는 그냥 사장님을 도울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거.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거야.”
“그래.”
형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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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도 꽤 많이 올라왔네.”
지우는 휴대전화로 자신의 가게를 바라봤다. 지우개를 찍고 간 사람들의 댓글도 꽤나 많았다.
“지우개 너 인기 스타다?”
지우개가 짖으며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었다.
“또 뭐라고 썼나.”
그리고 순간 지우의 손이 굳었다. 지우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우애게 몸을 비볐다.
“뚱뚱하다. 사장이 너무. 몸에 나쁜 음식 같아.”
지우는 중얼거리며 화면을 넘겼다. 그런 식의 댓글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뚱뚱하구나. 그래서 믿음이 안 가는구나.”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봤다. 뚱뚱한 여자. 가슴보다 배가 더 많이 나온 여자. 거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네.”
지우는 허무하게 웃었다.
“내가 뚱뚱하네.”
내 음식이 내 몸으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했다. 지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으로 배를 만졌다. 두툼했다. 남들보다 초라했다.
“그러네. 내가 뚱뚱한 거네.”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과연 자신이 이 식당을 운영할 자격이 있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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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대학을 안 갈 거야?”
“네.”
담임의 물음에 준재는 간단히 대답했다.
“어차피 대학에 간다고 해도 등록금도 없고. 대학에 간다고 해서 취업을 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 다 가는 대학. 그거 한 번은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 요즘에는 학자금 대출도 있고.”
“아니요.”
담임의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준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안 그래도 여유가 없는데 더 자신을 갑갑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거 저랑은 어울리지 않는 길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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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대학 안 간다고 했다며?”
“당연하지.”
준재의 대답에 형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 그거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냐?”
“왜?”
“아니 내가 말했잖아. 네 인생은 네 인생이야. 도대체 왜 사장님에게 네 인생을 맡기려고 그래?”
“사장님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인생 찾을 수 있었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건.”
준재의 물음에 형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 지옥 같은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지우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생을 맡길 수 없는 거잖아. 사장님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거 너도 알잖아.”
“내가 너보고 같이 하라고 하자는 거 아니잖아. 나 혼자 할 거라고. 너도 들었잖아. 손님이 너무 많았다고. 그거 혼자서 다 감당 못한다는 거 너도 들었잖아. 너보고 같이 하자고 안 할 거야. 내가 할 거야. 내가 할 거라고. 그러니까 너 이상한 말 하지 마. 내가 사장님을 도울 거니까.”
“누가 돕지 말래?”
준재의 대답에 형진은 입을 내밀었다. 그 역시 지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고맙다고 해서 뭐든 다 할 수는 없어.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찾고 그래야 하는 거니까.”
“나는 지금 내 인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장님이야. 사장님에게 일단 나를 모두 걸고 싶어. 그게 옳은 거 같아.”
준재는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일단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했다. 자신을 남자로 보건, 남자로 보지 않건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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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돼지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보인다?”
“괜찮아.”
“장돼지.”
“괜찮다고!”
지우가 고함을 지르자 식당 안에 정적이 흘렀다. 지우는 애써 미소를 지은 채로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원종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지우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서 그녀를 응시했다.
“너 왜 이래?”
“내가 뭐?”
“너 지금 이상해.”
“장지우 씨 뭐 하는 겁니까?”
태식도 뒤늦게 주방으로 따라들어왔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아니었다.
“내가 무슨 식당을 해요?”
“장지우 씨.”
“나 뚱뚱하고 되게 못났어. 사람들이 역겨워하는 사람이라고요. 내가 만드는 음식 먹을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원종은 태식을 바라봤지만 태식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지우는 앞치마를 벗었다.
“나 갈 거예요.”
“장지우 씨.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게 내 꿈인 건지. 내 엄마 꿈인 건지 모르겠어. 내가 정말 바랐던 건지. 그런 거 정말 모르겠어요.”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낸 후 그대로 뒷문을 열고 나갔다. 원종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우리가 영업을 해야죠.”
“할 수 있습니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원종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태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원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홀로 나갔다. 그리고 준재가 열심히 손님을 응대하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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