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영화와 수다

‘하정우’는 먹방을 찍어도 사랑스럽다.

권정선재 2016. 11. 28. 11:54

하정우는 먹방을 찍어도 사랑스럽다.

[아가씨] 속 복숭아 먹방에 박수를 보내며

 

[아가씨]에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같은 감탄사가 나온 장면은 오직 한 번이었다. 바로 하정우가 복숭아를 먹는 장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커플들끼리 눈치를 보느라 감탄사 같은 것이 나올 틈이 없었으나, ‘하정우의 먹방은 달랐다. 그가 복숭아를 한 입 물고 거기에서 과즙이 터져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탄성을 내지르며 좋아했다. 그 장면은 극의 흐름을 끊었지만 관객들은 사랑했다. 관객들은 하정우백작으로 보는 동시에 하정우로 바라봤다. 배우 하정우가 스크린에 보였지만 관객들은 그에 대해 불편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배우 하정우가 스크린에 보이는 것을 반가워했다. 관객들은 그가 언제 음식을 먹을까를 기대하며 그 순간을 함께 즐겼다. ‘하정우가 연기한 백작은 영화 안에서 존재하면서, 동시에 영화 밖의 인물이었다. ‘하정우는 이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소비하면서 동시에 증명해냈다. [아가씨]백작백작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하정우라는 배우 개인으로도 등장했다. 관객들은 그를 보면서 그의 캐릭터를 보기 원하면서도 동시에 배우 하정우가 언제 자신만의 모습을 드러낼지 기대하는 것이다.

하정우는 모든 영화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변주를 즐기는 배우다. 특히나 최근 영화에서 이 같은 경향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암살]에서 그가 연기했던 하와이 피스톨역시 특유의 능글맞음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무거운 사명감을 지닌 인물이지만 거꾸로 중심에 서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중심에 존재하지 않기에 하와이 피스톨은 더욱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였다. ‘하정우라는 배우에 대해서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나 이미지 등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면서 하정우스럽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적당한 능글맞음.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걱정을 한다거나 주저하지 않고 재빨리 그 상황을 빠져나오는 재치 등은 모두 하정우라는 배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일부로 영화와 관계없이, ‘하정우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에서 비슷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불편하다거나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내리며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특유의 능글맞음은 극이 지나치게 진지하게 흘러가는 부분에서 환기가 되며 극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는 역할을 담당한다. 대다수는 음식을 먹는 장면을 통해서 이런 극의 분위기의 반전이 이루어지며, 그의 단순한 능글거림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정우가 특유의 능글맞음을 연기하는 것은 주연 배우를 돋보이게 해야 하는 영화에서 주로 보인다. [러브 픽션]이라거나 [허삼관] 등 주연이지만 다른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야 할 때 오히려 하정우의 연기는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그는 당황하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그 상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자신의 상황으로 만들어가는 재주가 있는 배우다. [러브 픽션]에서도 공효진의 당당함에 캐릭터가 끌려가지만, 오히려 그 당황하면서 그녀에게 설득을 당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표현한다. [허삼관]에서도 비장한 캐릭터이지만, 순간순간 하정우라는 배우 자체가 보이면서 관객들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능글맞음을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부담스럽지만 과하지 않고,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정우가 이렇게 능글맞음을 연기하는 순간은 캐릭터가 먼저 앞서는 역할도 아니라는 점도 특이하다. 관객과 함께 극의 상황을 알아가야 할 때 그의 능글맞음은 더욱 빛을 발하며 여유롭게 영화를 주무르게 된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관객과 같이 나아가는 캐릭터들이다. 관객이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이 점에서 그의 능글맞은 캐릭터에 대해서 관객이 더욱 애정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하정우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완벽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관객에게 하정우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추격자]에서의 역할은 가볍다거나 여유를 부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하나의 물체만을 사로잡아야 하는 짐승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에서 하정우는 하정우스러움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만 올인하게 되는데. [황해][베를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간중간 하정우라는 배우 개인으로 보이지만 관객들은 이내, 그가 하정우라는 것을 잊은 채로 그의 캐릭터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오롯이 캐릭터 그 자체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캐릭터들은 모든 스토리를 끌어가는 중심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역할들과 다르다. [더 테러 라이브]처럼 오롯이 그의 연기만으로 끌어가야 할 때에 하정우는 특유의 능글맞음, 그러니까 하정우스러움을 연기하지 않는다. ‘하정우는 온전히 극 중 배역이 된 채로 극에 녹아드는데, 그는 완벽히 극의 기둥이 되어서 극을 지탱한다. 이 상황에서 하정우는 자신을 완벽히 지운 채로 연기한다. 기존의 장난스러우면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과 다르게, 극에 집중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완벽하게 몰입하게 돕는 것이다.

