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고백
“사장님.”
“어? 어.”
준재가 영업을 마치고 나서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으면서도 괜히 놀라게 됐다.
“할 말이 있어요.”
“그래. 얘기해.”
준재는 형진을 바라봤다.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태식과 원종을 끌고 식당을 나섰다.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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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야?”
원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저 꼬맹이의 비밀이 뭐기에 이러는 거야. 됐다. 됐어. 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안 궁금해.”
원종은 형진을 보다가 곧바로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건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 퇴근합니다.”
“같이 술이나 하죠.”
돌아서던 원종은 걸음을 멈췄다.
“뭐라고요?”
“술 마시자고요.”
태식은 가볍게 술잔을 넘기는 포즈를 취하며 장난스럽게 웃으며 형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남자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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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준재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구?”
“사장님 아버지요.”
“하.”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했다.
“그 사람이 너를 왜?”
“사장님을 잘 부탁한다고요.”
“뭐?”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 번도 자신이 나를 돌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서 여기에 온 거야?”
“아니요.”
“그럼.”
“여기에 온 이유는 사장님께 말씀 드린 것처럼 사장님이 좋아서 온 거예요. 큰 사장님이 늘 따님 자랑을 하셨으니까. 그래서 온 거예요. 정말로 다른 것을 바라고 생각하고 온 적은 없어요.”
“그래?”
하지만 이미 지우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은 후였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말을 하는 거야?”
“네?”
“그냥 말을 안 해도 되는 거잖아.”
“돈을 주셨어요.”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준재는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서 그대로 지우에게 건넸다. 지우는 그것을 내려다봤다.
“이게 뭐야?”
“졸업 선물이래요.”
“졸업 선물?”
“네. 그런데 제가 이걸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왜?”
“그럼 정말로 사장님 아버지가 시켜서 여기 온 거 같으니까.”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답답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였다. 그래서 이런 거였다.
“재미있어?”
“사장님.”
“재미있니?”
지우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감돌았다.
“이런 식으로 나를 가지고 노니까 즐거워? 내가 너랑 맞춰주니까. 그냥 한심하고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준재가 자신에게 사실을 고백한 순간부터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유치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지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왜 그 사실을 말을 해주는 거야? 말을 안 해도 되는 거잖아. 도대체 왜 말을 해주는 거냐고. 네가 말을 하면 나는 도대체 너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거니? 나는 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너에게서 봐야 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됐어.”
준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사장님.”
“가.”
“하지만.”
“그리고 다시 오지 마.”
지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마. 네가 받아야 하는 돈. 태식 씨에게 다 부탁을 할 거니까. 그러니까 오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 오지 말아줘. 네가 여기에 오면 나는 너무 불편할 거 같으니까. 오지 마.”
“싫어요.”
준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싫다니?”
“올 거예요.”
“내 말이 우습니?”
“아니요.”
“그런데?”
“이럴까봐 말을 하지 말까 했어요.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로 사장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니까. 그래서 말을 한 거라고요. 사장님을 놀리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정말로 좋아서 한 거라고요.”
준재의 말에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나에게 가장 먼저 어떤 기회를 준 사람이 바로 너야.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 사람이 너야.”
“그래요.”
“그런데 그게 네 뜻이 아니라고?”
“그건.”
“그게 아버지라는 사람 뜻이라고.”
지우의 차가운 말에 준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우에게 위안이 되지 못할 거였다.
“내가 지금 도대체 뭘 믿어야 하는 거니? 네가 그 말을 하면 앞으로 내가 너를 믿을 수 있는 거니?”
“당연하죠.”
“아니.”
지우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지우가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그 말에 준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는 절대로 너를 믿지 못할 거야. 앞으로 너를 믿지 못할 거라고. 너는 거짓을 말할 거니까. 너는 나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너는 나에게 거짓말을 할 거야. 그럴 거라고.”
“그래서 말했잖아요.”
“바로 말한 게 아니잖아.”
지우의 무던한 눈빛에 준재는 할 말을 잊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바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우가 더 날을 세울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
“너는 나를 속였어. 기만한 거야. 그래놓고. 그런 거면서 지금 와서 이러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정말로 사장님이 좋아요. 그래서 지금 이러는 거라고요. 제발 그러지 마요.”
“아니.”
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너 정말 나빠.”
“사장님.”
“내가 너를 믿은 만큼. 너는 나에게 진실했어야지. 내가 너를 믿었으니까 너는 그랬어야 하는 거지.”
지우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그 눈물에 준재는 마음의 모든 것이 다 망가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와서 네가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 거 같아? 아니. 나는 여전히 불행해. 내가 믿는 사람이. 내가 의지했던 한 사람이. 그래서 내가 구해줬다는 사람이. 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거니까.”
“달라지는 건 없어요.”
“모든 게 달라졌어.”
지우는 대충 눈물을 훔치고 숨을 고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돈은 가져가.”
“하지만.”
“이건 아버지가 준 거야.”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돈은 내가 받을 수가 없는 돈이야. 그러니까 가져가. 이건 아버지라는 사람이 너에게 주는 돈이야.”
“아니요.”
준재도 단호했다. 이대로 이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 돈을 받으면 정말 모든 게 사실이 되는 거였다.
“나는 정말로 사장님이 좋아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 돈을 받으면 돈 때문에 여기에 있었던 거잖아요.”
“아니니?”
“아니에요.”
“아니구나.”
지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래서 나에게 이 돈을 주는 이유가 뭐야?”
“제 마음이요.”
“그래?”
지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준재를 바라봤다.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네가 왜 이 돈을 나에게 주는 건지. 정말로 하나도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사장님이 아버지께 직접 돌려드려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어.”
“네?”
“하나. 나는 이 돈을 만지고 싶지도 않아.”
지우는 손가락을 핀 채로 차갑게 준재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둘.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라는 인간을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나는 이 돈을 줄 수가 없어.”
“하지만.”
“이게 내 진심이야.”
“사장님.”
“그만.”
지우는 준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
“갈 수 없어요.”
“가라고.”
“너 정말. 신고할 거야.”
“해요.”
지우는 준재를 노려봤다. 하지만 준재도 그 어느 날보다 더 무겁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지우의 곁에서 맴돌던 그런 고등학생인 준재가 아니었다. 더 이상 아니었다.
“내가 그저 아이로만 보이는 거 알아요. 그래서 사장님이 지켜주고 싶어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그런 마음이에요. 나도 사장님이 혼자서 그러는 거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고요. 그런데 어른이 아니니까,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혼자 힘으로 그걸 못 했어요. 그때 사장님 아버지가 나타났어요. 그래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고요.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이제 어른이 되어서 모든 걸 다 고백하려고 하는 거라고요. 이제 모든 걸 다.”
준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떨렸다. 준재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지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사장님을 속이기를 바랐다면, 그런 거라면 왜 이제 와서 이걸 주는 건데요?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게.”
지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는 걸까?”
“사장님.”
“돌아가.”
“오늘은 일단 돌아갈게요.”
“뭐?”
“하지만 내일 다시 올 거예요.”
준재는 지우에게 허리를 숙이고 나갔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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