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갈등 2
“그런 사람하고 가자고?”
“그래도 여기에 있는 거 보다 낫잖아.”
기쁨의 물음에 석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있다가 도대체 언제 구조가 될지도 모르겠고. 우리 그냥 이러다가 그냥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기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나가는 것도 너무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도 뭐가 있을 줄 알고?”
“큰 배라도 다니겠지.”
“여보.”
“여기에 있다가 죽기는 싫어.”
석우는 단호했다. 기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뭐라고?”
“나는 가기 싫어.”
“당신 정말.”
“그 아저씨 이상해.”
기쁨의 말에 석우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을 해도 길석은 그리 안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 아저씨 위험하다고.”
“그렇다고 이 섬에 있어?”
“하지만.”
“나갈 기회야.”
“여보.”
“배는 이제 두 척이 남아.”
석우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그럼 그 배로 사람들이 또 나가고 싶다고 할 때 내보내주기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해.”
“선택.”
“그 선택 제대로 해야 하는 거라고.”
기쁨은 한숨을 토해냈다. 뭐가 더 옳은 선택인지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다.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모두 알게 될 거였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러게.”
“신혼여행인데.”
기쁨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자 석우는 그런 기쁨을 꼭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기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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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렇게 겁이 없어요?”
“네?”
윤태의 물음에 지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남자잖아요. 남자. 그런 상황에서 먼저 나서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상대가 남자라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당장 나에게 위협을 하는 망할 인간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니까요.”
윤태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사람이 강 기자님에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러는 겁니까? 도대체 왜 그렇게 나서는 거냐고요?”
“그럼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기를 기다려요? 이윤태 씨. 소설 너무 많이 본 모양이네. 현실에서 왕자님이란 없어요.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지아의 대답에 윤태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지아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저 지아를 걱정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냥 그 걱정 받으면 안 되는 겁니까?”
“왜요?”
“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요?”
지아는 걸음을 멈추고 윤태를 응시했다.
“이윤태 씨. 지금 뭔가 되게 착각을 하는 거 같네. 이 섬에 오기 전까지 자기는 내가 원수가 아니었어요?”
“그건.”
“그러니까 친한 척 하지 말죠.”
지아가 단호히 말하고 먼저 앞으로 나아가자 윤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런 지아의 뒤를 쫓아갔다.
“그래도 그건 아니죠.”
“뭐 하자는 건데요?”
“그러니까.”
윤태가 망설이자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윤태를 보며 씩 웃었다.
“이윤태 씨 나 좋아해요?”
“네? 아니.”
“아니죠?”
지아의 차가운 말에 윤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냥 섬에 와서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라면 집어 치워요. 나는 그런 유치한 장난에 놀아날 생각 없으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요?”
“뭐라고요?”
윤태의 대답에 지아는 미간을 모았다. 윤태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좋아하면요?”
“말도 안 돼.”
“뭐라고요?”
“그게 말이 돼요?”
“왜 안 되는 건데요?”
“당연히 안 되는 거지.”
지아는 아랫입술을 꼭 물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윤태가 뭘 안다고 좋아한다는 건지. 우스운 일이었다.
“이윤태 씨. 어쩌다가 나랑 키스 한 번 했다고 책임이라도 지려는 거야?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기는 해도 그렇게 옛날 여자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알아들어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겁니까?”
“뭐가요?”
“좋아해요.”
윤태의 단호한 말에 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됐어요.”
“뭐가 됐습니까?”
“그런 식으로 사람 놀리는 거. 됐다고.”
지우의 말에 윤태는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지아가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고. 정작 솔직하게 말하니까 그거 모르는 척 하는 거 우스운 거 아닙니까?”
“뭐래.”
지아는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
“같이 가요.”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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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배를 주실 거예요?”
“어쩔 수 없지.”
지웅의 대답에 나라는 뭔가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로도 다른 방법은 없었으니까.
“사람까지 습격했어.”
“그런데 배를 줘요?”
“그럼?”
“그러니까.”
“그만.”
지웅이 언성을 높이려고 하자 세라가 나섰다.
“사무장님. 지금 흥분하신 거 같아요.”
“미안.”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
“아니요.”
나라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괜히 이상한 것을 물어서 지웅이 화를 내는 것 같아서 더 미안했다.
“자기는 너무 힘들겠다.”
“네?”
“첫 비행이잖아.”
“아.”
진아의 말에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걸 가지고 힘들어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런 일을 먼저 겪었다는 게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 더 좋은 승무원이 될 수 있다는.
“앞으로 한국 가서 잘 하면 되는 거죠.”
“그렇지.”
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네.”
나라는 혀를 살짝 내밀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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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무 다니는 거 아니야?”
“왜?”
“이상해.”
서준의 물음에 윤태는 입을 내밀었다. 도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서준의 말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도 배 타자.”
“뭐?”
서준의 말에 윤태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지.”
“형.”
“화 내지 말고 들어.”
윤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서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이 섬에 있다가 도대체 언제 구조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고.”
“그렇다고 무조건 이 섬을 나가? 이 섬을 나가면 도대체 뭐가 있는데? 형은 생각이 있는 거야?”
“그래. 나 생각이 없다.”
“그런 말이 아니라.”
서준이 표정을 지우자 윤태는 아차 싶었다. 이런 식의 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미안했다.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아. 하지만 그냥 이대로 여기에서 있어도 되는 건데 왜 그래?”
“너는 왜 가지 않으려는 건데?”
“어?”
“그 사람 때문에?”
“그래.”
윤태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 그래도 다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도 무조건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제 약도 점점 떨어질 거고. 우리는 모두 이러다가 죽을 거야.”
“형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을 하지 마. 일단 여자들이 수건을 가지고 천생리대도 만들어서 생활을 하고 있고. 쑥으로 차를 마시면. 그래도 뭐가 달라질 거야. 나가는 거 보다 여기가 안전해.”
“너 미친 거야?”
“뭐?”
서준은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윤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벌떡 일어났다.
“나 담배 생각 나서 죽겠어.”
“형.”
윤태가 웃음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서준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나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정말로 죽을 거 같아.”
“왜 그래?”
“적어도 이 섬이 아니라면 전파는 뜨겠지. 아니. 적어도 바다에 가면 전화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러기 어려울 거야. 여기에서 안 되는데 갑자기 된다는 게. 그거 너무 안일한 생각인 거잖아.”
“이윤태.”
“형 제발.”
윤태는 서준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형만 믿고 있어. 그래서 형하고 같이 살고 싶어. 그러니까 형도 제발 그렇게 생각을 해주라.”
“미치곘네.”
서준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답답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에 더욱 답답했다.
“일단 상황을 보자고.”
“무슨 상황?”
“그 사람이 나가도 배는 두 척이야. 그리고 꽤 커.”
“어차피 구명보트야.”
“그러니까.”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없는 배였다. 언제 나가건 마찬가지였다.
“그 배에 위험한 인간하고 같이 있느니. 안전한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 사람이 차라리 나을 거야.”
“어?”
“솔직하잖아.”
“형.”
서준의 대답에 윤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뭐가 아닌 건데?”
“우리 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보다 더 최악인 사람은 없어. 그러니 이상한 말 하지 마.”
서준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 그대로 멀어졌다.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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