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만남 1
“무슨 이야기를 해?”
“아니야.”
병태가 나타나자 도혁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 것도.”
“너 뭐야?”
“뭐가?”
갑자기 병태가 날을 세우자 도혁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 문도혁. 너는 나를 보면 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내가 무슨 말도 이해를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 같아.”
“뭐?”
도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이 상황에서 병태랑 싸울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그러지 마.”
“문도혁. 너 착각하지 마. 다들 귀찮아서 너를 그냥 둔 거야. 네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사람 없어.”
“뭐?”
태욱은 씩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도혁은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뻗을 수도. 위로를 구할 수도 없었다.
“미안해요.”
“아니요.”
직접 사과를 하러 온 지아를 보며 기쁨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오히려 지아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직접 그 사람 무덤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기쁨 씨.”
우리는 기쁨의 얼굴을 꼭 보다가 안아주었다.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마워요.”
지아는 기쁨의 등을 가만히 두드렸다.
“좋아요.”
봄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니까. 우리도 그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만나는 것도 반대입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생각?”
도혁의 말에 태욱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쁜 거?”
“정태욱.”
“아니. 내가 보기에 그 사람들은 안 솔직하지도 않고 말이야. 아주 선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네가 나를 안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조금 더 현명하게 생각하라고.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임길석 씨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어. 그 사람들은 뭔가를 더 많이 숨기고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아니야?”
“그렇겠지.”
태욱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식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옳다는 건 아니잖아.”
“뭐?”
“우리도 숨긴 거잖아.”
“뭘?”
“석구. 그리고 이 섬에서 나갈 방법.”
태욱의 발언에 대해서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흘렀다. 도혁은 그대로 태욱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았다.
“뭐라는 거야?”
“바다가 얕아지는 시간이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고. 이 섬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속인 건 아니야. 그 사람들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고.”
“글쎄다.”
태욱은 도혁의 손을 뿌리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더라면 배를 타고 오지 않았을 거야.”
“정태욱.”
“그냥 사실을 말을 하는 거야.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하지 말고. 너도 나 죽일 거 같다. 야.”
태욱은 도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그를 지나갔다. 그리고 손뼉을 치고 섬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럼 손! 만나자는 사람들?”
태욱이 손을 들고 봄도 손을 들고, 진영까지 손을 들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 손을 들었다. 도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찬성입니까?”
“너 빼고 찬성이지.”
도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정말로요?”
“네.”
지아의 표정이 밝아지자 태욱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윤태는 그를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뭡니까?”
“뭐가요?”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뭐라고요?”
태욱의 대답에 윤태의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뭐가 신기합니까?”
“그런데 너무 그렇게 날을 세우는 건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아니 한국에 가서 다시 배우도 할 사람이.”
“아니요.”
윤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서 지아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내 입을 막을 생각을 하지 마요. 도대체 왜 그런 불쾌한 눈빛을 보내는 겁니까?”
“나 참.”
“윤태 씨.”
“아니요.”
지아가 자신의 옷끝을 잡아끌자 윤태는 입을 내밀었다.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일단 하나를 넘어선 거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미안합니다.”
“네?”
“지난번에.”
“아.”
태욱이 손을 내밀자 지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가 그 손을 잡지 않자 태욱이 손을 뒤로 거두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라도 흔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들의 사정이 있을 거였다.
“나중에 모두 말을 해드리죠.”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오늘 저녁 어떻습니까?”
“좋아요.”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이라도 이 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면 그걸로 다행이었다.
“일단 우리들이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니까요. 다 같이 생존한 사람들이니까요. 만나야죠.”
“아 그리고.”
태욱은 아랫입술을 물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는데.”
“그걸 왜 거기에서 물어?”
“뭐가?”
“정태욱.”
도혁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무리 석구가 위험한 존재라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석구를 죽이라고 하면? 너는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도대체 너는 생각이라는 걸 하는 거야?”
“석구를 죽이면 되는 거지.”
“뭐?”
태욱이 간단한 말에 도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 멍하니 태욱을 노려봤다.
“너 뭐라는 거야?”
“뭐가?”
“그게 쉬워?”
“응.”
“정태욱.”
“너야 말로 너무 복잡하게 생각을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 살 수 있어.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도대체 왜?”
“그만.”
태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욱의 여유로운 태도에 도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가 복잡했다.
“너 이상해.”
“이 상황에 정상인 사람이 있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 상황에 정상인 사람이 하나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이건 아닌 거지.”
“너야 말로 제대로 생각을 해. 여기에서 너처럼 생각하다가 병신 되는 거. 그거 어려운 거 아니야.”
태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석구 어떻게 할 건데? 너는 제어할 수 있어?”
“그거야.”
“또 병태에게 맡기려고?”
도혁은 침을 삼켰다. 또 병태에게 맡기는 것.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병태는 뭐 네 말을 무조건 듣는 사람이야? 너야 말로 지금 우스운 거야. 너야 말로 지금 병태를 어떻게 취급을 하는 거야? 너야 말로 병태를 바보로 보지 않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너처럼 친구를 죽이자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않아. 그건 위험한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뭐가?”
“네가 책임을 질 거야?”
“그건.”
태욱이 몰아세우자 도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석구를 책임질 수 없었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석구는 우리 모두가.”
“아니.”
태욱은 단호히 고개를 저어싿. 공연히 석구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 싫어.”
“태욱아.”
“나는 더 이상 석구로 인해서 내가 멍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석구 문제. 그 사람들에게 넘길 거야.”
“미친.”
도혁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가 가진 카드로는 태욱을 설득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가 다가 아니잖아요!”
항공사 대표가 광화문에 오자 지아 엄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에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지금이라도 당장 데리고 와야 하는 거잖아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없는 건 아니죠.”
“없을 겁니다.”
바로 옆에 변호사라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죽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다시는 시그널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아 엄마는 그대로 변호사의 멱살을 잡았고 사람들이 지아 엄마를 막았다. 지아 엄마는 여전히 악다구니를 썼다.
“거기 가라고요. 거기에 가면 내 딸이 살아있어. 아직도 이 사람들. 우리들 가족이 살아있다고요!”
하지만 광화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롯이 그들은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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