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불신 3
“무슨 일이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왜요?”
지아가 다시 묻자 시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것도 아닌데.”
“초콜릿이 사라졌대요.”
뒤에서 들린 시우의 말에 지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음식이 없어졌다고요?”
“네.”
“아니.”
시인은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우리가 뭘 받았는지 같은 것은 제대로 모르니가.”
“하지만 그게 없어질 리가.”
“맞아요.”
시우는 지아의 곁에 앉아서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누나가 그런 건 되게 잘 기억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뭐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거 잊을 사람이 아니거든요.”
“야.”
시인은 눈을 흘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나 괜히 이런 걸 말해서 섬에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시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단한 것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고작 초콜릿이었다.
“누가 그걸 가지고 가고 싶었을 수도 있죠. 고작 그런 것을 가지고 이런 호들갑을 떠는 것도 우습잖아요.”
“하지만 여기에서 누군가가 정말 초콜릿을 가져간 거라면 다른 텐트에서 또 뭔가를 가져갈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필요한 거면 그냥 달라고 할 텐데 도대체 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에이. 됐어요.”
시인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걸 가지고 안 그래도 누가 죽어서 심각한 상황에서 따지는 거 너무 웃기잖아요. 기쁨 씨가 들으면 웃을 거야.”
“그 사람 없잖아.”
“라시우.”
시우가 항변하자 시인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우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누나는 무섭지도 않아? 이 말은 우리가 텐트에 없을 때 누군가가 우리 텐트를 뒤진다는 거라고.”
“그게 뭐?”
“그 미친 사이코일 수도 있어.”
시우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안 그래?”
“그만.”
시인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 그런 것을 생각을 하는 것으로도 너무 두려웠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라시우. 너는 어떻게 그 사람 이름을 말할 수가 있어? 미친 사람이잖아? 절대로 안 되는 거야.”
“하지만.”
“그만.”
“누나.”
“아니요.”
지아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말해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강 기자님.”
“이런 거 숨기면 다른 일이 또 벌어지게 될 거예요. 우리가 도대체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 건데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도 뭐가 없어졌다고 하면 그걸 말을 하는 계기가 될 거고. 적어도 짐을 지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 계기가 되겠죠. 그리고 라시우 군. 임길석 씨는 아닐 거예요.”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이런 확신을 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보트로 여기 다시 오려면 어딘가에 정박을 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없어요. 유일하게 있는 곳이 우리 해변이야.”
“하지만.”
“같이 봤잖아요.”
“네.”
지아가 설득하자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안류가 심해진 요즘 배가 접안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아지겠죠.”
“그렇겠죠.”
“저는 일단 구지웅 씨에게 가볼게요.”
지아는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뭐라도 더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과일 고마워요.”
“아니요. 어차피 우리에게 많아서 그래요. 그리고 여기에는 아직 키가 클 게 분명한 시우 군도 있으니까.”
지아는 시우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멀어졌다. 시인은 한숨을 토해내고 시우를 노려보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야. 너는 하필 말을 해도 그렇게 끔찍한 일에 대해서 말을 하며 어떻게 해? 생각도 하기 싫은.”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텐트 위치 옮기면서 내가 흘렸을 수도 있어. 그런데 너는 그런 건 생각도 안 하고 말을 하니?”
“하지만.”
“알아.”
시우가 무슨 변명을 하려고 하자 시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였다.
“네가 내 편을 들어주려고 한 거. 하지만 네가 내 편을 들어주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선의는 아닐 수도 있다는 거. 그거 너도 알아야 한다. 안 그러면 너 그거 실수일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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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가는 겁니까?”
“비켜요.”
“강 기자님.”
“이윤태 씨.”
윤태가 자신의 앞을 막자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자꾸 이러는 건데요? 왜 자꾸만 이런 식으로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건데요? 나 이해가 안 가서 그래.”
“내가 괴롭힌다고요?”
“지금 그게 아니면 뭐예요?”
“무슨.”
윤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그저 지아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형이랑 말을 했어요. 형이 아마 강 기자에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 가기는 한데.”
“그럼 된 거네요.”
“뭐라고요?”
“이윤태 씨는 배우야. 배우라고. 잘 나가는 배우가 매니저 말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기자 생할을 그래도 해본 사람으로 그 편이 더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닙니다.”
윤태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서준이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것이기는 했지만 그게 옳은 일은 아니었다.
“강 기자님도 저를 좋아하는데.”
“아니라고요. 그리고 급하니까 비켜요.”
“기자님!”
지아는 윤태를 비켜서 곧바로 지웅의 텐트로 향했다. 윤태는 머리를 마구 헝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런 늙은 사람이 뭐가 좋다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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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 없어져요?”
“네.”
지웅은 미간을 모았다.
“설마 그럴 리가요.”
“그러게요.”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그 설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렇죠.”
지웅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이 섬에 확실히 우리만 있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합니까?”
“적어도 임길석 씨는 오지 못했을 거예요. 이안류가 이렇게 심한데 그 사람이 왔을 리는 없어요.”
“그럼 누가 텐트에 가서 가져갔다는 건데. 섬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게 없어지면 누구라도 알 것 같은데. 일단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두 말을 해봐야 하겠네요. 그래야 할 테니까.”
“그렇죠.”
지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하는 거였다.
“아 그리고 공유.”
“맞네요.”
“어떻게 하기로 하셨어요? 일단 저희 세 사람은 모든 걸 다 공유하기로 했어요. 그게 생존에 나은 방향이니까.”
“그게.”
지웅이 망설이자 지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반대를 해요?”
“정확히 누구인지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승무원 중 한 분이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생존이 조금 더 길어지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어떤 생존의 도구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지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한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쉽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모두 같이 살지 안흥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들 느낄 텐데요.”
“그러니 다 그런 거겠죠.”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게 어떤 거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될 거라고 믿는 거겠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네요.”
“그렇죠.”
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더 공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요?”
“표재율.”
“그 대학생?”
“네.”
“그 분은 왜?”
“들켰거든요.”
“들켜요?”
“네.”
지웅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먼 바다를 쳐다봤다.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다 공유를 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왜 다들 처음에 이러지 않은 거예요?”
“못 들으셨습니까?”
“아니요. 들었는데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이 섬에서 도대체 뭘 더 어떻게 숨기고 움켜쥐겠다고. 그걸 말을 하지 않고 이랬던 건지. 모두가 살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섬에서 왜들 그렇게 이기적이었던 거예요?”
“그러게요.”
지웅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다들 이기적으로 굴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당황했으니까요. 그래도 그 순간 저희를 믿고 사람들이 따라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요?”
“그러니까 여객기의 앞 부분.”
“뭐.”
지웅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을 겁니다. 만일 그쪽에서 생존자가 있다면 이쪽이 생존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겠죠.”
“그렇겠죠.”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거였다.
“이게 운이 좋은 거죠?”
“사고가 났으니 나쁜 건가요?”
“그런가요?”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낯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일단 공유를 하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냥 말을 해요. 그래서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가방을 보여주지 않는 거. 어때요?”
“좋습니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편이 가장 간단하겠네요.”
“그리고 신뢰를 잃지 않는 방법이죠.”
“신뢰.”
지웅은 지아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신뢰라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네요.”
“그 신뢰라는 거 세워야 하니까.”
“지금은 불신이 가득하죠.”
“그렇죠.”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몇 남지 않은 이 사람들은 하나로 뭉쳐야 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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