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영화와 수다

[영화와 수다] 어느 날, 이토록 착한 영화라니.

권정선재 2017. 4. 22. 23:34

[영화와 수다] 어느 날, 이토록 착한 영화라니.

 

이 봄에 딱 맞는 잔잔하면서도 삶에 위로가 되는 영화가 있다면 [어느 날]이 아닐까 싶다. 이름을 불러서 안 될 그 사람의 문제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게 되면서 봄날에 만나게 된 [어느 날]은 애초에 봄에 만나게 될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봄과 정말 잘 어울린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남자와, 모든 것을 다 잃은 여자의 이야기. 이 두 사람이 만나서 로맨스가 아닌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보통 한국 영화에서 상처를 입은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둘은 사랑을 해야만 했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며 기존 한국 영화의 문법을 완벽히 벗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은 두 사람을 커플로 만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천우희가 맡은 캐릭터가 김남길이 맡은 캐릭터를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두 사람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물론 일부 말도 안 되는 영화들이 이런 호칭을 설정을 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로맨스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철저하게 이 문법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로맨스의 문법에서 벗어난 [어느 날]은 완벽하게 치유의 길로 향한다.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의 망가진 영혼이 만나서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를 묵묵히 그려낸다.

 

[어느 날]은 사실 재미만 본다면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군데군데 웃으라고 하는 키워드를 놓기는 했지만 이것이 그다지 유머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크게 이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네 삶이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삶의 무거운 부분에 곳곳에 놓인 작은 웃음들. 그냥 그것들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듯 말을 한다. 이렇게 별 것 아니라고 말을 하는 시선이 우리를 웃게 만들고 영화에 숨을 쉴 구멍을 만들어놓는다. 아무래도 아내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편하게 다가설 부분이 없는데 그의 허술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머 밖에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가끔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정신을 놓은 사내의 앞에 나타난 여자의 영혼.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그리고 서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천우희캐릭터가 왜 그런 사고를 당해야 했는지만을 들려주면서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 순간들이 꽤나 작위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불편하게만 그려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가 정말 좋은 이유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두 사람이 나란히 병원 옥상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은 [어느 날]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다만 [어느 날] 역시 한국 영화이니 만큼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신파로 흐른다는 거다. 그런데 이것을 전혀 불편하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있는데 바로 정선경의 연기다. ‘천우희와 관련이 되어 있는 신파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그 동안 정선경배우가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일 줄이야. ‘정선경배우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어느 날]은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름을 부르고 싶지도 않은 그 사람이 나오는 영화라는 점은 [어느 날]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는 하지만. [어느 날]은 삶을 포기하고 싶은 남자와 삶을 포기할 위기에 놓인 여자의 평범한 일상에 관한 영화다. 그래서 화려하거나 새로운 것은 없지만 그 특유의 잔잔함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몇몇 장면의 연결에서는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 것까지 다 넘길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는 안정적이니까 넘어갈 수 있지 않나 싶다. 다만 후반부의 이야기가 다소 묵직하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덜 친절하다는 것은 [어느 날]이 가지고 있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마음을 위로하는 잔잔한 영화가 필요하다면 [어느 날]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닐까.

 

로맨스 소설 쓰는 남자 권정순재 ksjdo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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