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영화와 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해설 대본

권정선재 2017. 2. 5. 20:55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가장 낮은 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자 하는 캔 로치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단순히 영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 관객이 보더라도 낯설게 느끼지 않을 익숙한 이야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사람들, 가장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가장 약한 사람들, 사회에서 가장 많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영화인데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심하게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야 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는 물음 정도를 던지고 있는 거죠. ‘켄 로치감독은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런 별명과 아주 잘 어울리는 느낌의 영화였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요. 영화가 상영되었을 당시 무려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기립 박수가 나왔다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여기에 계신 분들도 그런 어떤 전율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다니엘처럼 열심히 산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왜 저 사람이 저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거야? 이런 상황부터 그 허무함. 어떤 것을 느끼는 거죠. 바로 이 부분이 캔 로치감독이 노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적인 영화를 주로 만든 감독은 그저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기를 바라지 않는 거죠.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고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가보라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당장 하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을 하라고 말이죠.

 

우리가 흔히 착각을 하는 게 있는데 우리는 다니엘과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을 거라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다니엘이나 케이티의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감독은 바로 이 평범한 부분을 건드리려고 하는 거죠. ‘다니엘은 특히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성실한 노동자였던 그는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이런 위기들을 겪게 되는 거니까요.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약자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다니엘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해요. 그냥 모든 버려지는 존재가 되는 거죠. 그 누구도 그에게 성실하게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합니다. 아니 국가가 해주는 시스템 안에 들어오라고. 당신은 도대체 왜 그렇게 쉬운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거야? 라는 물음만 던질 따름이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비굴하거나 비루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당당하며 쉽게 다른 이에게 고개를 숙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가에게 자신들이 헌신한 만큼, 국가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받아내고자 합니다. ‘다니엘 블레이크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국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미 시스템에서 밀려난 그에게 국가는 불친절한 존재일 따름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국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국가의 입장에서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더 잘못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훌륭하게 룰을 세팅해놨는데 도대체 왜 당신은 이 룰을 지키지 않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죠. 아니 도대체 왜 내가 이 나라에 대해서 충성을 했는데 이 따위로만 대접을 하는 거냐고? 말입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국가에 복지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서 갔다가 싱글맘 케이티와 그의 두 어린 자녀를 보게 되죠. 그리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가 약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약자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 말이죠. 물론 영화에서 약자들은 특별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봇과 같은 공무원들이 이질적으로 다뤄질 따름이죠. 이 두 세력의 명확한 차이를 그림을 통해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더욱 선명한 어느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공무원들의 표정이 거의 없다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에서는 거의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아요. 다니엘이 그래피티를 하면서 건물을 더럽힌 순간에도 간단하게 경찰을 부르고 말죠. 굳이 그와 어떤 대화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 등은 영화의 전반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통화를 하면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라면서 전혀 다니엘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상담 직원이라거나, ‘다니엘의 사정을 들어주려는 복지부 직원에게 자꾸 그러면 룰을 어기는 거라고 말을 하는 상사 같은 경우 말이죠. 물론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한 행동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직접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주 약간만 배려하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그들은 그 약간의 관용도 베풀기를 원하지 않으니 말이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다보면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모든 순간은 바로 가장 약자들이 서로 뭉치게 되는 순간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의 인물들이 서로를 위해서 연대를 하는 순간들은 실제 우리와 닮아있기에 더 큰 울림을 선사하는 순간입니다. 가장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다니엘 블레이크케이티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친구가 되어갑니다.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존재가 되죠. 유사 가족과도 같은 이 공동체는 사실 국가가 먼저 나서서 해줘야 하는 거죠.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겠다는 말을 한 순간,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서 국가는 약자들을 위해서 그 무엇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옆을 지키는 것은 약자들이죠. 서로와 닮은 자들을 보면서 그들은 기꺼이 손을 내밀고 박수를 쳐주는데 이 부분이 또 다른 뭉클함을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캔 로치감독은 대표적인 사회주의 감독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국을 비판하는 영화를 많이 찍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캔 로치감독이 놓치지 않는 것은 바로 연대와 유대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던 다니엘케이티의 연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이 시위를 하는 동안 같이 박수를 쳐주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기부를 통해서 운영되는 푸드뱅크 등은 모두 이 연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서로를 잡은 손을 놓지 말자. 서로를 더욱 꼭 잡고 서로와 함께 나아가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영화에서 다니엘이 살고자 발버둥 칠 때 먼저 손을 내밀어서 일자리를 주고자 하는 사람도 블루칼라죠. 그들은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서로를 향해서 연대하며 견디기 희망하죠. 화이트칼라의 공무원들처럼 딱딱하게 굴면서 외면하지 않고요. 영화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표정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식욕을 참지 못해서 통조림을 따버린 케이티의 수치에 대해서 기꺼이 위로를 할 줄 알고 그녀의 수치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 바로 그거죠. 우리는 서로를 경멸하거나 외면할 이유가 전혀 업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결국 누군가가 본다면 다니엘이나 케이티와 닮아있으니까요. 우리가 먼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잡아야 한다고 영화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결이 비슷한 영화 중에서 최근 개봉했던 영화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도 있었습니다. 마약 중독자였던 청년이 길고양이와 친구가 되면서 더 나은 삶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영국 역시 그리 반짝거리지 않게 그려집니다. 국가는 개인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선택으로 인해서 뭔가 잘못된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이걸 회복하기 위한 어떤 사다리는 당연히 국가가 전해주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지금 국가들은 그 누구도 이것을 줄 생각을 하지 않죠. 모든 것을 다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개인이 더 노력하면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이미 모든 사다리가 끊어진 지금 개인들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의 주인공 제임스가 위기에 빠진 순간 구해주는 것도 개인들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이들이 함께 연대하면서 같이 나아갈 수 있는 거죠. 가장 평범한 사람들. 가장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연대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거죠.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을 영화까지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다른 영화보다도 쉬운 [나 다니엘 블레이크]이기에 사실 영화에 대해서는 크게 이야기를 해볼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이 커다랗게 담겨져 있지 않으니까요. 다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 외에 있는 어떤 상식이나 영국의 현실 같은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는 하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좋았더라면 켄 로치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치색을 포기한 적이 없는 영화 감독이기에 다른 작품들 역시 [나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거든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