하정우는 그 어떤 배우보다도 자신이 중심이 될 적과 주변인이 될 때의 연기 방식이 달라지는 배우다. 그리고 쉽게 욕심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할애해서 주연 배우에게 가게 되는 포커스를 빼앗아 오려고 하는 것이 아닌, 여유를 즐기면서 그 캐릭터 안에서 자신만의 놀이를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이 그의 먹방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을 드러내면서 연기한 것은 [국가대표]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기억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하정우가 자유롭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적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 영화를 표방한 [국가대표]에서 그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고국으로 돌아온 입양아를 연기했고, 여기에서부터 배우로의 하정우라는 개인과 캐릭터를 반드시 불일치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하정우라는 개인이 스크린에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은 채로 연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정우는 관객이 하정우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은 그가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기대하며, 얼마나 하정우스러울지를 고대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그 모습의 하정우가 등장하는 순간 배역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하정우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것으로 우선 접근한다.

처음에는 장르 별로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던 하정우[범죄와의 전쟁]에서부터 이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영화 안에서도 능글맞음을 연기하기도 하고 무거움을 연기해야 할 때는 또 그 무거운 어떤 것을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하정우라는 배우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었다. ‘하정우는 영화 안에서 하정우라는 개인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통해서 마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기고 영화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그의 연기는 더 이상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배우 자체로 녹아드는 느낌을 선사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작품에서 하정우가 비슷하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비슷함은 그의 연기를 뻔하고 식상한 무언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기대해야만 하는 어떤 지점으로 존재한다. 마치 짐 캐리의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조니 뎁의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위트 있는 장면처럼. 관객은 하정우에게 하정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대사에서도 관객은 하정우에게 더 관대하게 웃어주며, 그의 재주를 기다린다. ‘하정우는 오롯이 그로 존재하며, 스크린 안에서 스크린 밖을 연기한다.

다만 하정우가 하정우스러움을 연기하는 배역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톤의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서 그의 캐릭터들이 모두 능글맞음이라는 장난스러움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 따라서 이 같은 매력은 각각 다르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크게는 영화 안에서 하정우라는 배우가 보이는 것과, 영화 밖에서 하정우라는 배우가 보이는 것으로 구분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서 하정우는 극 안에서 능글맞음을 연기하면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취하게 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관객과 같이 밖에 존재하면서 극 안으로 들어가 대사를 치고 나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이 같은 능수능란함은 모두 하정우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기본 이미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데, 그는 여유로우면서도 의뭉스러운 느낌을 퍽이나 잘 표현하는 편이다. 특히나 하정우가 하정우스러움을 연기할 때 하정우의 캐릭터는 명확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볍게 빠지는 느낌인데, 이는 오달수가 보여주는 코미디 연기와는 또 다른 결을 갖는다. ‘오달수배우가 오롯이 오달수라는 개인으로 싸우면서 극에 녹아든다면, ‘하정우는 하정우스러움이라는 하정우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소 결이 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나 [아가씨][암살]에서 하정우의 하정우스러움이 돋보이는데, 그 이유는 두 작품에서 확실히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영화에서 하정우가 선보이는 연기는 비슷하면서 다른데, 두 영화 모두 조력으로 등장하는 것 같으면서도 [암살]에서는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이 등장하는 메인 플롯과 다른 자신만의 플롯을 전개하고, [아가씨]에서는 히데코가 등장하는 모든 플롯에 곁다리로 등장한다. 이 같은 차이는 하정우라는 배우가 극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를 바꾸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처럼 작용한다. 극의 안에 있는가와 극에 바깥에 있는가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그의 연기를 다르게 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차이는 하정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가지는 무게와도 연결이 된다. 극의 안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 같은 경우에는 극의 바깥으로 손을 내밀면서 관객에게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게 된다. 반대로 영화의 밖에서 존재하다가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캐릭터에서 하정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관객이 놓치고 있던 것을 알려주면서 극의 분위기를 반전하는데 소비된다. 두 가지 모두 관객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극에서 존재하는 위치에 따라서 전혀 다른 캐릭터를 담당하며 극에서 담당하는 무게도 달라지는 것이다.

