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졸업식
“결국 둘 다 같은 거 아니야?”
“그러게.”
형진의 물음에 준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신이나 태식이나 지우에게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우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사장님이 화를 낼 수도 있겠다.”
“화를 내겠지.”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책상에 엎드렸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선수를 치는 게 어때?”
“무슨 선수?”
“사실을 말이야.”
형진의 충고에 준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그게 가장 옳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우가 뭐라고 할지 그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사장님은 나를 도와주신 분인데. 정말로 나를 도와주신 분인데 내가 그러면.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건 뭔가 배신을 하는 거 같잖아. 사장님이 뭐라고 하실지. 나 지금 그게 너무나도 두려워.”
“그걸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것을 더 기분 나빠하실 거 같은데? 적어도 네가 직접 이야기를 한다면. 네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도 어떤 변명이라도 들을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나는 네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겠지.”
준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사귀냐?”
앞자리에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미간을 모았다.
“3년을 그렇게 붙어다니고도 지금 졸업식에도 너희는 그렇게 두 사람만 비밀 이야기를 하냐?”
“앞으로도 그럴 건데?”
형진은 준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씩 웃었다. 준재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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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가 이렇게 꾸몄냐?”
“왜?”
정장을 입은 원종을 보며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재와 형진의 졸업식에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신이 옷을 차려입는 것인지. 지우의 반응에 원종은 입을 쭉 내밀며 미간을 모았다.
“야. 이런 옷을 입고 간 사람이 있어야 무시를 안 당하고 그러는 거야. 내가 안 가면 무시를 당한다니까?”
“무시는 무슨.”
“당연하지.”
원종의 말을 들으니 지우는 자신의 옷차림이 괜히 생각이 되었다. 청바지에 후드라니. 이건 좀 그런가.
“기다려.”
“어?”
“지우개. 원종이랑 있어.”
지우개가 원종의 손끝을 가볍게 물었다. 원종은 지우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쁘기만 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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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입을 옷이 없냐.”
옷장을 이리저리 살펴도 제대로 입을 옷이 없었다. 결국 면접에 입으려고 샀던 옷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으려나?”
하지만 맞을 리가 없었다.
“미치겠네.”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멍하니 옷장을 노려봤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청바지를 입었다. 위에 재킷만 제대로 걸치면 되는 거니까. 지우는 거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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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도 왔네요?”
“당연하죠.”
원종의 날이 선 물음에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가 쟤들하고 한 집에서 사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아 뭐.”
원종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그런 원종을 보고 옆구리를 푹 찔렀다.
“그만해.”
“뭘?”
“너 유치해.”
“사돈 남말 하시네.”
원종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태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리고 가장 큰 꽃다발을 들었다.
“이 정도는 있어야지.”
“나도 사야지.”
“사지 마.”
지우는 원종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식 씨만 되는 거지. 무슨 애 졸업하는데 너는 꽃을 몇 개나 사려고 그러냐? 사진만 찍으면 되는 건데.”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형진이 거 사야지.”
원종은 그런 지우의 손을 뿌리치며 더 큰 꽃을 샀다. 태식은 그런 원종을 의식하며 다른 꽃도 들었다.
“그쪽은 왜 사요?”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이니까.”
“미치겠네. 나는 몰라요.”
지우는 이 말을 남기고 먼저 학교로 들어갔다. 원종과 태식은 서로를 노려보며 꽃다발 두 개씩을 나란히 들고 교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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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기다리고 계신 보호자 분들 들어오세요.”
지우는 두리번거리다가 준재와 나란히 앉은 형진을 보고 미소를 지은 채 들어갔다. 그녀의 뒤로 원종과 태식이 따라왔다.
“축하해.”
“고맙습니다.”
준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졸업식에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제 진짜 어른이네.”
“그럼요.”
준재는 가슴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누구야? 이모야?”
순간 준재의 학우의 말에 지우는 멍해졌다. 이모라니. 그렇게 자기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가. 속상했지만 지우는 미소를 지었다.
“준재 친구구나. 그러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준재의 말에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지우는 미간을 모은 채로 준재의 등을 한 번 때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얘가 농담도. 얘 내 식당에서 일해. 아르바이트. 너도 알지? 저기 사거리. 지우개 식당. 나 거기 사장이야.”
“아. 그러시구나.”
준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그의 손을 꼭 잡고 힘을 주었다.
“앞으로 자주 와.”
“거기 강아지 있는 집이죠?”
“어? 아는 구나.”
“네. 거기 강아지 너무 착해요.”
“그렇지?”
지우가 능숙하게 상황을 넘어가는 걸 보면서도 준재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지우에게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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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뭐가?”
“아까.”
“뭐래?”
준재의 사과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준재가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런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하나하나 다 화를 내다가는 살 수가 없을 거였다.
“네가 그런 것도 아니고. 뭐. 내가 젊은 이모일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옷차림도 너무 프리하게 갔고.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요.”
“야. 너무 그러지 마라.”
형진은 준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꾸 그러면 사장 누나 그 생각 못 지운다.”
“그러게. 우리 형진이가 아주 똑똑해.”
“그럼요.”
형진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준재야. 이거 그냥 오해야. 오해. 나 지난 번엔 마트 갔었는데 거기 직원이란 소리도 들었다니까?”
“나는 중학교 때 군인 소리 들었어.”
원종의 말에 준재는 겨우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자신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해주는 게 고마웠다.
“아저씨는 좀 그래 보여요.”
“뭐 인마?”
준재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다들 사진 찍읍시다.”
태식은 손뼉을 치면서 씩 웃었다.
“졸업이라는 거. 무조건 축하받아야 하는. 뭐 그런 거거든. 그러니까 일단 꼬맹이들. 너희부터 사진 찍자.”
“이제 꼬맹이 아니거든요.”
“그러게.”
“아직 꼬맹이야.”
태식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덧붙였다.
“너희 아직 교복이다.”
“오케이. 인정.”
“그래. 어린 게 좋은 거야.”
준재는 먼저 꽃다발을 양손에 들고 혼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형진, 그리고 두 사람이 나란히. 이어서 모두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럼 이제 사장님과 준재가 좀 찍을까요?”
“어?”
“야.”
“어서요.”
형진의 말에 준재와 지아는 어쩔 수 없이 자세를 취했다. 형진은 밝게 웃으면서 숫자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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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두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저는 군대에 갈 준비를 바로 하려고요.”
“대학은?”
“글쎄요.”
준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대학 같은 것은 자신과 너무나도 요원한 일이었다.
“대학 등록금 낼 돈 같은 거 없어요. 일단 제가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우선인 걸요.”
“하지만.”
“아니요.”
지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오롯이 자신이 감당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 지아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도와줄 것이 아니라면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형진이는?”
“저는 일단 대학 가려고요.”
“그래?”
“네. 일단 대출은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고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고 그래야죠. 남들처럼.”
“그래.”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형진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너희 아직도 불안한 거야?”
“네. 아 올해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래요.”
“그래.”
지아가 입을 꾹 다물자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기를 떠나는 게 당연한 거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자신을 달래주려는 준재를 보며 지아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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