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도혁과 태욱 3
“위성사진의 위치를 속이라고요?”
“그래.”
청와대 참모는 당황스러웠다. 지금 총리가 자신에게 시키는 일이 무슨 일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구하지 말라는 거야.”
“네?”
“몇 사람이 안 될 거야. 그런데 그 사람들을 구하려고 그 많은 돈을 쓴다고? 말이 안 되는 거지.”
“하지만.”
참모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만 영부인도 그저 덤덤하게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건 대통령이 직접 내린 명령입니다. 제가 함부로 거절을 하거나 그럴 수 없는 부분의 문제입니다.”
“내가 있잖아요.”
“네?”
“내가 그 사람 아내에요.”
영부인은 싱긋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들 내 말처럼 하고 싶을 거예요.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일인데. 그걸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지.”
“그렇죠.”
총리는 곧바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 사람이 미쳐서 그래요. 꼭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던 이에게 그리 빠지다니 말이에요.”
“그러믄요.”
“그러니까 엎어줘야죠.”
영부인은 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얼마 되지도 않을 겁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그 정도 사람들을 희생할 수 있지요.”
“그러믄요.”
“일부러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난 사고를 그냥 아주 약간만 이용을 하자는 겁니다.”
영부인은 엄지와 검지를 아주 약간 벌려 보이며 씩 웃었다.
“그 사람도 곧 깨닫게 될 거예요. 나를 소깅려고 한 댓가가 과연 무엇인지 말이에요. 그러니 다들 힘을 써주세요. 그 SOS라는 문구가 적힌 섬이 아니라 다른 섬으로 가게 하라고 말이에요. 그게 답이에요. 오직 그것만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몰아낼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닐 때. 오직 그때만이 이 당이 살고 다들 뱃지 걱정 안 하셔도 되는 거 아니겠어요?”
영부인의 미소는 서늘했다. 방의 모든 사람들은 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왜 돕는 거죠?”
“네?”
지아의 물음에 태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우리를 도울 이유 없잖아요. 지금 보니까 우리를 돕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뭐.”
태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다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이었다.
“혼자만 이런 거 같은데.”
“맞죠.”
“왜요?”
“그냥요.”
“네?”
“그냥 이러고 싶었어요.”
태욱은 어깨를 으쓱하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지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냥 이쪽이 맞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 그렇게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니 그러지는 말고요.”
“아. 네.”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욱은 지아의 눈을 좇아 생선을 다듬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잘 했죠?”
“네. 잘 했네요.”
“다행이다.”
“여기는 그럼 어떻게 관리해요?”
“그냥 매일 잡죠.”
“네?”
지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바다의 상태는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들은 저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믿어도 돼요.”
“아니.”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들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말을 해주지 않는 거구나 생각을 하는데 이렇게 바로 말이 나올 줄이야.
“미안해요.”
“아니요.”
지아의 사과에 태욱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그쪽이 모든 것을 다 말을 재줬다고 믿지 않는 걸요? 그런 건 피차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그렇죠.”
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 말을 하는 멍청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였다.
“우리도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서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말자고요. 우리는 그냥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사람이에요. 이 정도 믿음은 보여도 돼요. 뭐 그쪽에서 비행기를 떨어뜨린 테러리스트가 있는 게 아니라면.”
“설마요.”
지아의 과장된 반응에 태욱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아는 그를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하지만 형.”
“안 돼.”
재율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지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왜요?”
“네가 누구인지 알면 저 사람들이 아. 그러니까 귀하게 대접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거 같아?”
“나를 귀하게 대접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내가 누구인지 알면 우리가 뭔가 한 장의 카드를 더 쥐게 되는 거라고. 그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요. 우리를 위해서도 그게 나은 거고요.”
“아니야.”
지웅은 다시 한 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재율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오히려 카드를 버리는 거였다.
“너 이런 애 아니잖아.”
“햐지만.”
“너를 숨겨.”
지웅은 재율에게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너 원래 그런 거 잘 하니까.”
그리고 재율의 배를 한 번 문지르고 멀어졌다. 재율은 침을 삼켰다.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너무 친한 거 아니에요?”
“뭐가요?”
“아까.”
“아까?”
윤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된 지아가 그를 노려보며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유치해.”
지아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윤태가 어버버하는 소리를 내며 그녀를 쫓았다.
“왜요?”
“아니 무슨 애도 아니고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이 섬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협동해야 하는 거 몰라요?”
“그건 그렇지만.”
“그건 그렇지만?”
지아는 다시 돌아서서 윤태의 가슴을 검지로 쿡 찔렀다.
“이윤태 씨. 제발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지 말아줄래요? 내가 좋아하는 이윤태는 이런 거 아니니까.”
“어?”
윤태의 얼굴이 곧바로 밝아졌다.
“그거 고백이죠?”
“아니요.”
“그거 고백인데.”
“아니에요.”
“그거 고백 맞는데.”
“뭐래? 이미 사귀는 사이에.”
“그래도 고백이죠.”
“아니라고요.”
지아는 그런 윤태를 피해서 걸음을 빨리 하고 윤태도 지아를 쫓아가며 계속 장난을 걸었다. 지아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새로운 섬에 와서도 다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여간.”
“웃었다..”
“마음에 안 들어.”
“에?”
지아는 윤태를 두고 돌아섰다. 윤태는 다시 그런 지아를 쫓았다.
“좋아보여요.”
“그러게요.”
종이 뭉치를 정리하며 윤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 누나가 저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네?”
“학교 다닐 때 엄했거든요.”
“아.”
윤한의 말에 세연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 다른 게 있는 사이였다.
“부러워요.”
“뭐가요?”
“나는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냥 다 처음 만난 거였거든요. 그런데 윤한 씨는 이미 지아 언니를 아는 사이였고. 지아 언니랑 이윤태 씨도 뭔가 미리 아는 사이고. 참 뭔가 신기하고 그래요.”
“여기에서 더 잘 알면 되는 거죠.”
윤한은 종이를 내려두고 세연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이자 세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장난스럽게 입을 맞췄다.
“꽤 친해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도혁의 물음에 지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생존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먹을 게 많은 모양입니다.”
“네?”
도혁의 물음에 지웅은 미간을 모았다. 지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곧바로 파악이 되었다.
“여기도 많지 않습니까?”
“원래는 많지 않았어요.”
도혁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이랬더라면 전혀 걱정이 되지 않을 거였다.
“우리가 섬에 도착했을 때 너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서로 원수가 되고 외면을 했죠.”
“그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되었어요. 저랑 도혁이. 그리고 저희 두 사람의 다른 친구들. 이렇게가 한 그룹. 그리고 다른 그룹들. 모두 다 각자 움직이고 있어요. 각각 움직이니 뭔가 더 복잡하죠.”
“그렇군요.”
따로 더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데 그라고 뭘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부럽습니다.”
“뭐 그럴 것까지야.”
“나도 데리고 가줘요.”
“네?”
“떠날 거잖아요.”
지웅은 미간을 모으며 도혁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일단 당신네들이 사는 섬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데리고 가줘요.”
도혁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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