[암살]에서 하와이 피스톨캐릭터는 전형적인 극 안에 있는 캐릭터였다. 이 캐릭터는 메인 플롯을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는 서브 플롯을 담당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전지현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극장에 앉아있는 관객과 같은 입장인 것과 다르게, ‘하와이 피스톨은 처음부터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 시대적 사명감을 어떤 식으로 발현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깨닫고 있는 캐릭터다. 이 같은 캐릭터적인 특징은 하정우스러움과 만난 채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대사로 표현된다. 정작 가장 중요한 대사는 오달수가 연기한 영감삼천만 원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대사로 표현이 되지만, 그를 연기하는 중요한 역할은 하정우가 담당한다. ‘하와이 피스톨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관객들이 깨어나기를 바란다. 하정우스러움은 자유분방함을 통해서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암살]을 통해서 관객이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역사에 대한 것을 표현하는 것은 스크린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하정우의 연기다. 그리고 이 결말은 [암살]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결말인 안옥윤염석진을 처단하는 데로 이어진다. ‘하정우는 보다 분명하게 극에 존재하면서 관객에게 직접적인 교훈을 전달하는데 이는 전혀 거북스럽지 않다.

[아가씨]에서 하정우의 캐릭터는 [암살]하와이 피스톨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하정우개인을 드러낸다. ‘하정우가 연기한 백작[아가씨] 안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이 아니다. [핑거 스미스] 속의 젠틀맨이 모든 상황을 조율하면서 반전까지도 주도하는 것과 다르게, ‘백작은 그저 자신의 남성성만 지키기를 바라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히데코숙희가 더 가까이 가는데 존재할 뿐, 반드시 그가 없더라도 극의 진행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백작은 초반 설계에는 큰 도움을 주지만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 데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하정우는 자연스럽게 극에서 자유롭게 놀게 되는데, 더 이상 하정우개인에 대해서 관객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백작의 이미지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여성을 희롱하면서도 젠틀함을 유지하는 그의 연기는 여태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장난스러운 캐릭터들과 그 결을 같이 한다. 어떤 것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장난스럽게 대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 전부인 캐릭터는 극을 쉽게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아가씨] 속에서 백작은 자신의 이야기도 제대로 갖지 못하는 인물이고, 메인 플롯에서도 2장부터 주요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하정우이기에 사랑스럽고 3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가씨]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남성이 중심에 서지 않고 주변인에 머물기 때문이었는데, ‘하정우가 아니었더라면 오히려 남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식도 하지 못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백작은 극의 중심에 서지 않지만 끊임없이 극의 주위를 맴돌며 관객에게 남성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여성을 사랑할 줄 알고, 또 진지한 것 같지만 장난이나 부리며 여성을 희롱이나 하는 존재인 백작이 관객의 시선을 강탈하지 않고 적당히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모두 하정우스러움 덕분이다. ‘하정우[아가씨]에서 함부로 극의 중심에 서고자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오롯이 여성으로 일어서는 여성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으며, 관객은 여성과 남성에 대해서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하정우가 아니었더라면 백작의 이야기는 자칫 스토리의 중간으로 들어와 버릴 수가 있었다. ‘박찬욱감독이 철저한 계산을 통해서 2장부터는 백작을 극의 바깥에 두고자 하였지만, ‘하정우가 아니었더라면 이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정우는 극의 안에 있다가 극의 바깥에 있고, 다시 극의 중심이 되는 연기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다소 사족에 가까운 3장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관객이 하정우에게서 기대한 것을 고스란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2장에서 극에서 사라졌던 백작3장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데, 여기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역시나 굳이 표현이 될 필요가 없던 역할이다. 하지만 극을 마무리 지은 채로 백작은 모든 권선징악을 마무리한다. 이미 히데코숙희가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은 상황에서 3장에서 백작의 행동은 모두 서비스로 치부해도 그만인 장면이다. 특히나 자지를 지켜서 다행이라는 대사 등은 하정우라는 배우 개인에 대해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을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 장난스러우면서 심각한 상황을 위트 있게 넘치는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아가씨]의 마지막 부분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하정우배우가 가지고 있는 색이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극의 바깥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면서, 극의 모든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상황이고, 수은 중독으로 인해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관객들이 심각하게 보지 않았던 것은 거기에 하정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정우는 극 중 캐릭터가 죽는 상황에서도 이를 무겁게만 만들어가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하정우의 이 배우 자체로의 모습은 자칫 비극적인 상황에 매몰될 수 있는 페미니즘 적인 결말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아가씨]의 결말인 두 여성의 자유가 더 선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하정우덕이다.

