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기쁨
“오랜만이에요.”
“기쁨 씨!”
텐트를 나섰던 지아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석우의 무덤을 지키겠다고 했던 기쁨이 텐트촌으로 돌아왔다.
“온 거예요?”
“네.”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전에 비해서 감정이 많이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다행이다.”
“죄송해요.”
“기쁨 씨가 뭐가 죄송해요?”
“제 감정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상하게 신경만 쓰이게 하고. 그랬으니까요.”
“아니에요.”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온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였다.
“그래서 여기에 있을 거죠?”
“네.”
기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거기에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요. 오빠는 이미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살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오빠가 그런 선택을 한 거니까. 저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죠.”
“그래요.”
지아는 기쁨의 손을 꼭 잡았다. 살짝 거칠어진 손에 마음이 아팠지만 자신의 손도 이미 거칠어진 후였다.
“지웅 씨에게 가요.”
“네? 네.”
기쁨은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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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가 늘어난 거 같아요.”
“아.”
기쁨의 질문에 지웅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기쁨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했고 기쁨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긴 거예요?”
“아마 다들 이 섬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거겠죠. 각자가 생각을 하는 게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고요.”
“말도 안 돼.”
기쁨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곳에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어요. 그래도 여기에 오면 외롭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데 지금 사람들을 보니까 모여 있어도 결국 외로운 거네요.”
“모여 있어도 외로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말을 하고 손을 내밀면 바로 잡아줄 사람이 있으니까요.”
지아의 말에 기쁨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래도 여기에는 말을 걸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뭘 숨기고 있었던 건데요?”
“그게.”
“아.”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하며 말을 꺼내기 주저하자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만 했다. 기쁨은 자신과 석우의 가방을 열어보였다. 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죄송해요. 우리도 뭔가 엄청난 게 있으면 좋겠는데.”
“아니요.”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대한 것과 더 이상 전파가 닿지 않는다는 말을 더했다.
“그럼 바다로 나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안류가 더 심해졌어요.”
“그래요?”
“네. 이제 바다에 나가는 건 무리일 거예요.”
기쁨은 입을 내밀고 먼 바다를 바라봤다. 확실히 파도는 이전보다 조금 더 거칠게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계절도 이제 변하고 있는 게 보여요. 과일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겨울이 오고 있는 거죠.”
“여기도 북반구니까.”
“그러니까요.”
기쁨은 무릎을 안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럼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적어도 일단 우리가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그쪽에서 알지 않을까 싶어요. 미수신 메시지도 있고.”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그러길 바라야죠.”
지아의 약간은 꿈 같은 말에 기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확신도 할 수가 없는 거였다. 어떤 대답도 내릴 수 없는 상황. 그들은 결국 모두 같은 양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별로 더 대단한 것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차갑게 구는 건지 모르겠어요. 같이 살아야지.”
“무서우니까.”
“뭐가 무서워요?”
“이 섬이요.”
지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우리 이 섬으로 온지 어느새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어요. 그런데 먼 바다로 지나가는 배도 하나 보이지 않아. 우리는 그냥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거고.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몰라요.”
“설마.”
“그리고 누가 일부러 여기에 우리를 데려다 놨을 수도 있어요.”
지아의 말에 기쁨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요.”
지아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강지아 씨. 정확히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을 갖고 말을 했다가는 다른 문제가 생길 겁니다. 혼란만 줄 거예요.”
“하지만.”
“강지아 씨.”
“알았어요.”
지아는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지웅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을 향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한기쁨 씨에게도 말을 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비밀이 있어야 하니까요.”
“네.”
기쁨은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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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왜 막은 거예요?”
“강지아 씨의 가방에 누가 몰래 약과 탐폰을 넣었다. 그런 말을 듣고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지아는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지웅의 말이 옳았다. 이런 말을 하면 공연히 더 불안감만 가중될 거였다.
“강지아 씨가 한기쁨 씨와 모든 것을 공유하겠다는 생각은 알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할 겁니다. 무조건 비밀이 없는 게 낫다고 모든 걸 다 말을 했다가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네.”
지아는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히 지웅과 다투거나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게 옳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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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신 거예요?”
“네.”
재율의 인사에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다들 자신을 반길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하세요?”
“그냥 그렇게 가버려서.”
“아니요.”
재율은 평소에 섬에서 잘 보이지 않던 미소를 보이면서까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기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고마워요.”
기쁨은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그리고 이전과 다름 없이 깨끗한 상태에 놀라서 주위를 돌아봤다.
“좋은 사람들이네.”
기쁨은 텐트에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텐트는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렇지만 좋았다. 자신은 돌아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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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분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잘 부탁드립니다.”
기쁨의 인사에 모두 박수를 쳤다.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 분위기가 너무 그리웠다.
“자. 내일은 강지아 씨랑 이윤태 씨가 섬의 저쪽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갈 겁니다. 부디 연결되기를 모두 기원하죠.”
지웅의 말을 끝으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쁨이 가려고 하는데 지아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과일 같이 먹을래요?”
“네?”
“며칠 동안 거기에 있느라 과일 채집도 못 했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과일 딱 맛있게 말렸거든요.”
지아의 뒤에서 윤한과 세연도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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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귄다고요?”
“그렇게 됐어요.”
세연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내밀었다.
“죄송해요.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을 텐데.”
“아니요.”
기쁨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배려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지나친 배려는 부담스러웠다.
“그냥 저도 이제는 조금씩 익숙하려고요.”
“네.”
“그런데 내일 저도 가도 될까요?”
“네?”
지아는 기쁨의 물음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둘은 메시지만 확인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게.”
“언니. 끼면 안 되죠.”
세연은 윙크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분위기가 묘하거든요.”
“어머.”
기쁨이 놀라서 입을 막으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아니.”
지아는 당황스러웠다. 일단 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오해를 받는 것은 싫었다.
“그러니까.”
“언니 내숭 떨지 마요.”
세연은 지아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아는 그런 세연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고맙기는 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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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할 거야.”
“그래도요.”
“뭐가 그래도야?”
“언니.”
세연은 지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언니. 그래도 아까 그냥 넘긴 게 낫죠. 괜히 그 분이 같이 간다고 하면 그게 더 복잡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세연을 노려보고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뭐가요?”
“나랑 이윤태 씨.”
“좋아하면서.”
“뭐라는 거야?”
지아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절대 아니거든!”
“그럼 그렇다고 쳐요.”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세연의 말에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거였다.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세연은 지아의 손을 꼭 잡았다. 지아도 세연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기에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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