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장. 비밀 2
“지금 가지 않으면 이 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사무장님도 이미 아시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 여자 말을 믿을 수도 없어. 이 섬의 사람들이 어떤 건지도 모르잖아.”
“그건.”
지웅의 지적에 나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속상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 이 섬의 사람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이 섬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것을 하나도 모른 채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도 일단은 나갈 준비를 해야죠. 정말로 한 달이나 더 이 말도 안 되는 섬에 있을 것은 아니죠?”
나라는 가볍게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더 많은 식량을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요. 이곳에서는 물고기만 먹고 있어요.”
“조용히 해.”
진아는 미간을 모으며 나라를 응시했다.
“왜요?”
“여기는 들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도대체 누가 들어요?”
나라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가 원래 있던 섬에 사람이 두 사람이나 더 있고. 먹을 것이 많다고 해도. 여기 우리만 있다고요.”
“그래도.”
“조용히 해.”
진아는 다시 한 번 나라를 보고 미간을 모았다.
“이 섬의 사람들 아직 신용할 수 없어.”
“그렇죠.”
“그리고 언제 나타날지도 몰라.”
“하지만.”
“나라 씨.”
지웅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자 나라는 움찔했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무조건 조심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잖아요.”
“알겠습니다.”
“더 조심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습니까?”
순간 태욱이 텐트로 들어오자 세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지웅은 곧바로 경계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냥 사무장님을 만나려고요.”
“그러시죠.”
지웅은 나라와 진아를 보고 눈짓을 했다. 진아가 빠르게 나라를 데리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무슨 말을 하셨을까?”
“들은 겁니까?”
“뭘요?”
태욱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하자 지웅은 입을 다물었다. 공연히 더 이상 빌미를 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게 있어서요.”
태욱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죄송해요.”
“아니야.”
나라의 사과에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답답한 일이었지만 나라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이미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온 것인데 우리가 무슨 방어를 할 수가 있겠어?”
“하지만.”
“사무장님이 잘 하실 거야.”
진아는 나라의 손을 꼭 잡았다.
“사무장님을 믿으면 되는 거야.”
“무슨 말이죠?”
“뭐가요?”
“뭐 대충 들어서요.”
태욱은 이를 드러내고 서늘하게 웃었다.
“뭐 생존자라거나.”
“잘못 들은 겁니다.”
“잘못 들었다.”
태욱의 목소리는 기괴하게 울려퍼졌다. 지웅은 소름이 끼쳤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당신들이 뭘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우리에게 같이 생존하자고 하면서 말이야.”
“우리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숨기고 있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 겁니까?”
“무슨 상관이냐는 그 말. 뭐. 솔직히 말을 하면 당신들이 뭘 숨기고 있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태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저 재미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 그것 하나가 지금 거슬리는 이유일 따름이었다.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그 정도인 거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태욱의 차가운 눈을 지웅은 덤덤히 응시했다. 여기에서 뭐 하나 빈틈을 보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신기하네요.”
태욱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당신들은 그렇게 행동을 하는 걸까?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잘 뭉치는 것일까. 너무나도 신기해요. 우리들은 당신들과 전혀 다른 상황이니 말입니다.”
“신뢰가 없는 거겠죠.”
“신뢰.”
태욱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았다.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신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을 거짓말쟁이에게 들으니 기분이 나빠요.”
“뭐라고요?”
“당신의 거짓말 뻔하잖아요.”
태욱은 씩 웃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생존자가 있다. 그리고 그 생존자를 그 섬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웅은 침을 삼켰다. 태욱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이런 지웅의 모습을 살피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정답인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나를 꼭 끼우라고요.”
“뭐라고요?”
“나는 살고 싶어요.”
태욱은 양팔을 벌리고 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번 쥐었다가 풀었다.
“이곳은 너무 지옥같아.”
“그게 무슨?”
“살고 싶어요.”
태욱의 말에 지웅은 침을 삼켰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우리들은 모두 이 섬에서 어느 정도 미쳐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거죠.”
“그게 당신이 당신의 친구를 살인자로 만든 이유입니까?”
“빙고.”
태욱은 더욱 밝게 웃었다. 그 웃음이 소름이 끼쳐서 지웅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입을 살짝 내민 후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싫군요.”
“뭐라고요?”
“뭐가 되었건 당신은 공유하기 싫습니다.”
“그게 무슨?”
지웅의 말에 태욱은 상처라도 입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니죠.”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애초에 당신들에게 어떤 기회를 준 것은 바로 나에요. 나라고. 그런데 지금 나를 밀어낸다는 겁니까?”
태욱의 목소리가 커지자 지웅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 사람은 꽤나 잘 흥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신들을 위해서 행동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 행동의 결과가 고작 이런 것입니까?”
“당신은 우리를 위해서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당신. 당신 한 사람이 살기 위한 행동이었죠. 그리고 그 결과가 당신 스스로 그 그룹 안에서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모를 거 같습니까?”
“뭐.”
태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돌아가요.”
“일단 비밀을 제대로 들어야죠.”
태욱은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훅 숙였다. 역겨운 냄새가 치밀었다.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뭐 하자는 겁니까?”
“당신을 다치게 하지는 않아요.”
태욱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뒤로 넘기고 다시 바르게 섰다.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하는 거죠.”
“재미요?”
“나는 이 섬이 싫어요.”
“우리도 싫습니다.”
“그러니까.”
태욱은 검지로 지웅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이 섬에서 나갈 방법을 같이 찾자고요.”
“싫습니다.”
“뭐라고요?”
“싫다고요.”
태욱은 혀를 살짝 문 후 헛기침을 했다. 적당한 말을 머릿속에서 찾더니 입을 쭉 내밀고 웃었다.
“뭐라는 거야?”
“당신의 말처럼 우리는 탈출을 할 겁니다. 무조건 말이죠. 하지만 거기에 당신은 플랜 A가 아닙니다.”
“그럼?”
“F쯤 되겠죠?”
태욱은 혀로 송곳니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정도로도 만족이었다.
“나에게 곧 진실을 말하기 바라요.”
“진실은 없습니다.”
“그 비밀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태욱은 킬킬거리며 서늘하게 웃었다.
“당신들이 그 비밀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거기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려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
“그게 무슨?”
“당신들의 그 뭉침. 그것이 결국 당신들의 목을 조를 겁니다. 당신들은 그걸 믿지 않겠지만 말이죠.”
차가운 경고였다. 그리고 무서운 경고였다. 태욱은 지웅을 보고 씩 웃다가 곧바로 몸을 살짝 떨었다.
“그런데 당신은 뭐야?”
“뭐가 말입니까?”
“당신만 뭐가 더 있는 거 가아.”
태욱은 알 수 없는 이 말을 남기고 텐트를 나갔다. 지웅은 그 순간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미친.”
지웅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놈이었다. 그리고 저 인간은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릴 거였다.
“표재율.”
특히나 재율이 위험했다.
“아빠 부탁 들어주세요.”
영애의 말에 영부인의 표정이 구겨졌다.
“딸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도 아시잖아요.”
“뭘?”
“엄마.”
“됐어.”
영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네가 하는 게 아니야. 이건 엄마랑 아빠의 일이고 네가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어.”
영애는 입을 꾹 다물다가 한숨을 토해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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