하정우의 매력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은 그가 직접 만든 영화에서였다. [허삼관]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허삼관이라는 캐릭터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관객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저 무겁고 아프게만 느끼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가 하정우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매혈을 해야만 살아가는 상황이 분명히 비극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슬프게 그려짐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리 무겁게만 느끼지 않는다. ‘하정우허삼관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허삼관허삼관인 동시에 하정우그 자체이다. 관객은 그의 연기를 보면서 허삼관을 보지 않는다. 이는 배우의 연기력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다. 마치 김혜자의 연기를 보면서 그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선한 말투를 보며 미소를 짓게 되는 것처럼, ‘윤여정이 연기하는 카랑카랑하면서도 도회적인. 그러면서도 그 뒤에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처럼. 배우 개인에 대한 매력과 캐릭터가 자유롭게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의 분위기는 흐트러지지 않고, 관객들은 배우가 그것을 연기한다는 것을 완벽히 인지한 채로 배우의 연기를 감상한다. 하정우스러움은 비극의 순간을 숨 막힐 정도로 아프게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면서 극에 함께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하정우의 신작 이야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먹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하정우와 먹방은 더 이상 떨어뜨릴 수가 없는 소재다. 하지만 이는 위에서도 언급을 한 것처럼 배우가 연기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정우라는 배우가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게 그 안에서 자신을 연기한다는 의미이다. ‘하정우는 굳이 배역과 배우를 구분하지 않으며 비슷한 역할들을 반복한다. 특유의 능글맞음을 하정우스럽게 표현하는 그 비슷한 배역들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극의 중요도에 따라서 극의 안에 있기도 하고, 극의 바깥에 머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을 충분히 즐기고 웃을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다. 약간 느릿한 말투에 느물거리는 그의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의 입장에서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그의 여유로움은 극의 분위기를 망치기보다는 오히려 극에 몰입 도를 높여준다. 그의 능글맞음이 어느 부분으로 튈지 알 수 없고, 다소 지루하던 극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기 때문이다. 큰 키와 어울리는 느릿느릿함, 그러면서도 말에서 툭 치고 가는 그 매력은 오직 하정우이기에 가능해 보인다.

하정우의 연기는 사랑스럽다. 거기에는 하정우개인이 있기 때문이다. ‘하정우는 자신의 연기가 모두 비슷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는 관객이 그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군도: 민란의 시대] 속의 도치[암살]하와이 피스톨[아가씨]백작은 캐릭터만 보았을 때는 모두 다르고, 극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다르다. 하지만 세 캐릭터가 비슷하게 보이고 모두 기본적으로 유쾌한 캐릭터로 인지가 되는 데에는 하정우라는 배우 개인이 존재한다. ‘하정우는 극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관객이 캐릭터 이전에 하정우로 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선택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또 다른 기대를 하게 만든다. 모든 인터뷰에서 그의 먹방이 나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연기를 우습게보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관객들이 그의 먹방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내내 주구장창 먹어대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극의 중간 쯤, 극의 톤을 바꾸어야 할 때 그가 무언가를 먹게 되면 관객은 다시 스크린에 집중한 채 그의 먹방을 지켜보고 그 이후의 극의 전개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정우의 하정우스러움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아가씨]복숭아신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먹방 신이 나와 하정우스러움을 더욱 멋지게 표현하길 바라는 것은 그가 하정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