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불신 5
“이윤태 씨는 사람이 하는 말 못 알아들어요? 나는 이윤태 씨와 연애를 할 생각이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이 말을 듣고 내가 이윤태 씨를 좋아하기는 하는 거네.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강 기자님이 하신 말 잊었습니까?”
“뭐라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지아는 재빠르게 자신의 말을 복기했지만 정확한 워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무장님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고, 저랑은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신 거니까요.”
“그건.”
자신의 말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이 말은 윤태의 말이 옳았다. 그러니까 이건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좋아요.”
윤태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기자님을 무조건 밀기만 하지는 않을게요. 적어도 기자님이 나를 미워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니까. 그냥 이곳의 상황이라거나 여러 복잡한 문제가 많아서 그런 거겠죠.”
“그러니까.”
“됐어요.”
지아는 자신이 너무나도 멍청하게 느껴졌다. 지금 자신은 제대로 된 문장 하나 구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가겠습니다.”
“저기.”
윤태는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그가 멀어지고 나서야 지아는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지아 뭐 하는 거니?”
이렇게 멍청할 줄이야. 자신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 멍청했다.
“도대체 왜 한 문장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거야. 이래놓고서 나 기자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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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지 정하셨습니까?”
지웅의 물음에 모두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지아는 먼저 손을 들었다.
“저랑 권윤한 씨. 그리고 맹세연 씨. 우리 세 사람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요. 일단은 그래야 할 거 같고요.”
“좋습니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율이 손을 들었다.
“표재율 씨.”
지웅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비비고 입을 열었다.
“저희 승무원들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이 섬에서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저도 공유합니다.”
윤태가 손을 들었다. 서준은 옆에서 그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야 생존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시인도 이어서 손을 들었다.
“저희 세 사람도 공유하기로 했어요. 적어도 이 섬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보면 앞으로 생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기도 하겠죠.”
“물론입니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기쁨을 제외하고 모두가 다 동의한 거였다.
“그럼.”
“나는 반대입니다.”
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섬입니다. 자신이 뭘 가지고 있었는지 잘 생각을 해보라고요.”
서준은 그대로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지아는 윤태를 쳐다봤고 윤태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지웅은 손뼉을 한 번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우리가 갖고 있는 거.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유하는 거니까 상황이 나아지겠죠.”
“나중에 말하지 않을 거죠?”
시안의 말에 모두가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저 남성 두 분은 같이 텐트를 쓰니까. 둘이서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그러죠.”
윤태는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그렇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말이 들어오니 당황스러웠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확실해요?”
“확실합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죠?”
“라시안!”
시인이 나섰지만 시안도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한 텐트를 쓰는 사람인데. 자신도 모르게 무심결에 말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을 해보라고요.”
“안 한다잖아요.”
지아가 끼어들자 시안은 지아를 쳐다봤다. 지아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라시안 씨. 알고 있어요. 지금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예민하고 서로를 살펴야 하는 상황인 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할 이유는 없어요.”
“뭐라고요?”
“우리는 이곳에서 다 같이 살자고 공유를 하자는 거지. 다 같이 죽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니까요.”
시안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이상하잖아요.”
“뭐가요?”
“다들 안 이상해요?”
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왜 이런 공유를 해야 하는 건데요? 이런 공유를 하자고 정한 것도 저 둘 아니에요?”
시안의 말에 지웅과 지아는 재빨리 시선을 공유했다. 누군가가 이럴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그만 둬.”
시인은 시안을 억지로 앉혔다.
“미안해요.”
“언니가 뭐가 미안해?”
“그만해.”
“맞아요.”
두 사람의 설전이 이어질 때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열었다.
“사실 저랑 구지웅 씨만 뭔가 정보를 공유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만 알고 있는 것도 있고요.”
“언니.”
“괜찮아.”
세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지아의 손을 잡았지만 지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외국이에요. 문자메시지를 받았죠. 저도 전파가 터지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을 말하지 않고 있었어요.”
지아의 말에 침묵이 강하게 흘렀다. 지웅은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서 지금 공유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오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니까.”
“저는 보조배터리가 있거든요.”
윤한은 밝게 웃어보이고 곧바로 보조배터리를 꺼냈다.
“이걸 가지고 뭐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사실이었으니까.
“저에게 약이 많아요.”
“많다고요?”
“그런데 이건 제 가방이 아니에요.”
지아의 말은 다시 파문이 되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건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그리고 탐폰도 있었어요.”
“말도 안 돼.”
“진짜에요.”
시안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해요.”
“누군가의 짐과 바뀐 겁니까?”
“아니요.”
지웅의 물음에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바뀐 게 아니에요. 제 짐이 사라진 것은 없어 보이니까. 그냥 누가 제 짐에 이 물건들을 넣은 거예요.”
지아가 긴 끈까지 들어보였다.
“아무튼 뭐가 되었건 이걸 공유하자고 하기 전까지는 가방을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미리 알지 못해서 죄송해요.”
“일단 좋습니다.”
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뭐 가지고 계신 물건들 있습니까?”
다들 평범한 물건들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특이한 것은 재율이 갖고 있는 나침반 정도였다.
“일단 문자를 확인하죠.”
“맞아요.”
윤한은 손뼉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보조배터리를 지웅에게 건넸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핸드폰을 켜보죠.”
지웅은 윤한의 배터리를 연결했다. 그리고 곧 휴대전화가 켜지고 액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지웅의 얼굴이 구겨졌다.
“왜요?”
“선배.”
나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라가 없어요.”
“네?”
지아가 재빨리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나라의 말처럼 외교부의 문자가 와 있는 것이 전부였다.
“말도 안 돼.”
“그러니까 영사관이나 그런 게 없는 거죠?”
“네.”
그 말은 여기가 어디인지 아직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단 전파는 터져요.”
다른 사람들이 동요하자 지우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가 적어도 여기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거죠.”
재율은 미소를 지으며 지아의 말을 받았다.
“그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말도 안 돼.”
시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다들 문자메시지가 온 것을 알고 숨기고 있었다. 뭐 그런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거죠?”
“숨긴 게 그러니까.”
지아는 당황스러웠다. 숨기려고 숨긴 것이 아니었다. 더 나은 상황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아무튼 숨긴 거잖아요.”
“네.”
지아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숨긴 건 숨긴 거였다. 지아의 말에 시인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지.”
시안은 그대로 텐트로 돌아갔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복잡했다.
“저기.”
“내가 말할게요.”
시인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시안을 따라갔다. 그리고 시우도 짧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들을 따라갔다.
“이게 뭐야.”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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