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장. 지우의 선택
“너 왜 그런 거야?”
“뭐가?”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원종의 물음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름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냥 생각을 좀 해보고 있었어. 내가 과연 지우개 식당을 그만 두면 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더라고.”
“그런데 그만 둬?”
“그래서 그만 둬.”
“뭐? 그게 무슨.”
“언젠가 내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은 하나 둔 채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 맞는 거고.”
지우의 말에 원종은 입을 쭉 내밀었다.
“장돼지.”
“알아.”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원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네가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야.”
“내가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 너를 걱정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그만 두는 거 이상해.”
“진작 생각했어.”
“무슨 생각?”
“내가 여기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어울리지 않아?”
“응. 많이.”
지우는 가만히 테이블을 어루만졌다. 애초에 이 공간을 만든 것은 유정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이곳의 생명을 억지로 잇고 있었던 거야. 엄마의 식당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도 이제 네가 이곳의 사장이잖아. 지우개 식당. 어머니도 너 때문에 이름을 지으신 거잖아.”
“나를 생각하셨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생 이곳에만 매달리기 바라시지는 않았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
원종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속으로 삼켰다. 감히 자신이 어떤 의견도 제시할 수 없는 거니까.
“그래 내가 뭐라고 하겠어? 장지우. 네가 결정하는 거지. 나는 장돼지 네가 하는 결정을 그냥 응원하면 되는 거고.”
“너도 한 가지만 해.”
“뭐가?”
“이름을 부를 거면 이름을 부르고, 별명을 부를 거면 별명을 부르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러게.”
원종은 쿡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우의 눈을 향해서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어떤 것이건 선택을 내렸다니 축하해.”
“고마워.”
지우는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알고 있었어?”
“뭐가?”
“사장님.”
형진의 물음에 준재는 미간을 모았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도 너랑 사장님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잖아.”
“아니.”
준재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둘이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사장님께서 오롯이 결정하신 문제야. 나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고. 그리고 이게 당연한 거지. 내가 사장님에게 뭐라고. 사장님이 내리는 결정을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 건데.”
“아저씨는 알까?”
“모르지.”
형진의 물에 준재는 어색하게 웃었다. 태식이 먼저 알고 있었다고 하면 괜히 서운할 것 같았다.
“아저씨라면 알 것 같아.”
“그게 뭐가 중요해.”
“그래도 궁금하잖아. 너는 안 궁금해?”
“응. 안 궁금해.”
준재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이자 형진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이 스스로 결정을 하신 걸 거야.”
“그런데 뭘 하려고 하시겠지?”
“모르지.”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어?”
“너는 뭘 할 건지 정했어?”
“나?”
형진의 물음에 준재는 머리가 서서히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지우가 식당을 그만 두면 자신도 뭔가를 생각해야 하는 거였다.
“당연한 거지. 너 사장님을 돕는다고 거기에 있는 거지만. 사장님이 이제 식당을 하지 않는 거잖아.”
“그러네.”
“그러네. 이게 다야?”
“그렇지.”
형진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준재. 너 내가 말했지? 내가 너 뭔가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너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고.”
“애초에 거기에서 나는 없었어. 그곳에서 나를 도와준 것도 사장님이고. 당분간은 사장님만 따라도 돼.”
“모르겠다.”
“그러게.”
형진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쭉 내밀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알고 계셨어요?”
“아니.”
준재의 물음에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태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주스를 가리켰다. 준재는 미간을 모으고 건강 주스를 마신 후 인상을 찌푸리고 컵을 씻어서 선반에 올려놓은 후 돌아섰다.
“저 언제까지 나가면 돼요?”
“뭐?”
“여기에서 나가야죠.”
“왜?”
“그렇잖아요.”
준재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하자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모르겠다.”
“아저씨는 제가 불편하지 않으세요?”
“글쎄다.”
태식은 입을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이젠 그럴 것도 없지.”
“그래요?”
“그럼. 이제 너랑 나랑 형진이랑 산 시간이 지났잖아. 그리고 너희가 별로 사람을 귀찮게 하는 타입도 아니고.”
“저는 이제 식당을 그만 둘 텐데요?”
“왜?”
“네?”
태식의 여유로운 반응에 오히려 놀란 것은 준재였다. 그러니까 지우가 아니라면 식당을 그만 둬야 하는 거였다.
“사장님이 그만 하시니까.”
“너는 하고 싶은 게 있어?”
“그건.”
준재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스스로 뭘 하고 싶은 건지. 뭘 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럼 그냥 있어.”
“아저씨.”
“어차피 장지우 씨는 그 식당을 나에게 넘기기로 했으니까. 네가 필요해. 처음부터 모든 것이 다 바뀐다면 고객들도 이상하게 생각을 할 테니까. 네가 불편하게 생각을 한다면 그만 둬도 괜찮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네가 그런 생각 없이 그만 두려고 하는 거면 그러지 마.”
준재는 침을 삼켰다. 태식의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가는 그였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했다.
“그건.”
“오케이.”
태식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답하지 않아도 돼.”
“고맙습니다.”
“내가 정준재에게 고맙다는 말을 다 듣네.”
준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양치를 하기 위해서 그대로 욕실로 달아났다.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수익 같은 건.”
“됐어요.”
태식의 말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알아서 해주세요.”
“이거 너무 쿨한데?”
“어차피 그런 것을 생각하고 그만 두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거라면 그냥 주태식 씨에게 이 식당을 맡기지 않고 제가 하죠. 그게 훨씬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아니에요?”
“맞죠.”
태식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계속 하는 것처럼 돈을 버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였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제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고요.”
“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니에요?”
“아닌 걸요.”
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고마워요.”
“뭘요?”
“그래도 주태식 씨 덕분에 뭔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으니까요.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죠.”
“진심입니까?”
“네. 진심이에요.”
지우가 힘을 주어 말하며 웃자 태식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럼 내 부탁을 들어줘요.”
“무슨 부탁이요?”
“내 고백을 다시 생각해주는 거.”
“네?”
지우의 눈이 순간 커다래지더니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주태식 씨도 알잖아요.”
“모릅니다.”
태식은 힘을 주어 대답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진지한 눈으로 지우를 응시하며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장지우 씨. 나는 장지우 씨를 좋아합니다.”
“그런 말을 할 거라면.”
“왜 피하는 겁니까?”
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태식은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왜 달아나기만 하는 거냐고요?”
“말이 안 되잖아요.”
지우는 돌아보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뭐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거.”
“장지우 씨.”
“그리고 나에게 닿는 것도 싫어했잖아요. 당신이 처음에 그랬던 거.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건.”
태식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신은 지우를 피했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이유였다.
“학교 다닐 때도 애들이 내 몸에 닿지 않았거든요. 돼지 바이러스 옮는다고.”
“그런 거 아닙니다.”
“알아요.”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아니었다. 태식은 정말 그런 게 아닐 거였다.
“그런데 저는 주태식 씨를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나요.”
“그건.”
“그러니까 싫어요.”
지우는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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