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마음의 그늘
“이제 끝났냐?”
교문을 나서던 준재와 형진이 멈춰 섰다. 센터장이 그들을 기다리면서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준재의 날카로운 질문에 센터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준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미간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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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 들어올 거야?”
“네.”
“왜?”
센터장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금방이라도 소리르 지르고 싶었지만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너희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어. 너희 생일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너희 보호자라는 것을 잊은 거야?”
“보호자라는 사람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게 되면 재미있을 거 같지 않습니까?”
“뭐라는 거야?”
센터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썼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런 걸 마시는 건지. 준재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센터장을 바라보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요즘 들어서야 겨우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 너 쓸모 있어. 네가 있어야 내가 돈을 받을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너보고 쓸모가 없다고 했어?”
“센터장님.”
“돌아가.”
“싫습니다.”
준재는 단호했다. 형진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센터장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김형진 너라도 돌아가.”
“네?”
“안 돼.”
준재가 형진의 손을 잡았다. 그런 준재의 반응이 센터장의 무언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센터장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런 식으로 갑자기 나가면 우리가 얼마나 손해가 막심한 줄 알아?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사람이 살고자 하는 것을 막는 거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도대체 뭔데? 네가 뭘 할 수 있는 건데?”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준재는 고개를 돌렸다. 태식이었다. 센터장은 낯이 익었는지 미간을 모았다.
“뭐 하는 겁니까?”
“이 녀석들 보호자라도 됩니까?”
“네. 보호자 맞습니다.”
태식은 두 아이의 뒤에 가서 씩 웃었다.
“그러니 그만 방해하시죠.”
센터장은 세 사람을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 사라졌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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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계속 오면 어떻게 해요?”
“이제 곧 졸업이니 문제가 없을 겁니다.”
지우가 자신을 보는 눈빛에 걱정이 어리자 준재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지우가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은 지우가 보기에 어린 아이였고, 지우가 보기에 자신은 지켜줘야만 하는 꼬맹이니까.
“일단 내가 학교를 데려다줄까?”
“아니요.”
지우의 말에 준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은 절대 사양이었다. 어른스럽게 보이기도 모자란 순간이었다.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일단 믿죠.”
태식의 말에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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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아직은 네가 어린 아이라는 거 인저을 해야 할 거 같은데? 괜히 잘못하다가 문제가 생긴다고.”
벽에 기대 낮게 충고하는 태식에 준재는 괜한 반감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죠?”
“사실 그대로.”
“그쪽도 숨긴 게 많은 거 같은데. 나도 숨긴 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서로 자극하지 말죠.”
“글쎄다.”
준재의 경고에 태식은 이리저리 목을 풀며 씩 웃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장지우 씨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한 건 너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진심으로 너를 걱정하니까. 그래서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너 혼자 자격지심 같은 거 가질 이유 없어.”
“그런 거 없어요.”
“그러면 다행이고.”
태식이 씩 웃고 식당으로 들어가자 준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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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주랑 달걀말이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우는 땀을 훔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준재가 묵묵히 달걀을 풀고 있었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당연한 일인데요.”
“네 덕에 그래도 수월해.”
지우의 말에 준재의 얼굴이 붉어졌다. 준재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 그대로 도망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주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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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인데 다 팔린 거면 괜찮은 거죠?”
“당연하죠.”
태식의 물음에 지우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자까지 붙어서 겨우 해결을 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기는 해요. 사람들이 블로그에 이렇게 반응을 보이고.”
“그거 아닙니다.”
“네?”
태식이 대답하자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요?”
“장지우 씨가 열심히 하니까 사람들이 그걸 보고 오는 겁니다. 애초에 장지우 씨가 식당을 이렇게 만들어놓지 않았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 겁니다. 와도 바로 실망을 하고 유명해지지 않았겠죠.”
“지금도 유명하지 않아요.”
“아무튼요.”
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는 하겠으나 그래도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식으로 칭찬을 듣는 것이 묘한 기분이었다.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엄마가 있을 적에 이렇게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더 기뻐하고 그랬을 거예요. 더 좋아했을 텐데.”
“그때도 사람이 많았어요.”
준재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죠.”
“지금이 더 좋습니까?”
“모르겠어요.”
태식의 물음에 지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더 좋은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었으니까.
“다만 지금처럼 사람이 많았더라면, 사람들이 엄마의 음식을 좋아한다는 어떤 증거? 같은 것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엄마가 한 일이 올흔 일이라고. 그게 좋은 일이었다는 어떤 표식 같은 거요?”
“충분히 잘 됐었습니다.”
태식의 말에 지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냥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잘 된 겁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러 온 거니까요. 다른 의미로 유명했죠. 사람들은 지우개 식당에 와서 밥만 먹고 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채우고 갔죠.”
“마음.”
뭔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지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은 유정이 될 수 없었다.
“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네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니요.”
지우는 손을 비비며 고개를 저었다. 밥을 먹던 형진이 가만히 눈치를 살폈다.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뭘 더 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해야 해요. 저는 그런 밥집. 식당을 운영할 재주는 없으니까.”
“에이. 왜 또 이래요.”
준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저씨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게 아니잖아요. 사장님이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잖아요. 사장님께서 굳이 그렇게 반응하실 이유 없어요. 사장님께서 잘 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아니.”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자신이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의 식당하고 달라.”
“뭐가 달라요?”
“손님들 표정.”
“표정이요?”
“응.”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엄마가 식당을 할 때는 나가는 손님들의 얼굴이 더 밝았다.
“그 사람들은 정말 밥을 먹고 간 거니까. 그런데 나는 밥을 팔고 있어. 그 사람들은 밥을 사고 간 거야.”
“그게 그거죠.”
“달라.”
“다르죠.”
태식도 지우의 말에 보탰다. 준재가 그를 노려봤지만 태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우를 응시했다.
“장지우 씨.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던 식당을 다시 돌리고 싶다고 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먼 거 같습니다.”
“그런 거 같네요.”
답답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노력해야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너무나도 힘들고.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해냈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힘든 일을.”
“조금 더 손님들을 위해서 장사를 해요.”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야죠.”
손님들을 위해서 장사를 한다. 그런 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어떤 거짓으로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순간이 와야지만 장지우 씨의 음식을 먹고도 사람들이 더욱 행복한 표정을 짓고 나갈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네?”
“우리 엄마 밥을 되게 많이 먹은 사람 같아.”
지우의 말에 태식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지우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뭘 더 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요?”
“뭘 더 해야죠.”
“그거 어려운 거 알죠?”
“알고 있습니다.”
태식의 덤덤한 대답에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쭉 내밀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이제 다들 퇴근해요. 나 이제 쉴래.”
“네.”
“저기.”
“괜찮아.”
준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지우는 일부러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준재는 참 밝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을 위로를 하려고 하는 거였다. 굳이 그런 위로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형진아. 너 아직도 먹을 거야?”
“다 먹었어요.”
밥그릇을 비운 형진을 보며 지우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더 포장을 해줘.”
“아니요. 아저씨가 아침을 잘 해줘요.”
“그래?”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 지우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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