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두 남자
“그런 질문 되게 우습지 않아요?”
“뭐?”
준재의 물음에 태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준재는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아저씨도 아저씨의 정체에 대해서 사장님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잖아요. 그래놓고 왜 나에게 그래요?”
“너는 이상하니까. 너는 너무나도 이상하니까 그러지. 도대체 네가 뭔지 나는 모르겠어서 그러는 거거든.”
“저도 아저씨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이러는 거거든요. 사장님 곁에 나만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준재의 대답에 태식은 심호흡을 하고 혀로 입술을 훑었다. 일단 이 말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준재는 자신이 지우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시인한 거였다. 도대체 왜인지를 알아야 하는 거였다.
“도대체 뭐야? 너? 너 도대체 장지우 씨에게 뭘 바라고 거기에 있는 거야. 뭘 얻기를 바라는 거냐고.”
“얻고 싶은 거 하나도 없어요. 나는 진짜로 사장님이 좋아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저씨야 말로 이상한 말 좀 하지 마요. 아저씨가 더 이상하지 않아요? 아저씨는 도대체 어른이 거기에 왜 있어요?”
“그러게. 왜 그런 걸까?”
태식은 머리를 헝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럴 이유가 있는 사람이야.”
“나도 그럴 이유가 있어요.”
“그게 이상하다고.”
“뭐가 이상한데요?”
“갑자기 없던 아버지가 생겨난 거 같거든. 장지우 씨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갑자기 생겨서 말이야.”
준재가 순간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태식을 응시했다. 태식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너 도대체 그 사람 아버지에 대해서 뭘 알아?”
“아저씨는요?”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지?”
“아니에요.”
준재는 순간 아차 했다. 이 말을 했다는 것은 자신이 지우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었다. 태식도 준재의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 사람 아버지랑 너랑 무슨 상관인 거야? 너는 도대체 뭘 바라고 거기에 그냥 있는 건데? 이해가 안 되잖아.”
“뭘 바라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준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지우가 걱정이 되어서 같이 있는 거였다. 금전적인 보상 같은 것과 관련이 없었다.
“아저씨야 말로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도대체 뭘 바라고 거기에 붙어있는 건데요? 이해가 가지 않잖아요.”
“네가 먼저 말을 하면.”
“뭘 말해요?”
“진실.”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태식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이리저리 목을 풀고 입을 내밀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을 해야지. 나랑 대충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이야.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라니.”
준재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야?”
“진심이에요.”
“거짓말.”
“뭐라고요?”
“너는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많아.”
태식은 순간 얼굴을 훅 앞으로 기울였다. 준재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아저씨야 말로 도대체 왜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거죠? 도대체 왜 모든 걸 다 숨기는 거죠?”
“그러게.”
“그러게라니.”
준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런 식으로 그저 놀림만 당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뭘 알고 싶은 거죠?”
“모든 걸.”
“모든 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요?”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저씨는 아무 것도 몰라요.”
“내가 뭘 모른다는 거지?”
“사장님이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곳에서 얼마나 아팠는지. 그랬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뭘 아는 척 하지 말아요. 결국 아저씨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래.”
태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잊고 있었던 약속이었다. 그것을 그저 지키려고 온 것일 뿐이었다.
“나는 장지우 씨의 어머니로부터 부탁을 받았어.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아버지로부터 부탁을 받은 거지.”
준재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훑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건 무엇도 다르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 둘 다 장지우. 그 사람을 도우려고 한다는 게 같은 거지.”
“그래서 뭘 하자고요?”
“그러게.”
준재의 날카로운 물음에 태식은 킬킬거리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순간 눈빛을 바꿨다.
“장지우 씨에게 모든 걸 말해. 그 사람에게 아버지가 있다고. 그리고 네가 그 사람의 아버지 때문에 자기를 돕는 거라고.”
“단지 그거 때문에 돕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사장님이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래서 돕는 거라고요.”
“그런데 왜 진작 돕지 않았지?”
“아직 어른이 아니었으니까.”
준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태식은 심홓브을 한 번 하고는 씩 웃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머리를 헝클었다.
“그렇군. 너는 어른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는 아저씨는 어른의 자격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태식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 역시 결국 어른이 아니었다. 준재와 고작 이런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거니까.
“나는 장지우 씨가 성공하기 바라. 그리고 더 자유롭기를 바라. 그래서 내가 그 식당을 맡는 거야.”
