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콩나물국
“정말 기억이 안 나?”
“안 난다니까?”
식당까지 오는 동안 엄청난 질문을 들은 형진이 결국 준재에게 성질을 냈다. 하지만 준재는 이것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만일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거면 어떻게 하지?”
“어쩔 수 없지.”
“야.”
“당연한 거 아니야?”
형진의 심드렁한 대답에 준재는 입을 내밀었다. 하지만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거.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하냐?”
“모르지.”
준재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 실수도 하지 않았겠지?”
“뭘 이렇게 떠들어?”
순간 식당 문이 열리고 원종이 나타났다. 준재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원종은 가볍게 준재의 어깨를 두드리고 씩 웃었다.
“술꾼 들어가.”
“네?”
준재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원종은 멀어졌다.
“도대체 뭐야?”
준재와 형진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식당에 들어갔다. 지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서 오세요. 어린 고주망태들.”
“그러니까.”
“일단 앉아.”
지우는 이 말을 남기고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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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지도 못하면서 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 어제 주태식 씨에게 무지하게 혼났거든.”
“왜 혼나요?”
“영업정지 당한다고.”
준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뭔가 서운했다. 자신이 이렇게 나이가 어리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준재의 표정이 묘해지자 지우는 미간을 모았다 .이러려고 이런 말을 한 게 아니었는데.
“그러지 마.”
“아니요.”
지우가 자신을 달래려고 하자 준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이 어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혹시 저희가 어제 실수한 것은 없을까요?”
“기억이 안 나니?”
“그게.”
지우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건 스스로 생각을 하지 그래.”
“그건.”
“일단 밥이나 먹어.”
“먹고 왔.”
형진의 말에 준재는 곧바로 그의 발을 밟았다. 형진은 울상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먹고 왔다고?”
“아뇨. 먹고 오려고 했는데 바빠서 못 먹었다고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먹고 있어. 나는 가서 지우개 밥 좀 챙길게.”
“네.”
지우가 나가고 나서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형진을 울상을 지으며 준재를 바라봤다.
“이거 어떻게 해?”
“먹어야지.”
“나는 못 먹어.”
“먹을 수 있어.”
“야.”
“일단 내가 할게.”
준재는 씩씩하게 형진의 밥 중 절반을 덜어냈다. 형진은 마지못해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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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너희 술은 마시면 안 되겠다.”
손님들이 한 차례 밀려 나간 후 좀비가 된 채로 나란히 앉은 준재와 형진을 보며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준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피로함은 이길 수 없었다.
“오늘은 먼저 퇴근해.”
“아니요.”
“지금 그 컨디션으로는 거꾸로 일을 하는 게 더 민폐야. 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으니까 가도 괜찮아.”
“장지우 씨가 왜 혼자입니까?”
태식이 미소를 지으며 식당에 들어오자 준재는 곧바로 경계의 눈빛을 보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형진이는 피곤한 거 같은데. 형진이는 먼저 들어가라고 해도 괜찮아요.”
태식은 준재를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알바생이 열심히 한다고 하면 저는 필요가 없죠. 저도 그럼 할 일을 하러 먼저 가보겠습니다.”
“저기.”
지우는 눈치를 살피며 태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식은 어깨를 으쓱하고 지우와 같이 식당을 나섰다.
“두 사람 뭐야?”
“뭐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긴.”
형진의 발언에 준재는 괜히 발끈했다. 두 사람이 이상하다는 시선을 느끼는 거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그런 거 하나도 없으니까 너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마.”
“그런데 솔직히 이상하잖아. 도대체 저 사람 정체가 뭔데? 도대체 왜 사장님을 도와주고 그러는 건데?”
“그건.”
“우리야 이유가 있지. 그리고 우리는 돈도 받고 있고. 그런데 저 아저씨는 돈도 안 받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가 사는 것도. 돈도 안 받고 그냥 그 집에서 살게 해주는 거고. 이상한 거 아니야?”
“그건 그러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준재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런데 아직 속이 좀 불편하지 않냐? 나는 국물이라도 조금 더 먹어야 할 거 같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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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쪽 뭐예요?”
지우의 도발적인 물음에 태식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도대체 왜 나를 돕는 거냐고요.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말이 안 되잖아요.”
“뭐가요?”
“그쪽이 나를 돕는 거요.”
지우의 대답에 태식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은 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도대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따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냥 장지우 씨를 돕고 싶은 게 전부인 겁니다. 그러니까 별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솔직히 그쪽 덕분에 식당이 나아지고 한 건 맞는데요.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서 그러는 거죠.”
“뭐가 아닙니까?”
“이상하잖아요.”
지우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낸 후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내가 세상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운 게 있거든요. 세상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돕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되게 이상하거든요. 도대체 왜 나를 돕는 걸까? 그게 너무 이상해서요.”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엄마 때문도 아니죠?”
“넓게 보면 맞을 겁니다.”
알쏭달쏭한 태식의 대답에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놀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은 들고 싶지 않았다.
“왜 말을 해주지 않는 거예요?”
“전에도 같은 이야기 한 거 아닙니까? 장지우 씨는 그냥 식당이 더 잘 되면 그걸로 되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럼 거기에만 충실하면 되는 겁니다. 다른 거 하나하나 다 따졌다가는 이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그때로 가지 못할 겁니다.”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태식의 말이 옳았다. 일단은 식당에 손님이 늘었다. 이전의 그 활기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지금은 망치지 말아요.”
“알았어요.”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언젠가는 말을 해줘요. 어떤 일이 있는 건지.”
“알겠습니다.”
태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멀어지는 그를 보며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팔짱을 꼈다.
“저 사람 도대체 뭐야?”
지우개가 지우의 발에 몸을 비볐다.
“지우개. 너도 저 사람 이상하지?”
지우개는 낮게 짖었다.
“뭔가 수상한 사람이란 말이야.”
지우는 입을 쭉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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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졸업 아니야?”
“아직 좀 남았을 걸요?”
달력을 확인하던 형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금방이네.”
“언제인데?”
“괜찮아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졸업식에는 다른 사람이 같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거 그냥 가서 졸업장만 받아오면 그만인 건데요. 뭐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챙기고 그럴 필요가 없죠.”
“그러니까 가야지.”
“네?”
지우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준재에게 팔짱을 꼈다. 준재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사장님?”
“왜?”
지우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재는 침을 삼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소리가 징에게도 들릴 것만 같았다. 준재는 화들짝 놀라서 그대로 주방으로 달아났다.
“쟤 왜 저래?”
“소년의 첫사랑이요?”
형진의 대꾸에 지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식당 밖으로 나섰다. 형진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귀여운 두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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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 아저씨 좋아해요?”
“어?”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그럼 태식을 이야기하는 건가? 지우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요?”
묘하게 밝아지는 준재의 표정에 지우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너도 아니야.”
“사장님.”
준재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대답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아니.”
“아니요.”
지우가 무슨 마을 더 하려고 하자 준재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지우에게서 어떤 답을 듣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냥 이 모든 것을 외면할 거였다. 피하고 달아나고 싶었다.
“제발 그러지 마요.”
“그래도 내 말을 들어야지. 나에게 있어서 너는 그냥 어린 아이야. 그리고 내가 지켜줘야 하는 거야. 사회의 다른 어른들이 너를 지켜주지 않으니까. 나는 그래서 너를 지켜주고 싶은 거라고.”
“잔인하네.”
준재는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지 마요.”
“이게 현실이고. 네가 더 제대로 앞을 보기 바라니까.”
지우의 말은 더욱 더 잔인하게 준재에게 꽂혔다. 준재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척 다시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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