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장. 나가려는 사람들 3
“나는 아빠를 도우려는 거예요.”
“알아.”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애는 늘 그의 편이었다. 그가 무엇을 하건 응원하는 존재였다.
“엄마가 뭐 말도 안 되는 거 하면 바로 나에게 말해요. 그러면 내가 다 해결을 해줄 테니까요.”
“아니.”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부부의 일이었다. 자식에게까지 이런 문제를 줄 수 없었다.
“딸. 내가 딸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거 봤어? 딸은 그냥 보통 딸이야. 그저 예쁘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거 성차별.”
“그런 예쁜 거 말고.”
영애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대통령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힘내요.”
“고마워.”
“진짜.”
“그래.”
영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통령이 다른 날에 비해서 유난히 더 쳐졌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회사는 좀 괜찮아?”
“그럼요.”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그런 영애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밖으로 나갔다. 영애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영애는 안방을 한 번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나간다고요?”
“네.”
지웅의 말에 태욱의 얼굴이 구겨졌다. 다들 이런 생각은 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더 빠른 거 같았다.
“신기하네요.”
“뭐가요?”
“아니 뭐.”
지웅의 반문에 태욱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내가 생각을 한 것보다 너무 잘 뭉치는 거 같아. 우리 섬의 사람들이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 그쪽이 잘못한 거죠.”
“뭐.”
태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이 이리 말하는데 자신이 뭐라고 더 말할 수도 없는 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뭐가요?”
“그쪽이요.”
태욱은 지웅을 보고 씩 웃었다.
“남을 겁니까? 갈 겁니까?”
“남을 겁니다.”
“네?”
태욱의 미간이 모아졌다. 남는다니. 자신의 생각과 다른 거였다. 하지만 지웅은 너무나도 단호한 표정이었다.
“이 섬에 남으려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남을 겁니다. 그게 내가 사무장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태욱은 혀로 이를 훑었다.
“농담이죠?”
“아니요.”
“그러니까 여기에 남을 사람은 남기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미친.”
태욱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모두 다 나가더라도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가 될지 모르는데 이건 미친 거였다.
“지금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생각할 거 같습니까? 지금 이 상황 우습게 느끼지 않을 거 같습니까?”
“그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이건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해야 하는 일이라니.”
태욱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머리를 마구 헝클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거 우스운 거 아닌가?”
“뭐가 우습다는 거죠?”
“아니. 뭐.”
태욱은 턱을 만지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웅과 부딪친다고 해서 얻을 것은 없었다.
“나에게 바라는 건 뭡니까?”
“없습니다.”
“없다.”
태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웅이 자신을 가지고 어떤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내가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죠?”
“뭘 말입니까?”
“아니. 젠장.”
태욱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되는 거지.”
“왜요?”
“뭐라고?”
“왜 안 되는 겁니까?”
“그게 무슨?”
태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지웅의 태도는 너무나도 태연하고 여유로웠다.
“나는 그저 당신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하려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들이 어떻게 하건 중요하지 않죠.”
도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리고 병태도 도혁을 따랐다. 하지만 태욱은 아니었다.
“당신이 사무장이라는 위치를 갖고 있다고 해서 여기에서 무슨 왕이라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요.”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지?”
“그러게요.”
“뭐라고?”
“나는 왕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입니다. 당신도 왕이 아닌 거죠.”
“그게 무슨?”
“지금 당신은 뭡니까?”
태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웅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태욱을 응시했다. 태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나를 놀려서 뭐 하려고?”
“거듭 말하지만 나는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냥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해서. 그냥 말하는 겁니다.”
“그냥 말하다니.”
태욱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거였다.
“그러다가 당신이 죽으면?”
“모르죠.”
“뭐라고?”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태욱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돌아섰다. 어차피 여기에서 지웅과 더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가고 싶어요.”
“위험해요.”
윤한의 말에 세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세연 씨도 가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게.”
세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너무나도 위험해요. 적어도 이 섬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지내고 있잖아요.”
“그래서요?”
“네?”
“그게 뭔가 우리에게 미래를 줘요?”
“윤한 씨.”
“나는 싫어요.”
윤한은 떨리는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 적은 글들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이것들을 기록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루하루 미쳐가는 기분이에요.”
“미치다뇨.”
세연은 윤한의 손을 꼭 잡았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요.”
“세연 씨. 우리 나가요.”
“그건.”
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윤한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 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다 죽으면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당연하죠.”
세연은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게 비록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처럼 좋아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는 거죠.”
“아니요.”
윤한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세연의 얼굴을 감싸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리가 지금 죽어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세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우리가 왜 죽어요?”
“그럼 이게 살아있는 거예요?”
“당연하죠.”
“아니요.”
윤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연 씨. 나는 우리가 지금 자유가 없는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무섭다고 믿는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를 하는 것도 틀린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요. 누가 우리를 구할 거라고 믿어야죠. 그런 믿음도 없으면 우리는 여기에서 정말로 살아나갈 수 없어요.”
“그렇죠.”
윤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는 믿음도 없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왜 그래요?”
“무서워요?”
“뭐가요?”
“달라지는 게 없을까봐.”
“윤한 씨.”
세연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윤한이 왜 이러는 건지 알았지만 이대로 흔들리게 둘 수도 없었다.
“우리 지금까지 살아난 것도 기적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도 이런 기적을 만들 거라고요.”
“누가 그래요?”
“네?”
“누가 그러는 거냐고요?”
“그건.”
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누가 그것에 대해서 확신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에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제발 그러지 마요.”
“나는 나갈 거예요.”
윤한은 세연의 눈을 보며 씩 웃었다.
“세연 씨는요?”
“윤한 씨. 나는.”
세연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정말 정답인 걸까? 세연은 한숨을 토해냈다.
“모르겠어요.”
“나는 나갈 거예요.”
윤한은 세연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연 씨를 두고서라도 나갈 거예요.”
“그게 무슨?”
“그게 내 선택이에요. 나는 이 선택을 세연 씨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세연 씨는 세연 씨가 알아서 선택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세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윤한의 말이 너무나도 잔인했지만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세연은 침을 삼키고 물끄러미 윤한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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