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비밀 3
“엄마는 거짓말을 했잖아요.”
“뭐?”
영애의 말에 영부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빠 앞에서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행동을 하시고. 재호 앞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시잖아요.”
“딸.”
영부인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엄마. 제발 정신차려요. 지금 이 상황은 국민들이 위험한 거라고요. 내 배다른 동생을 경계할 때가 아니에요.”
“동생?”
영부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아무래도 영애의 말이 그녀에게 어떤 신호를 준 것 같았다.
“도대체 네가 누구를 보고 동생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네 동생은 재호 하나 밖에 없어.”
“엄마.”
“그 망할 것은 죽어야 해.”
영부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도 알고 있잖아. 네 아버지가 어떻게 대통령이 된 것인지. 내가 아니었으면 감히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어. 내가 영부인을 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네 아버지를 그 자리에 올렸어.”
“아버지 힘으로 하신 거예요.”
“뭐라고?”
“엄마가 한 거 아니라고요.”
영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엄마가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지금 엄마 추해. 너무나도 역겹고 또 역겨워.”
“딸.”
“그만 둬요. 엄마가 자꾸 이러면 외할아버지는 내가 직접 만날 테니까. 할아버지가 재호보다도 저를 더 좋아하시는 거 알죠?”
“재희야. 재희야.”
“그만.”
재희는 영부인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더 이상 영부인과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선택을 주는 거예요. 엄마는 바른 선택을 할 거라고 믿어요. 엄마는 적어도 내 엄마니까.”
영부인은 멀어지는 딸을 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것은 어미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건 짐승의 어떤 것이었다.
“미쳤어!”
시안은 나라의 뺨을 때렸고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지아는 곧바로 그런 시안을 막아서며 고개를 저었다.
“라시안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강지아 씨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이 망할 승무원의 편을 드는 거예요? 얘가 입을 놀려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듣고?”
“이봐요.”
“뭘 봐요!”
지아가 시안을 달래려고 했지만 시안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내가 당신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당신 부하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끼리 싸워서 도대체 뭐가 해결이 될 거라고 믿는 건데요?”
“아무 것도 해결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이 년에게 응징은 하겠지. 그래야 앞으로 입을 놀리지 못하겠지.”
“그만 둬요.”
윤태가 지아의 뒤에 서자 시안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서방이라고 나서긴,”
“뭐라고요?”
“둘이 연애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나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우습지 않나?”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뒤를 보고 진아가 재빨리 나라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라시안 씨. 지금 우리가 회의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거예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따지자는 게 아니고요.”
“이미 그 일이 왜 일어난 건지. 그걸 따져야지. 그래야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지웅은 단호히 말하며 나섰다. 하지만 시안은 그를 보면서도 서늘한 태도를 유지한 채 고개를 저었다.
“결국 당신 탓이잖아.”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애초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애한테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그러는 거야? 말도 안 되지.”
“어쩔 수 없죠.”
지아는 나서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같은 무리끼리 싸운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다.
“우리가 뭉쳐야죠.”
“뭐라고요?”
“그럼 지금 가서 무조건 잘못했다. 그렇게 말을 해요?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럴 수 없잖아요.”
“그건.”
시안은 입을 다물었다. 지아의 말이 옳았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그쪽도 우리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그대로 놀아주는 것도 너무 멍청한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일단 기다려야죠.”
“기다려요?”
“네.”
지아는 힘울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요.”
지아의 말에 더 이상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지아의 말이 옳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그들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건 거꾸로 그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니요.”
나라의 인사에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라에게 인사를 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살기 위해서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우리끼리 뭉치자고 한 것은 나였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그래도요.”
“괜찮아요.”
지아는 나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해요.”
“네.”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도 말고.”
“네.”
나라는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나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절대 그 누구도 놓고 갈 수 없는 것이었다.
“너는 성질 좀 죽여.”
“뭐가?”
시인의 말에 시안은 입을 내밀었다.
“그럼 언니는 그 상황에서도 화도 안 나니? 걔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아니야?”
“일부러 그런 거야? 사실을 따르자면 무슨 도깨비처럼 우리에게 다가와서 몰래 듣던 놈이 잘못이지.”
“그건 그렇지만.”
시안은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운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언니는 너무 이상해.”
“뭐가?”
“나에게만 많은 것을 강요해.”
“가족이니까.”
“뭐?”
“가족이니까 더 나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거야.”
시인의 차분한 대답에 시안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혀를 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여간 언니는 말 잘 하는 거 알아줘야 해. 이렇게 말을 하면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있니?”
“그냥 앞으로 성질 좀 죽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되는 거지.”
“네. 네.”
시안은 귀찮은 듯 대답하면서도 웃었다. 답답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는 거였고. 그것은 뭐 하나 변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지켜야 하는 것들은 지켜야 하는 것이었고, 놓을 것은 때로 놓을 수도 있어야 했다.
“괜찮겠죠?”
“그럼요.”
윤태의 물음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하나 가지고 무슨.”
“그래도.”
“일단은 기다려야죠.”
지아는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저쪽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막 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정태욱 그 사람도 나름의 궁리가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으니 지금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겠죠.”
“그렇죠.”
윤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뭐라고 한 마디 하러 올 사람들이 너무 조용한 거였다.
“너무 똑똑해.”
“네?”
“그래서 좋아.”
“뭐래?”
윤태는 씩 웃으면서 지아의 손을 잡았다.
“좋다.”
“변태에요?”
“뭐가요?”
“무슨 손만 잡고 그렇게 음흉한 표정을 지어?”
“내가요?”
“네. 네가요.”
“에?”
지아의 지적에 윤태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 손을 잡고 변태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또 처음이네. 그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뭐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려고 하던 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사랑? 지금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거였다.
“얼굴 왜 빨개져요?”
“아니.”
“내가 손 잡아서?”
“아니에요.”
공연히 그 말을 짚었다가는 또 다른 놀림이 될 거였따.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윤태는 지아의 눈치를 살피며 미간을 모았다.
“아닌 게 아닌데.”
“뭐가요?”
“아니 뭔가 있는 거 같아서 그러죠. 기자님이 왜 그러실까? 아.”
윤태는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그래요?”
“아니거든요.”
“아니기는.”
윤태는 킥킥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아는 그런 윤태를 노려보며 가볍게 그의 가슴을 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왜요?”
“아니 사랑한다니.”
“사랑해요.”
“그만.”
지아는 귀를 막았다. 전에도 들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불쑥 나오니 또 다른 민망함이었다. 괜히 부끄러웠다.
“무슨 사람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게 부끄러워요.”
“그렇죠.”
“나는 아니에요.”
“이윤태 씨.”
“사랑해요.”
윤태가 지아를 확 끌어당겨서 품에 가뒀다.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좋았다. 윤태의 품이 포근했다.
“사랑합니다.”
지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윤태도 이미 지아의 대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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