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진실 1
“네가 돈을 왜 주냐?”
“나중에 갚으라고.”
준재는 지아에게서 받은 통장에서 뺀 돈을 형진에게 건넸다. 형진은 그 돈을 받으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왜?”
“당장 입학금 내고 나면 너 돈 남아? 아니잖아. 이제 학교 갈 건데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거 아니야.”
“너는?”
“말 했잖아.”
준재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 누웠다.
“나 어차피 학교도 안 갈 거고. 이러고 있다가 나중에 신검 받으라고 하면 그거 받고 군대 갈 거야.”
“미친.”
“그러니까 받으라고.”
형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준재의 침대에 올라와서 미친 듯 키스를 퍼부었다.
“미친 새끼 꺼지라고.”
“사랑해. 친구야.”
“꺼지라고.”
준재가 비명을 질러도 형진은 비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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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래도.”
“됐어.”
“야.”
“하지 말라고.”
원종의 말에 지우는 입을 내밀었다. 원종의 말처럼 자신이 돈이 없었지만 그래도 형진을 돕고 싶었다.
“걔네 힘든 애들이잖아. 내가 당장은 걔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서 돕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야?”
“너야 말로 네 삶이나 찾아. 너도 그냥 식당에서 이러고 있으면서 도대체 누구를 도와? 너도 얼른 학교 가야 할 거 아니야. 남들 다 가는 대학교. 그거 한 번 안 갈 거야? 너도 가야지.”
“남들 다 가는 거 가야해?”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릴 적에는 꼭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남들 다 가는 거 나는 흥미없어. 그런 거 가서 나는 잘할 자신도 없고. 어차피 실패할 거야.”
“장지우.”
“진심이야.”
지우는 지우개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물렀다.
“알아. 네가 왜 화를 내는 건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건데. 그래도 이건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울 거야.”
“그런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줘? 아무도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 몰라. 아무도 모를 거라고.”
“너랑 나. 그리고 형진이랑 준재가 알잖아. 이 정도만 알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냥 주는 거 아니야. 나중에 다 받을 거야. 그러니까 너 이상한 말 하지 마. 준재에게도 줄 거니까.”
“야.”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우의 말투에 원종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지우의 말이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거 아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너무 과해.”
“하나도 안 과해. 준재가 나타지 않았더라면 나 이렇게 노력하지 않았을 테니까. 식당 지금처럼 되지 못했을 걸?”
“그건 그렇지만.”
원종은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준재 덕분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까지 그렇게 주는 것은 무리였다.
“애초에 그 사람 집에 부탁한 것도 너야.”
“그러니까.”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이 그런 거 해주는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거니까.”
“그 녀석 이상해.”
“어?”
“이상하다고.”
갑작스러운 원종의 말에 지우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했잖아. 좋은 차에서 내렸다고. 그 녀석 자기 나름대로 숨기는 거 있어. 네가 그렇게 잘해줄 이유 없어. 아무 이유도 없이 잘 해주는 사람 없다고. 네가 말했잖아. 그래놓고 믿는 거야?”
“단골이래.”
“그 말을 믿어?”
“믿어.”
지우는 힘을 주어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믿지 못해도 준재는 믿어야만 했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너도 그만해.”
“미치겠네.”
원종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준재에게 뭔가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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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축하하네.”
“아닙니다.”
지우의 아버지는 준재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준재는 그것을 받지 않고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이게 뭡니까?”
“선물일세.”
“아니요.”
준재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우가 더 행복하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돈 때문에 거기에서 일하는 거 아니에요. 사장님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바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주는 걸세. 자네는 정말로 지우 그 아이를 위한 사람 같으니까. 참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사내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준재를 응시했다. 그 시선이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아이처럼 행동하지는 말게.”
“네.”
“지우는 잘 하고 있나?”
“잘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사내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준재는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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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달걀이 다시 풀려서 다행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달걀말이도 팔지 못할 뻔 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한 판에 만 원이 뭐냐? 만 원이. 그거 다 감당하다가는 가게 망할 거 같은데?”
“그래도.”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손에는 지우개의 목줄을 잡고 한 손에는 달걀을 들고 있으니 마음이 좋았다.
“그나저나 우리 아저씨는 언제나 다시 달걀을 주시려나. 아직까지 제대로 수급을 못 하고 계시다던데.”
“그거 거짓말 아니야?”
“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달걀이 없을 리가 있어? 이거 분명히 중간에서 누가 사재기를 해서 그런 거라고. 지금 봐. 미국에서 달걀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갑자기 가격이 내리는 거. 이게 문제야. 문제.”
“그래. 문제다.”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원종의 말에 대꾸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 우뚝 섰다. 원종이 지우를 바라봤다.
“너 왜 그래?”
“준재.”
“어?”
“준재라고.”
원종도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까만 차에서 내리는 준재를 보면서 미간을 모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쟤가.”
“너 알아?”
“어?”
“너 뭐 아냐고?”
“지난번에 말했잖아.”
“어?”
지우는 그제야 원종의 말에 머리를 굴렸다. 지난번에 그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 그것을 지우의 눈으로 목격한 거였다.
“쟤 지금 뭐 하는 거니?”
“일단 기다려.”
“뭐?”
“기다리라고.”
“최원종.”
원종은 지우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팔을 잡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지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지금 쟤한테 도대체 뭐라고 할 건데?”
“뭐?”
원종의 물음에 머리가 조금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할 수나 있어? 너 지금 그냥 당황해서 어버버버하고 있는 거잖아. 이 상황에서 쟤를 마주하면 도대체 뭐라고 할 건데?”
“그건.”
“할 말 없잖아?”
지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지우개도 분위기를 살폈는지 조용했다.
“장지우. 일단 기다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그리고 물어봐도 괜찮아. 네가 먼저 그랬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 자신의 말이었다. 더 기다리자는 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거.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믿음.”
“믿음?”
“응. 믿음.”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이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겨우 깨닫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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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래서 그 돈 그냥 받아온 거야?”
“모르겠어.”
형진의 물음에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을 도대체 왜 받아온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미쳤나 봐.”
“네가 왜?”
“이거 받으면. 내가 사장님을 도운 게 뭔가 바라고. 그러고 그런 거 같잖아. 그런 게 아닌데 말이야.”
“어차피 좋은 일 한다고 하는 거 이런 식의 보상도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 네가 희생도 하지 않고.”
“뭐래?”
준재는 입을 쭉 내밀었다. 자신은 정말로 지우가 좋아서 이러는 거였다. 돈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돈은 어차피 사장님이 주시는 것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이전에 큰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이 있잖아. 그래서 지금 이러는 건데.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말해야지.”
“어?”
“사실을 말이야.”
형진의 간단한 말에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형진의 말이 옳았다. 너무나도 간단했지만 그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화를 내시면?”
“어쩔 수 없지.”
“미치겠네.”
준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게 그렇게 쉽냐?”
“그럼 어렵냐?”
“치.”
“너 정말로 사장님을 좋아한다며? 그럼 내가 말한 것처럼 최대한 빠르게 말을 하는 게 좋을 걸? 그래야 사장님이 조금이라도 덜 배신감을 느낄 거 아니야. 안 그래? 안 그러면 배신감을 느낄 거야.”
“그렇겠지.”
준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실망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불안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왜?”
“내가 너무 멍청해서.”
“뭐래?”
준재의 대답에 형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불편했다. 그리고 마음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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