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지우개 식당[완]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31장. 선전포고]

권정선재 2017. 2. 20. 00:17

31. 선전포고

아무리 봐도 네가 지우 씨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서. 너는 지우 씨에게 자꾸만 고민을 주는 거 같거든.”

뭐라는 거예요?”

 

준재는 혀로 입술을 훑으며 차가운 눈으로 태식을 응시했다. 태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말 그대로.”

아저씨.”

그래. 나는 아저씨야. 그리고 너는 꼬맹이지. 우리 둘의 호칭 문제로도 그건 정리가 된 거 같은데.”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준재의 물음에 태식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을 해도 너무 갑작스러운 문제였다.

 

그냥 지금 내가 이렇게 쐐기를 박지 않았다가는 지우 씨가 너로 인해서 고민을 할 거 같아서.”

뭐라고요?”

네가 너무 제대로 승부수를 던진 거거든. 내가 가지고 있던 네 약점이 사라진 거라서. 내가 마음이 불편해.”

웃기지도 않네요.”

웃기라고 한 말 아닌데?”

 

준재가 노려보자 태식은 벽에 살짝 기댔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턱을 어루만지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꼬맹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너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내 말 몰라?”

그러는 아저씨는 뭘 할 수 잇죠?”

뭐든?”

 

태식은 팔을 벌렸다.

 

이 집도 내 거야.”

치사해.”

치사해도 이게 어른이지.”

 

태식은 씩 웃으면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사장님의 어머니로부터 부탁을 받은 게 전부이니까. 그리고 내가 받은 것은 식당에서 딸이 손을 떼게 해달라는 거였어. 너랑 내가 아주 다른 목적을 가진 거 같은데.”

그만 두게 한다고요?”

.”

 

태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뭔가가 자신의 목을 콱 막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너는 그 사람을 괴롭히는 거고. 나는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거고. 이런 차이 모르는 건가?”

사장님을 괴롭힌다고요?”

. 아니면 말고.”

 

준재는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태식은 그런 준재를 부고 씩 웃더니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너는 아직 네가 해야 하는 게 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지우 씨를 갖고 장난은 치지 말았으면 해.”

아뇨.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알고 있어요. 저는 사장님이 하고 싶은 것을 믿고. 사장님이 그 일을 할 수 잇게 해주는 게 제 목적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건 그게 전부에요.”

거기에 너는 없잖아?”

.”

 

준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거기에 필요가 없어요. 나는 그저 사장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예요.”

미친. 뭐라는 거야?”

 

태식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왜요?”

아니.”

 

준재의 반문에 태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라는 물음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맞은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그 지옥에서 구해준 게 사장님이니까. 내가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아저씨도 아시는 것처럼 사장님 어머니가 정말 좋은 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뜻을 따르고 싶어요.”

 

태식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가볍게 준재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이런 거라면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꼬맹이 웃기네.”

그리고 이러는 거 웃기지 않아요?”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 자꾸 이러네.”

결국 결정은 사장님이 할 거예요.”

 

준재의 단호한 말에 태식은 별 안쪽을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지우가 선택을 할 거였고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저보고 나서지 말라고 말을 하지 마시죠. 아저씨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으니까.”

하여간 똑똑해.”

제가 공부는 잘 했어요.”

그리고 싸가지도 없어.”

 

예의가 바르면 상대가 무시하더라고요. 저 같은 애들은 원래 싸가지가 좀 업서야 살 수 있거든요.”

 

준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태식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해야 했다.

 

나도 고백할 거야.”

하세요.”

너 쉽지 않을 거다.”

얼마든지요.”

 

준재의 여유로운 태도에 태식도 능글맞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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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여기에 있어?”

그러게요.”

 

 

원종이 놀라자 태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종은 침을 꿀꺽 삼켰다. 태식은 그에게 물을 건넸다.

 

마셔요.”

아니 사람이 취하면 집에 보내야지.”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요?”

그쪽 집을 알아야지.”

 

원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 좀 차리고 나와요.”

 

태식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원종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을 들이켰다.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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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모텔에 버리자고 그랬죠?”

사람이 어떻게 그래?”

 

형진과 태식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원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어제 그렇게 많이 마셨던가?

 

사장님이 끓인 것보다는 맛이 없을 겁니다.”

 

준재는 콩나물국을 원종의 앞에 내려두었다. 원종은 그릇째 벌컥벌컥 들이켰다. 속이 조금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제 엄청 드셨네.”

엄청 달렸지.”

 

형진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다 큰 어른들이 도대체 왜 그래요?”

뭐가?”

감당도 안 되게.

다 감당할 수 있어.”

안 되잖아요.”

 

태식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원종의 상태를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그의 말처럼 아무 것도 되지 않았으니까.

 

나쁜 어른이야.”

내가 뭐요?”

 

원종은 목소리를 높였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제 사장님하고는 잘 말한 거야?”

? .”

 

갑작스러운 원종의 물음에 준재는 놀라서 형진을 바라봤다. 형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장님 아버지는 뭐 하는 분이야?”

저도 몰라요.”

모른다고?”

.”

 

준재는 숟가락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셨어요. 그러고 나서 사장님을 도와달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게 전부니까. 저도 알 수가 없죠.”

이상한 사람이네.”

 

원종은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남은 국물을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드시지. 국물 더 드려요?”

아니. 나는 좀 더 누울게.”

이봐!”

 

태식이 말리기도 전에 원종은 손을 흔들며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태식은 젓가락을 물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경계심이 없는 거 아니야?”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니까.”

 

준재의 갑작스러운 말에 태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준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척 입에 밥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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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저씨랑 무슨 일 있었어?”

뭐가?”

아니 태도가 변한 거 같아서.”

라이벌이니까.”

?”

 

준재의 말에 형진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준재의 어깨를 때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걸 라이벌이라고 할 수가 있냐? 네가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아저씨는 어른이고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니야.”

이제 고등학교 졸업했어.”

그러니까.”

 

형진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어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다 너를 어린 아이라고 생각을 할 걸?”

그래도 상관은 없어. 다만 내가 나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믿는데.”

.”

 

형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가 이렇게 말하는데 굳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었으니까.

 

너는 네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해?”

.”

그렇구나.”

 

준재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그래.”

?”

나도 내가 어른이 아닌 거 같아.”

 

준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더 어른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거야. 이런 게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린 놈이 혼자서 노력을 하는 거구나.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건데. 그래서 더 노력을 하려고.”

그래.”

 

형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의 마음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에 더욱 안쓰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그래야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알아야지.”

그래.”

 

준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했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인 것은 분명했다. 적어도 이제 고등학생은 아니니까.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더 어른이 되었다.

 

괜찮을 거야.”

그럼.”

 

형진은 준재를 향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보였다. 그런 형진을 보며 준재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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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준재가 밝게 인사를 하며 식당에 출근했지만 지우는 그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준재는 하지만 밀리지 않았다.

 

뭘 할까요?”

 

뒤늦게 들어온 태식과 형진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하지만 지우는 계속 그를 무시했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낸 후 머리를 긁적이고 앞치마를 맨 후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