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그들의 사정
“그래서 아버지가 시킨 거라고?”
“네.”
형진의 말에 원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우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장돼지랑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였거든. 하지만 한 번도 장돼지에게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았어.”
“계셨어요.”
형진은 덤덤하게 말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원종은 소주를 들이켜며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돼?”
“그러게요.”
“말이 될 수도 있죠.”
원종은 물끄러미 태식을 응시했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그 역시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당신은 뭡니까?”
“뭐가요?”
“당신도 뭐가 있으니까 지금 지우 옆에 있는 거잖아요. 도대체 지우에게 뭘 바라고 있는 겁니까?”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정말로 그 식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나는 나중에 그 식당을 권리금 없이 받는 것. 그거 하나 정도가 목표입니다.”
“그러기엔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원종은 빈정거리며 소주를 한 잔 더 입에 털어 넣었다. 태식은 씩 웃으면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 한 잔을 비웠다.
“그렇죠.”
“뭐 하는 건지.”
“그러게요.”
“에이.”
두 남자가 신경전을 벌이자 형진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애교 있게 웃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들이 그러면 사장님이 더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시는 거잖아요.”
“잠깐.”
원종은 손가락으로 형진을 가리키며 미간을 모았다.
“내가 왜 아저씨야?”
“나도.”
“네?”
형진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과 같이 있는 이 밤이 너무나도 길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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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준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지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기회였다.
“돈.”
자신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돈이 없다는 것. 그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흔드는 부분이었다.
“처음부터 말을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쓴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말을 했더라면 지우의 곁에 있지 못할 거였다. 숨겼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래.”
답답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럴 거라는 것을 알고 지우에게 고백을 한 거였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그래. 잘 한 거야.”
더 숨기는 것이 이상한 거였다. 준재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우와의 관계는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거였다. 이미 돌아간 것을 가지고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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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지우개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우개는 낑낑거리며 지우의 무릎에 올라왔다. 지우는 지우개의 목덜미를 가볍게 문지르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냥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서 좋았는데.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지우개는 지우의 손끝을 핥았다.
“정말 어렵다.”
지우는 물끄러미 준재가 놓고 간 봉투를 보았다.
“이걸 도대체 왜 주고 간 거야.”
그것 자체가 무게였다. 그래도 준재를 이해하고 싶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고백해준 것도 사실이니까.
“애초에 말을 했으면 좋았잖아. 처음부터 숨기지 않고. 그랬더라면 더 좋았던 거잖아. 그런 거잖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을 해줬더라면. 이런 생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이제라도 말을 해준 것이 다행일까? 하지만 이미 그가 너무 망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종이가 말한 게 이건가 보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아무런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니?”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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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우를 그렇게 괴롭히면 안 된다는 거지. 지우가 얼마나 힘들게 그랬는데. 응? 안 그래?”
“취하셨네.”
원종을 보고 형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책임져요.”
“내가? 내가 왜?”
태식은 자신을 가리키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은 이 사람이 마셨다고.”
“아저씨가 자꾸 잔을 한 번에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비우라고 하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책임져요.”
“나 참.”
태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집에 데리고 가.”
“어허.”
형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뭐가?”
“안 된다고요.”
“내 집이야.”
“어허?”
형진은 입을 내밀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가 아무리 아저씨 집이라고 하더라도 이제 나랑 준재도 같이 사는데 이건 아니죠. 안 그래요?”
“너 이 사람 집 알아?”
“아뇨.”
“그럼 길에 버려?”
“아뇨.”
“그럼 어쩌자고?”
형진은 턱으로 모텔을 가리켰다. 태식은 고개를 미친 듯 흔들었다.
“절대로 싫어. 내가 지금 남자를 데리고 모텔에 들어가라고? 그리고 남자랑 같이 모텔 방에 가라고? 차라리 나한테 죽으라고 그래. 절대로 싫어. 그럼 네가 해. 네가 하면 되는 거잖아. 네가 하라고?”
“미성년자.”
형진은 혀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미성년자인데요.”
“너 술 마셨잖아?”
“아니요.”
형진의 말에 태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이 녀석이 자신들을 가지고 논 거였다.
“이제 어른이라며?”
“제가 빠른이라서.”
“망할.”
“그러니까 아저씨가 알아서 해요.”
“집으로 데리고 갈 거야.”
“네?”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아저씨!”
형진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태식은 택시를 잡았다. 형진은 뒤에서 중얼거리면서 그런 태식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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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었네?”
“네.”
준재는 집에 들어오는 원종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리로 다가가서 태식의 방에 눕히는 것을 도왔다.
“미치겠네.”
태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들 중 하나가 거실에서 자.”
“싫어요.”
형진은 태식의 말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준재를 꼭 안았다.
“설마 저희를 갈라놓으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뭐라는 거야?”
“저희는 절대로 안 떨어질 거예요.”
“야!”
태식은 멀어지는 준재와 형진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 자식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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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랑은 어떻게 됐어?”
“뭐가?”
“다 풀었어?”
“풀기는.”
준재의 힘없는 대답에 형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셔?”
“당연한 거지. 내가 자신이 조항서 거기에 있는 게 아닌 거니까. 뭔가 서운하고 그럴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네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너 사장님에게 다 솔직하게 고백을 한 거고.”
“처음부터 했어야지.”
준재의 대답에 형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뭐가 그렇게 어렵냐?”
“그러게.”
준재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더욱 복잡했다. 힘들었다.
“나는 그저 내가 사장님에게 다가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또 그런 게 아닌 모양이야.”
“그렇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준재의 물음에 형진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모르지.”
“망할.”
준재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하지만 일단 자신은 제대로 승부수를 띄운 거였다.
“꼬맹이.”
순간 문이 열리고 태식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얘기 좀 하자.”
“저랑요?”
“그래.”
형진은 준재를 바라봤지만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식과도 할 이아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자라.”
“그래.”
태식이 나가고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집 주인이라고 너무 유세 아니야?”
“라이벌이라 그래.”
“라이벌?”
“너도 알잖아. 아저씨가 사장님 좋아하는 거.”
준재의 말에 형진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진작 알고 있었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거였으니까.
“그래.”
준재는 형진을 향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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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씨에게서 멀어지는 게 어때?”
거실로 나오자마자 하는 태식의 말에 준재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
태식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은 어린 네가 아니라 적어도 어른이라 앞가림은 하는 나인 거 같아서.”
갑작스러운 태식의 선전포고에 준재는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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