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비밀 1
“여보.”
“안 돼요.”
대통령의 부탁에 영부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이 일에 아버지께서 나서면 어떤 그림이 될지 당신이 몰라요? 너무 우스꽝스러운 그림일 거예요.”
“그건 그렇지만.”
대통령은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돕겠다는 사람이 이리 된 것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그래도 내 아들이야.”
“아들이요?”
“그래.”
“여보.”
영부인은 부아가 치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리 아들이라는 말을 쉬이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당신이 지금 그렇게 나오면 진짜 당신 자식들은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요? 지금 당신 아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놀림을 당하는지. 그런 거 하나도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지.”
“뭐라고요?”
“여보.”
“됐어요.”
대통령이 손을 잡으려고 하자 영부인은 단호히 몸을 틀었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자네는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일단 당신은 손을 떼요.”
“뭐라고요?”
“그래야 그림이 낫죠. 당신이 나서면 그저 당신 아들만 찾으려고 하는 걸로 보이지 않겠어요?”
“그런가?”
“그럼요.”
영부인의 말에 대통령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여론을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상황이 필요했고 거기에는 자신이 빠지는 그림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일단 나 혼자 만날게.”
“부탁하오.”
“알았어요.”
영부인은 대통령이 걱정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돌아서는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탈출은 언제 할 거예요?”
“네?”
갑자기 찾아온 봄에 지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가려는 거 아니에요?”
“아니.”
봄의 돌직구 화법에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봄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아직도 이 섬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까요.”
“보름이에요.”
“네?”
“여기는 보름이라고요.”
봄의 말에 지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들이 온 그믐. 그날은 바다가 밖에서 안으로 편해요. 하지만 곧바로 이곳은 갇힌 섬이 되어버려요. 해류가 너무 거치니까. 오직 보름. 보름에만 우리가 마음대로 나갈 수 있게 되더라고요.”
“보름이라고요?”
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사실에 반응을 하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나를 믿어요?”
“같은 생존자니까요.”
“그게 뭐야?”
지아의 대답에 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식으로 믿지 마요.”
“하지만.”
“일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거기에서 선한 사람들만 데리고 오려고 해요.”
“선한 사람이요?”
봄의 대화는 다소 불편했다. 그러니까 이 섬의 생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거였다.
“그게 무슨 말이죠?”
“여기 남자들은 아주 몹쓸 놈들이거든요.”
“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래서 언제 나갈 거예요? 지금 나가지 않으면 한 달을 다시 기다리게 될 거예요.”
“그건.”
지아는 침을 삼켰다. 갑자기 들어온 이런 정보에 대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나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일단은 이 섬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고.”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자기들끼리의 권력. 그런 것에 심취했죠. 그래서 이 섬에 있다면 결국 이 사람들에게 휘말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미 느끼고 있잖아요.”
지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어렴풋이 느끼던 그 위화감. 그걸 봄은 망설이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죠?”
“믿으니까.”
“나를 믿어요?”
“네.”
“어떻게요?”
“생리대.”
“아니.”
고작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믿는다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봄의 표정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지금 내가 우습죠?”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은 그런 거 하나 나누지 못해요. 특히나 남의 앞에서 가방은 열어보이지 못하죠.”
“그래요?”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들도 지웅이 없었더라면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를 데리고 가줘요.”
“일단 얘기를 할게요.”
“너무 미루지 마요.”
“네. 알았어요.”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봄은 그런 지아를 한 번 더 보고 돌아섰다. 지아는 깊은 숨을 뱉었다.
“못 믿어요.”
“야.”
“나는 못 믿어.”
시안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한 달을 더 기다리더라도 정말로 그 말이 맞는지.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래요.”
진아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혹시라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것을 실험하려고 하는 거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거예요. 강봄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행동을 하니까요. 내가 본 결과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건 모르죠.”
지아의 말에 시안은 곧바로 반박을 했다.
“강지아 씨야 그 사람을 먼저 만났고 믿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그게 거짓인 거면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렇죠.”
윤태가 곧바로 그 말을 받았다.
“아무도 모르잖아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믿을 수가 있는 거죠. 강봄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저 사람들하고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건.”
시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긴장이 팽배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였다.
“일단 저 사람들을 무조건 믿을 수 없습니다.”
지웅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아를 응시했다.
“아직 우리는 이 섬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죠.”
석구 문제가 끼어들면서 그들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두 그룹 사이의 어떤 문제 같은 거였다.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뒤에 누가 있는지를 생각을 하면 전혀 다를 겁니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낼 수는 없어요. 잘못하다가는 한 달을 더 이 섬에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그게 문제에요?”
“당연하죠.”
시안의 반문에 세연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지금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데요. 벌써 조난을 당하고 한 달이나 지났다고요.”
“고작 한 달.”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위험해요.”
“하지만.”
“일단 이 섬의 사람들을 모두 만나기 전에는 안 돼요. 보름이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꼭 오는 거니까요.”
“일단 기다리죠.”
지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지웅은 단호했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아요?”
“응.”
윤태의 위로에 지아는 미소를 지었다.
“뭐 이 정도로.”
“다들 겁이 나서 그렇죠.”
“그렇지.”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에요.”
윤태의 지적에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겁이 났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자신의 믿음이. 자신의 어떤 것이 틀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틀렸어.”
“뭐가요?”
“이윤태 씨에 대해서.”
“에이.”
기사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안 윤태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요.”
“왜요?”
“내가 애초에 그렇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건 강지아 기자님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나는 비겁하게 도망을 친 거고요.”
“비겁이라.”
비겁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자신이 우선이었다. 악플을 피해서 떠난 배우에게 할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싫다.”
“왜요?”
“그냥 다 싫어요.”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모든 문제. 결국 다 자신이 만든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
“그러지 마요.”
윤태가 지아의 손을 꼭 잡았다.
“강지아 씨를 내가 좋아하는 걸.”
“하여간 닭살이야.”
“뭐라고 해도 좋아요.”
윤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아를 응시했다. 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먼저 윤태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위로가 너무나도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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