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수다] 분노,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보고 나서 한 동안 멍해졌던 영화가 바로 [분노]였다. 극장에서 그 동안 수많은 영화들을 봤었다. 그런데 이토록 강렬한 느낌을 준 영화가 없어서 더욱 당황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감독이 도대체 사람들에게 뭘 한 거지?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다소 작은 상영관이어서 몸을 구겨가면서 봐야 했기에 처음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내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는 영화였다. 두통이 올 정도로 강렬하게 몰아붙이는 무언가가 있는 영화였기에 극장에서 개봉을 하기를 기대했었다. 그리고 극장에서 다시 본 [분노]는 다시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분노]는 전혀 연관이 없는 세 그룹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그룹의 사람들에 있는 비밀스러운 존재의 사내. 이 세 사내 중에 한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설정으로 감독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영화가 엄청난 이유는 세 사람 중 누가 범인인지 쉬이 그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범인인 것처럼 느껴지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또 범인 것처럼 느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몰아간다. [분노]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며 모든 믿음을 완벽하게 망가뜨린다.
세 그룹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야노 고’의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이들은 연인이라는 점에서 가장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었다. ‘와타나베 켄’ 쪽의 이야기는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고, ‘히로세 스즈’는 누군가를 처음 보고 바로 신뢰를 하는 쪽의 이야기였으니까 당신과 같이 자고 같이 사는 누군가. 마음을 나눈 누군가가 살인범이라고 의심하게 되는 그 순간이 세밀하게 그려집니다. 한 다리를 건너서 알게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범죄자라고 의심하게 되는 그 순간. 안 그래도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그를 의심하게 된다면. 그 어디에도 신고도 하지 못하고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운 순간의 세밀한 감정을 감독은 놓치지 않고 ‘츠마부키 사토시’는 완벽하게 묘사합니다. 관객까지 속이면서 정말로 ‘아야노 고’가 의심스러운 어떤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면서 말이죠. 영화는 세 그룹 안에서 남성들이 그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그리고 다시 어떤 식으로 의심을 사게 되고 멀어지게 되는 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신뢰할 때 어떤 순간에 신뢰를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신뢰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분노]는 살해 현장의 묘사도 꽤나 잔혹한 편이지만 심리에 대해서 잔혹하게 그려지기에 더욱 두려운 영화입니다. 무심결에 누군가에게 선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신뢰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게 된다면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어떤 기준을 통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겠죠. 한 순간도 쉬지 않은 채 미친 듯 몰아치는 영화라서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특히나 감독이 관객들을 낚기 위해서 각각의 인물과 닮은 몽타주를 만들기에 관객들은 더욱 더 몰입해서 영화 속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과연 관객 스스로의 믿음은 옳은 것인지. 그리고 관객이 누군가를 의심하게 하는 순간 바로 비틀고 관객의 생각을 완벽하게 틀어버립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 그리고 신뢰하는 것.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영화를 보면서 제대로 감정을 소모하면서 푹 젖어들 수 있는 영화입니다. 머리를 쓰면서 모든 감정을 쏟아버리기 바라는 관객을 위해서 [분노]보다 더욱 완벽한 영화는 없을 거 같습니다. 다시 보더라도 감독의 장난에 걸려버릴 수밖에 없는 영화. 관객들을 스스로 불신하게 만드는 영화 [분노]입니다.
로맨스 소설 쓰는 남자 권정순재 ksjdoway@hanmail.net
Pungdo: 풍도 http://blog.daum.net/pungdo/
맛있는 부분
하나 -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야노 고’가 죽음 이후의 장면을 말할 때
둘 – 살인범의 살인의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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