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장. 위기 1
“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은 낮고 묵묵했다.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저에게는 숨겨진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세상에 내놓은 적이 없는 아들입니다.”
세상에 이것을 말을 하려고 하니 괜히 묘한 기분이 드는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말을 해야만 하는 거였다.
“그 아들이 지금 비행기 사고를 당해서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으로 거기에 구조대를 보내려고 합니다.”
대통령은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제가 지금 이것을 고백하는 이유는 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국민들이 기대하는 그런 이가 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에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의 국민들도 다치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살짝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어쩌면 이렇게 긴장이 되는 일인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저는 그저 다 한 사람의 국민도 다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허나 제가 그 일에 돈을 쓴다면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습니다. 저의 아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게 되겠지요.”
대통령은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을 그리 숨기려고 했는데 어렵지 않았다.
“아들을 사랑합니다.”
목이 콱 막혔다.
“어쩌면 그래서 찾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허나 맨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구해야 한다고 믿었을 때. 그 순간에는 그곳에 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뭔가 할 수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국민들게 말을 하고자 합니다.”
대통령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해야만 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의 뜻을 그대로 밀고 가기 위해서.
“국민 여러분 힘을 주십시오.”
대통령은 조금 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만 제가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레임덕에 있는 대통령이 국민들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얼마 전 일어난 그 항공 사고.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네 명의 승무원. 스물세 명의 탑승자들. 그 사람들이 모두 돌아올 수 있도록. 그 사람들이 꼭 살아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대통령은 카메라를 응시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갔다.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배가 뜨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러네요.”
갑작스러운 지웅의 호출을 받은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로 가야 하는 배는 자꾸만 해변으로 돌아왔다.
“이안류가 꽤 심하군요.”
“그러게요.”
윤한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트가 필요한데 이래서는 가지고 갈 수가 없을 거 같은데요.”
“일단 해변으로 어떻게든 옮기면 될 거 같기는 한데. 섬의 저편에서는 제대로 해변이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죠.”
지웅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것 참 뭔가를 하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네요.”
“그러게요.”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어려웠다.
“이렇게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우리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럼 탈출까지 했겠죠.”
“그러네요.”
지웅의 지적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여전히 이 섬에 갇혀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도와줘야 하네요.”
“뭍으로 옮기는 건 무리겠죠.”
“당연하죠.”
윤한의 말에 지아는 돌아서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절벽 아래로 가지고 가나고 해도 거기에서 다시 올릴 수 없어요. 그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에요.”
“그러네요.”
윤한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는 애초에 그들이 들고 가기에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끌고 갈 수도 없었다. 혹시라도 배 아래에 상처라도 생기면 그것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급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네?”
“이 겨울을 여기에서 나야 할 수도 있죠.”
“아니요.”
지웅의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저는 싫어요.”
“강지아 씨. 저도 싫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뭐라도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먼 바다로 가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가까운 바다로 갈 수는 있는 거잖아요. 그럼 해변에 딱 붙어서 이동을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라면.”
“뒤집어 질 겁니다.”
“네? 뒤집어 진다고요?”
“섬의 이쪽은 모래사장이 마련이 되어 있어서 그리 위험하지 않지만 저쪽은 아예 그런 해변이 없잖아요.”
“그건.”
지아는 침을 삼켰다. 해변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전혀 다른 모습의 섬을 발견했으니까.
“자꾸만 섬으로 우리를 밀어내려는 파도는 이 배를 벽으로 몰아붙이고 그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강지아 씨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지만 위험합니다.”
“그렇겠네요.”
지웅이 이렇게 말을 하니 지아도 물런라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일이었다.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섬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섬에 갈 수 없다니. 말이 안 되는 거네요. 너무 어려워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죠.”
앉아있던 재율이 고개를 들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그들도 오지 않을 거라는 거잖아요.”
“누가 있다면 말이죠?”
“누가 있겠죠.”
재율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올무. 그거 낡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건 최근에 누군가가 그것을 두고 갔다는 건데. 그 이야기는 그 섬에서 누군가가 올 수 있다는 거죠. 적어도 그 섬이 아닌 어딘가에서라도 말이죠. 안 그래요?”
“그건 그렇지만.”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하지만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섬에 정말 고립이 되는 거잖아요. 멀리서 배 하나 지나가지 않는데 이건 정말 아니죠.”
“지나갈 수도 있죠.”
“표재율 씨.”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지아가 재율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지웅이 그것을 막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입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배가 한 척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배가 지나갈 수도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계절이 달라지니까요.”
“네? 계절이요?”
잠시 멍하니 있던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에요?”
윤한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길이 달라져요?”
“그렇지.”
“정말로요?”
“응. 해류가 다르게 흐를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러면 배가 힘을 받기 위해서 다르게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되면 혹시라도 이리로 지나가는 배가 우리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거네요.”
“그렇죠.”
지아는 아랫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이 쉬운 일일 거였다.
“그렇게만 되면 좋을 텐데요.”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일단 우리가 배를 타고 다른 섬에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갈 수 있을 수도 있어요.”
재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안류가 늘 심한 것은 아니니까. 완벽하게 이 섬의 주위가 어떻게 해류가 흐르는지는 모르니까요.”
“그렇지.”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곳에서 탈출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렵네요.”
“어렵죠.”
지아의 대답에 지웅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바빠요.”
“그러게.”
과일을 손질하던 세연의 말에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만 뭔가 하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세연에게 미안했다.
“미안해.”
“언니가 뭐가 미안해요?”
“너 혼자 일 다하게 해서.”
“제가 다한 거 아니에요?”
“어? 그럼 누가?”
“더 없어요?”
빈 판을 들고 오는 윤한을 보며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저렐 흔들었다. 윤한이 모두 돕고 있는 거였다.
“권윤한 너 뭐야?”
“뭐가요?”
“아주 살림의 귀재야.”
“그럼요.”
윤한은 가슴을 두드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웃기지도 않아.”
“에이.”
“그래도 잘 다듬었네.”
“당연하죠.”
과일을 적당한 두께로 썰어서 말리는 것이 중요했다. 너무 두꺼우면 상해버리고 너무 얇으면 씹는 맛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우리 내일은 나가겠죠?”
“모르지.”
“왜요?”
“이안류.”
“아.”
지아의 대답에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이런저런 문제라는 것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거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 섬에서 나가는 것이 조금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이 섬에서 하루라도 빠르게 나가고 싶은데.”
“언니 너무 초조한 거 같아요.”
“그래?”
세연의 말에 지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는 안 초조해?”
“네. 저는 좋아요.”
“좋다.”
세연의 말에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의 휴식은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나는 돌아가야 해. 그래서 이윤태 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기사. 그거 내가 써줘야 하는 거거든.”
“좋은 사람이네요. 언니는.”
“아니.”
세연의 말에 지아는 손사래를 쳤다. 애초에 자신이 그런 기사를 쓰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을 문제였다.
“내가 만든 문제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해결을 해야 하는 거지. 그걸 가지고 좋은 사람이라니.”
“보통 사람은 자신이 문제를 일으켜도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언니는 좋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사실은 언니 스스로도 이미 잘 알 거 같은데요.”
“그런가?”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하루라도 빠르게 이 섬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
'★ 소설 완결 > 어쩌다 우리[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69장. 위기 3] (0) | 2017.04.05 |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68장. 위기 2] (0) | 2017.04.05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66장. 다정한 연인들 2] (0) | 2017.04.03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65장. 다정한 연인들 1] (0) | 2017.04.03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64장. 그들의 선택 3] (0) | 201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