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어른의 자격
“정말 여기에 있구나.”
“준재야.”
지우는 그네에 앉아있다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전에 사장님이 그랬거든요. 딸이 힘들어하는 일이 있으면 꼭 공원에 앉아서 그네를 탄다고.”
“엄마가 그런 말도 했어?”
“다 하셨어요.”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유정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사장님이 외롭지 않기를 바란 거 같아요.”
준재의 말에 지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준재를 바라봤다.
“외롭지 않게?”
“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조금이라도 더 사장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기를 바란 거 같아요.”
“너무 잘 알지.”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뚱뚱하고 못난 사람이었다.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이 괴물 같은 돼지를 사람들이 다 알게 된 거잖아.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아등바등 한 것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하나 없는데. 나는 멍청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건데.”
“제가 사장님을 좋아한다고요.”
“거짓말.”
지우의 말에 날카로움이 느껴지자 준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으니까.”
“아니에요.”
“맞아.”
“아니라고요.”
준재는 지우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지우의 눈을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되는 거예요.”
“그게 뭐야?”
“나는 예쁜 사람만 좋아하거든요.”
준재의 대답에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그 시선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저리 가. 나 못 생겼어.”
“지금 사장님을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한 번도 사장님이 못 생겼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사장님은 늘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저씨도 사장님을 좋아하고 있고요.”
“어?”
지우가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준재는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묘한 순간이었다.
“몰랐어요?”
“그러니까.”
“아무튼 사장님. 사장님 음식 좋아해서 온 사람들이 이제 식당 앞에 줄을 서요. 그런 못난 말을 하는 사람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몸무게가 덜 나간다는 거 말고 자랑할 게 하나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 사람들은 뇌까지 텅텅 비었어. 그러니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죠.”
“애써 위로하지 마.”
“애써 하는 위로가 아니에요.”
준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만히 지우를 안았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사장님은 사랑 받아도 되는 사람이에요. 아니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에게.”
지우의 어깨가 들썩였다.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이 어린 꼬맹이에게서 안겨 우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고마웠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을 위로해준다는 것. 이게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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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식당에 돌아가자 원종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네가 장돼. 아니 아무튼 그 별명에 대해서 그렇게 싫어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지 못했어.”
“아니야.”
원종은 늘 대하던 그대로 자신을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원종이 없었더라면 그 바쁜 순간을 감당하지 못할 거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 거야. 내가 그냥 혼자서 이상한 생각을 한 거였어.”
지우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원종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원종은 여전히 지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괜찮아. 최돼지.”
지우의 발언에 원종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단순한 녀석이었다.
“오늘 고마워.”
“고마울 게 뭐가 있습니까? 사장님이 알아서 일당 제대로 챙겨주시는데. 시급 이렇게 잘 주는데 없다?”
“뭐래. 당연한 거지. 뭐 문제가 있고 그런 건 없었어?”
“없었어. 아. 그 컨설턴트. 그 분은 갑자기 어딘가로 가시더라.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고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럼 나도 간다. 가도 괜찮지?”
“응. 가. 내일 봐.”
“응. 갈게.”
원종이 나가고 지우개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식당 문을 잠갔다.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바빴구나.”
가만히 식탁들을 쓸었다. 꽤 잘 닦았다. 군데군데 그녀가 놓은 것과 다른 게 보였지만 그래도 좋아 보였다.
“다행이네. 그렇지?”
지우개도 작게 짖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지우개.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였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는 걸까?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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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오세요?”
“어디 다녀옵니다.”
태식의 대답에 준재는 입을 내밀었다. 태식은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토해냈다.
“꼬맹이. 너 나에게 너무 관심이 많은 거 아니냐?”
“경쟁심리입니다. 그리고 그 꼬맹이라고 부르시는 거 그만하죠? 저 그렇게 꼬맹이도 아닌데 말이죠.”
준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자 태식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욕이나 가자.”
“네?”
“목욕 가자고. 설마 꼬맹이. 너 자신 없고 그런 거 아니지?”
“아닌데요.”
준재가 눈을 반짝였다. 태식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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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만 보자.”
자신을 욕하는 인스타그램의 댓글들을 보던 지우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런 걸 볼 이유는 없었다.
“그래. 내가 왜 이런 걸 보면서 힘들어해야 하는 거야? 그럴 이유 하나도 없는데. 그러지 말자.”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지우개를 바라봤다. 지우개는 꼬리를 흔들었다.
“지우개 우리 나갈까?”
지우개가 작게 짖었다.
“그래. 산책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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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훌륭한대?”
“당연하죠.”
형진은 혀를 끌끌 차면서 먼저 탕으로 들어갔다. 준재와 태식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나란히 탕으로 들어갔다.
“좋다.”
“딱 좋네.”
“딱 좋기는. 뜨거워 죽겠는데.”
형진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준재와 태식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을 뿐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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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괴물 아니야?”
탕을 나서면서 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목욕탕은 조용했다. 준재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에요?”
“어?”
“이상하잖아요.”
준재의 물음에 태식은 입을 내밀었다.
“뭐가 이상한대?”
“보통 사람은 그렇게 돕지 않거든요. 그리고 단골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저씨를 본 기억이 없어요.”
“그래?”
태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머리를 뒤로 기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니 기분이 좋았다.
“도대체 사장님에게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시는 건지도 모르겠고.”
“너랑 같아.”
“나랑 같다뇨?”
“나도 그냥 장지우 씨를 도우려고 하는 게 전부라는 이야기야. 네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아. 네가 뭔가 다른 것을 바라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런 거랑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아무 것도 알려주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그게 포인트네.”
준재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무엇이라도 말을 해주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도대체 왜 사장님에게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아저씨를 믿는 거 같으니까 더 불안하고요.”
“너는 안 믿어?”
“네?”
“너는 나를 안 믿냐고?”
태식의 물음에 준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믿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불안한 것일지도 몰랐다.
“꼬맹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대충을 알겠는데 말이야. 나 장지우 씨 다치게 할 사람 아니거든.”
“그건 모를 일이죠.”
“그렇지.”
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은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태식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목이 뻐근했다.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거. 지금 당장 그걸 해.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그것까지 신경을 쓰지 말고.”
“그런데 아저씨가 자꾸만 신경이 쓰여요.”
“그래?”
“그건 내 잘못이겠죠?”
“아니 뭐.”
태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이 애매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말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고 다들 어떻게 볼 지도 몰랐으니까.
“네가 보는 것을 믿어.”
“보통은 그거 반대로 말하지 않나?”
“그런가?”
태식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해야 하는 건지. 그런 거.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사장님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럼 되는 거야.”
준재는 침을 꿀꺽 삼키고 태식을 바라봤다.
“꼬맹이. 지금 당장 네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하지 마. 그러면 너도 결국 지치게 될 거니까. 네가 아무리 장지우 씨를 좋아하더라도 네가 지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거든.”
“그게 어른의 말인가요?”
“그렇지.”
태식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꽤나 답답했다.
“어렵네요.”
“어렵지. 그럼 어른 되는 게 쉽냐?”
“언제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 나도 내가 아직 어른이 아닌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말을 해줘?”
태식의 말에 준재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어른도 아직 어른이 된지 모르겠다는 게 공감이 가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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