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장. 지우의 고민 2
“어.”
지우가 선반 문을 여는 순간 그대로 문이 떨어졌다. 다행히 뒤로 물러나서 다치지 않았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식당이 이렇게 오래된 거구나.”
지우개 식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이 이 오랜 시간 이 자리에서 그냥 버티고 있는 거였다.
“낡았네.”
그제야 가게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손때가 묻은 테이블들. 그리고 의자들. 모든 것이 다 시간이 묻어있었다.
“지우개.”
지우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너도 이제 힘들지?”
지우개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벌써 노인이 되어버렸을 나이니까. 지우는 쪼그려서 지우개의 눈을 쳐다봤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만 뒀으면 좋겠어? 그러면 너랑 시간은 더 보낼 수 있겠다.”
지우개가 경쾌하게 한 번 짖었다. 지우는 지우개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개 식당.”
이곳의 무게는 너무나도 커다랗게 느껴졌다.
“이거 원종이 아저씨가 아저씨 먹으래요.”
준재는 케이크를 식탁에 올려놨다. 태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먹어도 되는 거야?”
“아마도 그럴 걸요?”
“아마도라니.”
태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상황에서도 준재는 사람이 웃을 수 있게 하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었다.
“너 정말 그럴래?”
“뭐가요?”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요.”
준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누구도 아저씨에게 잘못했다고 하지 않아요. 그건 아저씨가 결정을 한 거고. 아저씨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그렇지.”
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에게 뭐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그저 장지우 씨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바라. 그런데 이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야? 이상하잖아.”
“저도 사장님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원해요. 하지만 그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아요.”
준재의 말에 태식은 아차 싶었다.
“그럼 저는 씻을게요.”
“어? 응.”
태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준재가 욕실로 들어가고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내가 강요를 한 건가?”
태식은 어색하게 웃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장지우 씨.”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아침에 만난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니까.”
“미안합니다.”
“네?”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갑작스러운 태식의 사과에 지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준재를 쳐다보니 준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태식 씨. 그러니까 나는.”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장지우 씨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했다는 거.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그러려고 한 것일지도 몰라요. 장지우 씨가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태식이 이렇게 말을 해주니 또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준재에게 고마웠다. 아무래도 전날 준재가 태식에게 또 이런 식의 말을 한 것일 거였다.
“알았어요.”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고맙습니다.”
지우는 손님을 배웅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두 시. 준비한 생선이 모두 소진되고 손님들도 줄어든 상황이었다.
“생선 사올게.”
“같이 가요.”
“어? 네가 왜?”
“그냥 좀 걷고 싶어서요.”
준재의 말에 지우는 입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요.”
“왜 따라오는 거야?”
“가면 안 돼요?”
“아니 그건 아닌데.”
준재가 이렇게 묻자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지 말란 건 아니었다. 아니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혼자서 가지고 오기에는 생선이 양이 조금 많은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죠.”
“이상해.”
“뭐가요?”
“나 위로하지 않아도 돼.”
“걸렸네.”
“그럼.”
준재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지우는 입을 살짝 내밀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동정을 받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사장님이 편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요. 사장님이 울적한 기분이면 괜히 내가 마음이 불편하니까. 내가 편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불편하지 않으면 곁에 있고 싶다는 말이에요.”
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웠다.
“그래.”
다른 말은 더 할 필요가 없었다.
“어? 너 장지우 아니야?”
지우는 식당으로 돌아오다 고개를 들었다. 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 하나가 자신을 보고 알은 체를 했다.
“오랜만이다.”
“그러게. 식당 한다며?”
“어? 어.”
그리 길지 않게 다닌 학교였는데도 불구하고 지우가 뭘 하고 있는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 번 갔어야 하는 건데.”
“아니 뭘. 너도 바쁠 텐데.”
“그러게. 그럼 다음에 꼭 식당으로 한 번 갈게.”
“응. 안녕.”
지우는 멀어지는 친구를 쳐다봤다. 아니 친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대학교 친구인 모양이에요?”
“어? 응. 그러게. 어떻게 나를 다 알아본다. 내가 학교 다닐 때랑 모습이 많이 다른데. 그래도 부럽기는 하네.”
지우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먼저 걸음을 옮기자 준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종종 걸음으로 지우의 뒤를 쫓았다.
“죄송합니다. 지금 카레가 다 떨어져서요. 혹시 불고기 덮밥은 어떠세요? 저희가 불고기 진짜 잘 하거든요.”
“그럼 그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지우의 모습을 본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던 준재가 그를 노려봤다.
“아저씨 일 안 해요?”
“하고 있어.”
“하기는.”
“뭐가?”
“사장님만 보고 일은 안 하잖아요. 아무리 사장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아닌 겁니다. 그러면 안 돼요.”
준재가 이 말을 하고 다른 테이블을 정리하러 가자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그러고 있었나 싶었다.
“내가 정말로 장지우 씨를 좋아하는 모양이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던 거였다. 그런데 머리가 멍했다. 자신은 정말로 장지우 씨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거네.”
태식은 씩 웃으면서 손을 든 손님에게 향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홉 시. 평소보다 약간 늦은 정리였다. 그래도 오늘은 남은 재료가 더 없었다. 지우는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오늘은 장사가 좀 된 거 같죠.”
“그러게요. 우리 먹을 것도 없어.”
“그럼 치킨 시키자.”
“에이. 뭘 시킵니까?”
지우의 말에 태식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만들면 되는 거죠.”
“아유. 그러지 마요. 같은 작은 가게들끼리 막 시켜먹고 그래야 돈이 돌고 그러는 거지. 그래야 나중에 거기에서도 우리 집에 밥을 먹을 거 아니에요. 안 그래요? 준재야 형진이 오라고 그래. 원종이도 퇴근하고 온대.”
“알겠습니다.”
죽이 잘 맞는 준재와 지우를 보며 태식은 가만히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이제 장지우 씨는 조금 더 자신이 붙은 거 같네요.”
“당연하죠.”
지우는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지우개 식당의 주인 장지우니까요.”
“그러게요. 지우개 식당의 주인 장지우 씨네요.”
지우는 한 번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태식은 그런 지우의 뒷모습을 향해서 미소를 지었고 준재는 그런 태식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오. 치킨.”
“고생했어. 친구.”
“그럼.”
지우가 어깨를 두드리자 원종은 입을 쭉 내밀고 울상을 지었다. 지우는 그런 원종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웬 치킨이에요?”
“오늘 장사 엄청 잘 됐거든.”
“그래?”
“어. 재고가 없어.”
“대박.”
형진은 엄지를 들었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으로 인해서 모이게 된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정말 바빴어.”
“이제 사람을 써야겠네.”
“뭐.”
원종의 제안에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식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아요?”
“장지우 씨가 정해야죠.”
“왜요?”
“장지우 씨의 식당이니까요.”
“음.”
지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준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지우의 눈을 응시했다.
“사장님.”
“나 이제 식당 그만 두려고요.”
“뭐?”
“이제 그만 둔다고.”
원종의 놀란 표정에 지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그래야 하는 거 진작 알고 있었어. 그 동안 겁이 나서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그런데 이제 나도 내가 해야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더라고. 그래서 하려고. 이제 다시 내 삶을 찾으려고.”
지우는 이렇게 말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콜라를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우는 지우개에게 닭고기 살을 발라서 건넸다. 지우개와 지우만 놀라지 않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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