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만남 2
“여론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대통령은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빠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이미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고. 이제 사람들을 찾으러 갈 건데 왜 악화되는 겁니까? 네?”
“더 이상 시그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으니 그렇게 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시그널을 받지 못하니 오히려 더 빠르게 가야 하는 거였다.
“지금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거. 그거 아무도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지금 가야 하는 거 모르는 겁니까?”
“다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국회의 비준이 피룡한 거라서.”
“아니요.”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음성은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그냥 하죠.”
“네?”
“그냥 합시다.”
“하지만.”
“무조건 합니다.”
대통령의 말에 비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그건 아무리 대통령 님이라고 하시더라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규정을 지키면.”
“아니요.”
대통령은 더욱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규정을 지키다가는 산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 될 판국이었다.
“그 규정이라는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규정이라는 망할 것.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밀고 갈 겁니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렇게 보고만 받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였다.
“내가 직접 나서죠.”
“네?”
대통령의 말에 비서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다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여기에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까요.”
대통령은 침을 꿀꺽 쌈켰다.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먼저 움직일 겁니다. 이런 내 행동이 멍청하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정치적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 정치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비서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대통령은 숨을 크게 쉬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었다.
“눈이다.”
“그러게요.”
서준은 손을 내밀었다. 진아는 눈이 손에 닿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눈이라니.
“이곳이 겨울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눈이 내리네요. 이곳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이야기에요.”
“그럼요. 사람이 사는 곳이죠. 그러니까 우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알아요.”
진아가 눈을 흘기자 서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진아는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좋다.”
“추워요.”
“조금만요.”
“나 참.”
서준은 혀를 차며 진아의 곁에 앉았다.
“뭐 하는 거예요?”
“혼자 둘 수는 없죠.”
“뭐야? 이건?”
“신사도죠.”
“신사도요?”
진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웠다. 이런 신사도라는 것. 그래서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나는 한 군데 있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승무원을 했는데. 그래서 한 자리에 있게 되었네요.”
“그래도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이잖아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 아니가요?”
“그런가?”
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그 어디에나 있다는 것. 서준의 말은 말장난 같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냥 이렇게 생각을 하면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신기하죠?”
“뭐가요?”
“내가 서준 씨랑 친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친해진 거에요?”
“그럼 아니에요?”
“맞아요.”
서준이 곧바로 바보처럼 웃자 진아는 다시 눈을 흘기더니 그의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서준은 울상을 지으며 팔을 문질렀다.
“아파요.”
“엄살은.”
“들켰네.”
진아는 이를 드러내고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목을 가다듬으며 먼 바다를 쳐다봤다. 눈이 바다에 녹아내렸다.
“소금 같다.”
“그러게요.”
“그래서 바다가 짠가?”
“그런가?”
진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중요했다.
“무섭지 않아요?”
“뭐가요?”
“돌아가지 못할까?”
“돌아갈 거예요.”
“어떻게 확신해요?”
“죽을 거라면 진작 죽었을 거거든요.”
“어우 뭐야?”
진아는 가볍게 몸을 떨며 서준의 팔을 다시 때렸다. 서준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우리는 비행기가 떨어져도 죽지 않았고. 지금 두 달이 다 되어가도 사라있어요.”
“그러네요.”
“한국으로는 돌아가는 게 아주 빠르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미 기적이 두 번이나 일어났으니까. 몇 번의 기적이 아주 작게라도 더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거 이기적인 거 아닌가?”
“그런가?”
서준의 반응에 진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이렇게 웃긴 사람이에요?”
“재미있는 사람이죠.”
“신기하네요.”
진아는 모래에 손가락을 쿡 찌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요.”
“뭐가요?”
“이 섬이 끝일까?”
“낭만이죠.”
“낭만이요?”
“그럼요.”
서준의 말을 듣고 진아는 다시 섬을 생각했다. 낭만. 누군가는 이런 섬에 대해서 생각을 할 거였다.
“그러네.”
“모두 이런 시간을 보내기 바라는 거잖아요. 진아 씨도 비행 때문에 이런 시간 없는 거 아니에요?”
“없죠.”
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늘 호텔에만 있던 그녀였다.
“그러네.”
“좋은 거죠?”
“네.”
진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눈송이 하나가 그녀의 뺨에 닿더니 그대로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다.
“신기해.”
“마법이네.”
“나 엘사에요?”
“그러게.”
진아는 쿡쿡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들을 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너무 좋았다.
“고마워요.”
“또.”
“진짜에요.”
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아니었더라면 이 섬에서 머물 수도. 그리고 여유를 찾을 수도 없을 거였다. 그리고 또 누군가 원망할 사람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을 거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미우니까.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나 밉다고. 그렇게 말을 하겠죠?”
“그렇죠.”
“잔인해?”
“솔직한 거죠.”
“나빠.”
진아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준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요.”
그리고 서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서준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러니까 좋네.”
“앞으로 더 친해져요.”
“알았어요.”
서준의 대답에 진아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것. 그래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 무조건 싫고 귀찮고 불편한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막상 겪으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내가요?”
“여기 그럼 또 누가 있어요?”
“없죠.”
진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고 먼 바다를 응시했다. 이제 조금은 파도가 잔잔해진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진아도 서준의 말을 따라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서준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 말을 왜 받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윤태의 물음에 지아는 입을 살짝 내밀고 미간을 모았다.
“어차피 그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하는 건 다 알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럴 이유 없는 거 아니에요? 우리끼리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그거 하나 달라질 거 없어요. 그런 거 하나 변하지 않는다고요. 우리는 일단 울이ㅢ 입장에 대해서 말을 해야만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윤태는 한숨을 토해냈다. 지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도 했다. 그들이 뭔가를 하고 싶어도. 그것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고. 누구 하나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너무나도 간단히. 너무나도 자세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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