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영화와 수다

[비치 온 더 비치] 솔직함과 발칙함 사이 그 어딘가

권정선재 2017. 2. 5. 20:52

[비치 온 더 비치] 솔직함과 발칙함 사이 그 어딘가

 

때로 자꾸만 극장에 가서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닌 영화들인데 그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야간비행]이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에 어딘지 모르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 일곱 번인가 극장에서 봤던 거 같은데, 볼 때마다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서 이렇게 섬세하게 그릴 수도 있구나, 그 안의 남자 아이들의 권력 다툼 같은 것도 세밀하게 그려내는 것이 좋았다. 퀴어 무비라고 하지만 정작 [야간 비행]에서는 소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앞에 놓인 무언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더 중요하게 생각이 되었으니까. 그 어떤 마음에 공감하는 지점이 있어서 일곱 번이나 봤고 그 보다 더 많이 보는 영화는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결심을 완벽히 깨뜨린 영화가 있었다. 최근에 더 많이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가 생겼는데 [비치 온 더 비치]라는 연애물이다. 고작 연애물이라고 무시하면서 보지 않으려고 했던 이 영화가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이십 대의 솔직한 연애를 담을 수 있을까 신기했다. 첫 눈에 이 영화를 보자마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다른 영화관에 가서 두 번째 관람을 하고도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 영화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비치 온 더 비치]는 너무나도 솔직했다. 망설이는 지점이 없었고 곧바로 앞을 향해서 나아가는 영화였다. 장면들도 꽤나 길게 진행되고 기존의 영화와는 다소 다른 호흡을 가지고 있는 영화였는데 그 부분들까지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솔직함과 발칙함을 갖고 있는 영화였다. 자신의 감정들이 부딪치면서 영화는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비치 온 더 비치]가 특별한 지점은 바로 주인공 가영에 있었다. 그 동안 영화 좀 본다고 한국 영화를 봤지만 이토록 솔직한 여성 캐릭터는 없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가서 우리 한 번 하자.’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그 동안 있었을까? 비슷한 경우의 반대의 캐릭터는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에서 유연석이 연기했던 김재현처럼 남성 캐릭터의 경우 먼저 이성에게 도발적으로 대쉬하는 상황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먼저 남성에게 들이대는 여성이라니. 사실 들이대는 것도 아니다. 솔직한 거지. 자기가 좋아하던 그걸로 그만이라는 이처럼 솔직한 여성이 그 동안 있었을까? 가장 주체적이면서도 가장 솔직한 여성의 등장이었다. 여기에서부터 [비치 온 더 비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남성에게 맞춰보라고 하지 않는 여성의 등장이라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여자가 이렇게 솔직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새로운 본보기 같다고 해야 할까? 오늘날과 딱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비치 온 더 비치]는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는 영화였다. 처음부터 가영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리고 자신의 이 솔직한 마음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상황을 피하려고만 하는 김최용준배우가 연기한 정훈에게 더 당당히 요구한다. 한 번만 달라고. 이런 솔직하고 되바라진 설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이게 당연한 거다. 눈만 맞아도 잤다고 고백하는 20대 시절의 헤어진 연인이 이 정도 대화 정도는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거지. 물론 거기에 대해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도덕적으로 논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애초에 이런 식의 대화도 없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당신들이 틀렸어! 라고 과감하게 말해줄 수 있는 영화였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여전히 미련을 갖는 것 같은 대화를 하는 것도 좋았다. 누구나 다 겪어본 그런 연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있으니까. 그 동안 수많은 연애물이 나왔지만 이토록 솔직하게 그 모든 감정에 대해서 고백하는 영화는 없었다.

 

정훈역시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가영에게 적극적으로 끌려가는 존재인 동시에 점점 더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존재였다. 기존의 한국 영화의 문법에서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여성이었다. 남성들은 늘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명확히 깨닫고 있었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여성들을 움직이는 존재였다. 하지만 정훈은 다소 약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 가영의 선택에 따라서 천천히 변화하는 인물이다. 물론 후반으로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훈역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영에 대해서 어떤 미련을 갖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 역시 가영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의 여자 친구가 있기에 쉽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며 망설이기만 한다. ‘가영이 다시 자신과 사귀자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데, 한국 영화에서 이토록 남성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적이 드물기에 더욱 도드라지는 모습을 갖고 있다.

 

[비치 온 더 비치]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장을 나누게 되면서 [비치 온 더 비치]는 일종의 연극과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다소 긴 대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루하다거나 낯설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인서트 장면에서 화분이 등장하는데, 이는 마치 연극에서 암전이 되는 순간과도 닮아있다. 이 네 장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점점 더 고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본격적으로 잠을 자기까지의 시간, 자고 나서의 시간.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된 시간. 이 네 장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서 관객들은 점점 더 그들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들은 솔직하며 도발적이고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려주며 감정을 숨기지 않으니까.

 

영화의 거의 모든 부분을 두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서 소화하고 있는데, 지루하다거나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흔히들 정가영감독을 여자 홍상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그녀에게 여자 홍상수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두 인물을 포착한다. 그리고 관객은 오롯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작은 영화이다 보니 이 부분에서 어설픈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인물이 멀어지는 순간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치 온 더 비치]는 이 부분까지도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우리의 일상의 모습하고 너무나도 닮아있으니까. 우리도 우리의 뒤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나? [비치 온 더 비치]에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 대사는 거의 그 정도의 대사들이다. 정말 중요한 대사들은 두 주인공이 콕콕 집어서 이야기를 해주니 때로는 가볍게 넘겨도 되는 부분은 넘겨도 된다는 것을 영화는 덤덤하게 그려준다. 영화는 삶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느낌이다.

 

[비치 온 더 비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만큼 특별할 것이 없고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이 영화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극 중 정훈의 여동생인 은진이 나오는데, ‘은진가영의 또 다른 자아라고 말을 해도 좋고 관객의 입장에서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며, 어떤 현자 같기도 하다. 일종의 선문답. 원래 좋아하던 것을 더 좋아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관객들은 아! 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우리는 그냥 이 순간에 충실하고 지금 이 감정에 충실하면 되는 거구나. 이런. 이십 대라는 시절은 아무 것도 고민하지 않고 그저 오롯이 가도 되는 시기이지만 오늘날의 이십 대에게 이런 선택은 사치다. [비치 온 더 비치]는 때로는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해도 괜찮아. 라는 것을 말해준다. 네가 지금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냥 바로 말을 하라고. 그렇다고 해서 누가 너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 말을 하려고 한다. 나는 [비치 온 더 비치]를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