“자유.”
“너는 그런데 뭐지? 너는 그 사람의 가게를 도우면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는 거야? 장지우 씨는 점점 더 바빠지면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잊고 있어. 나는 그 사람에게서 가게를 가지고 올 거야. 그리고 장지우 씨가 정말로 자신이 하는 일을 찾게 만들 거야. 그게 내 목표야.”
“나도 같아요.”
준재는 고개를 숙인 후 발로 가볍게 돌멩이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거. 그래서 조금 더 행복해지는 거. 이것은 준재 역시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나를 방해하지 마요.”
“내가 너를 방해한다고?”
“당연하죠.”
준재의 대답에 태식은 입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떡하냐?”
“뭘요?”
“너나 나나 이러다가 정말로 장지우 씨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 건데. 그 여자는 정말로 특별한 여자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요.”
준재가 검지를 치켜세우며 자신을 가리키자 태식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씩 웃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어. 네가 말하는 그런 식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고, 너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 우리 두 사람 재미있겠네.”
“도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거죠?”
“그러게.”
태식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멀리서 형진이 오는 것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형진이 오네.”
“아저씨.”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래도 지금 너희를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건 나 아니냐. 나. 그리고 장지우 그 사람도 있지.”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적이 되면 안 되는 거지. 서로를 위해서도. 그리고 장지우 씨를 위해서도. 안 그래?”
그랬다. 준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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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지 않아?”
“그런가?”
김치볶음을 먹은 원종의 평가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약간 달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 엄마가 써준 요리법 그대로 따르는데 도대체 왜 맛이 다른 거지? 엄마 건 이렇게 안 단 거 같았는데.”
“비법이 있으셨나?”
“그걸 딸한테 안 알려주신다고?”
“그러게.”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유정을 따라잡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나 우리 엄마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되게 맛있고 대단한 거였나봐.”
“내가 말했잖아. 어머니 요리 정말로 잘 하셨다고. 너는 도대체 내 말을 뭐로 듣고 그렇게 말하냐?”
“그래도.”
지우는 한숨을 토해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려고 하다가도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턱 하고 막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거였다.
“손님들에게 미안해.”
“뭐가 미안해?”
“엄마의 음식과 다르니까.”
“그건 다르지.”
지우가 시무룩해지자 원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지우개도 곁에 와서 가볍게 몸을 비볐다.
“그나저나 이제 손님이 다시 주는 거 같지?”
“그게 당연하지.”
“그래도 아쉽다.”
원종은 식당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처음에 소님이 엄청나던 것에 비해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맞아. 오히려 아저씨들도 못 오시고. 원래 와서 밥을 먹던 분들이 못 오니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러잖아. 어차피 그거 보고 오는 사람들은 한 번 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걸?”
“그렇지.”
“아직 장사해?”
순간 식당의 문이 열렸다. 늘 오던 단골 아저씨였다.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 동안 손님이 좀 많았어야지.”
아저씨는 머쓱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영업 끝난 거야?”
“그게. 지금 메뉴판에 있는 거 몇 가지가 안 되는데. 아저씨는 단골이니까. 일단 들어오세요. 있는 걸로 드릴게요.”
“끝난 거면 갈게.”
“아니요.”
지우는 곧바로 미소를 지은 채로 아저씨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 근처에서 가장 제대로 밥을 해주는 집은 여기. 지우개 식당이니까. 편의점 음식은 영 음식 같지가 않아.”
“편의점 음식 드셨어요?”
“그럼. 집에 가야 밥 줄 사람도 없고. 여기에서 밥을 먹는 게 그나마 낙이었는데 요즘 못 온 거니까.”
“그러시구나.”
원종은 주방에 가서 밥과 국, 그리고 간단한 반찬과 달걀 부침을 가져왔다. 아저씨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집밥이네.”
“그래요?”
“이런 게 좋아.”
아저씨는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지우개 식당의 좋은 점이야. 정말로 집에서 먹는 거 같거든.”
별 거 아닌 말이었다. 하지만 어떤 믿음 같은 것이 되는 말이었다. 원종은 지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거 뭐 드릴까요?”
“아니.”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걸로도 충분해. 아주 충분해.”
“네. 맛있게 드세요.”
지우는 씩 웃으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사라졌던 자신감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겨우 말 하나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가 이래서 장사를 했나.”
“그러실 지도.”
지우는 지우개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행복했다. 엄마가 뭘 했던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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