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장. 나가려는 사람들 1
“왜 그러는 거요?”
“네?”
집에 오자마자 건네는 대통령의 말에 영부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여보 왜 그래요.”
“내가 당신 남편이기는 하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영부인이 대통령에게 다가오려고 하자 대통령은 미간을 모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영부인은 침을 삼켰다.
“여보.”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뭐가요?”
영부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도대체 내가 뭘요?”
“왜 그 아이를 찾지 못하게 하는 겁니까?”
“뭐라고요?”
영부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영부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대통령을 응시했다.
“내가 그러면 당신을 도와야 하나요?”
“뭐라고요?”
“그 아이를 찾는 것을 도와야 해요?”
영부인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대통령을 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 아이 내 아이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방해할 것도 없지 않소?”
“왜요?”
“뭐라고요?”
“방해를 해야죠.”
“그게 무슨?”
“우리 아이들 걱정은 안 해요?”
“우리 아이들이 왜요?”
“학교에서 놀리고 하는 거 몰라요?”
“그건.”
대통령은 순간 할 말이 궁해졌다. 아이들이 그런 일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당황스러웠다.
“당신은 그저 대통령이죠. 허나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아버지는 아니에요. 그런데 계속 이럴 건가요?”
“그래서 계속 방해할 거라는 거요?”
“그렇죠.”
영부인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당신의 방법. 그리고 나의 방법인 거잖아요. 아니에요? 당신이 그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면 더 노력해요. 나도 당신을 방해하기 위해서 더 노력할 거니까. 이건 각자의 가치관의 문제죠.”
“아니.”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것. 이것은 절대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국민들을 구하려는 거요.”
“국민이요?”
영부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해요.”
“뭐가 웃긴 거요?”
“당신이 국민이라고 한 거요.”
영부인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잖아요.”
“뭐라고요?”
“애초에 그 자리도 내가 만든 거잖아.”
“그건.”
대통령은 침을 삼켰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모두 아내의 공이었다. 허나 그러하다고 해서 뭐든 다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과한 것 같군.”
“뭐라고요?”
대통령의 말에 영부인의 미간이 모아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혼하지.”
“여보.”
“이혼해.”
“그게 무슨?”
영부인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런 오점 같은 것을 남길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나에게 이혼 이야기를 하는 거죠? 지금 당신의 것 다 내 거에요.”
“그래.”
대통령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당신이 해준 거야.”
“그걸 다 버린다고요?”
“그래.”
“여보.”
“다 버릴 거야.”
대통령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물끄러미 영부인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왜 당신이 그렇게 괴물이 된 것인지 알지 못하겠군. 그 모든 것은 내가 다 만든 거겠지.”
“괴물이라니.”
영부인은 숨을 크게 쉬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아무리 이런 일이 벌어져도 이렇게 당할 수 없었다.
“도대체 당신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요? 나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했어요. 몰라요?”
“알지.”
대통령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모든 것. 결국 다 영부인이 만들어준 것이었고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 해준 거라고 해도 더 이상 당신이 나를 좌지우지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야.”
“여보.”
“나는 일단 나가겠어.”
대통령은 이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영부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대통령은 그가 만든 사람이었고 절대로 그녀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이대로 그녀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좀 괜찮아요?”
“네.”
윤태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뭐가요?”
“내가 너무 우겨서.”
“아니요.”
윤태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지아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급하게 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기자님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 여기에 있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하루라도 빠르게 나가야 해요. 그건 분명해요.”
“정말이에요?”
“당연하죠.”
“거짓말.”.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건지 모르겠네.”
“믿을 수 없는 거니까 그러죠.”
“치.”
“왜요?”
“왜 안 믿지?”
윤태가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지아는 가볍게 윤태의 어깨를 때렸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너무 어려워요.”
“그렇죠.”
“나는 지금 사람들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요.”
“당연한 거 아닐까요?”
“당연요?”
“그렇죠.”
윤태의 말에 지아는 침을 삼켰다. 당연한 것. 어쩌면 지금 자신은 사람들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들 겁을 내고 있는 거니까. 겁을 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게 달라질 리는 없잖아요.”
“그렇죠.”
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겁을 내는 거죠.”
“기자님은 겁이 안 나요?”
“나요.”
지아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저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섬에 남는 것이 더 두려워요.”
“그래요?”
“윤태 씨는 안 그래요?”
“사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윤태는 지아보다 더 먼 바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었고 그들을 내보낼 것 같지 않았다.
“저 거친 바다에서 우리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요?”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너무 막연한 희망이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거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희망. 나는 사실 갖고 싶지 않아요. 그거 너무나도 무서운 거잖아요. 아니에요?”
“무섭다니.”
“안 무서워요?”
“여기에 있는 게 더 무서워요.”
“그게 기자님과 나의 차이죠.”
“그럼.”
“아니요.”
지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윤태는 지아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나는 기자님이 있어야만 이 섬에서 나갈 거예요. 기자님이 없으면 나는 너무나도 무서우니까.”
“나는 이윤태 씨에게 그런 강요를 하고 싶지 않아요.”
“왜요?”
“네?”
“왜 싫은 건데요?”
“무슨?”
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요를 하지 않겠다. 이것에 대해서 뭔가 다른 말을 더 해야 하는 걸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나는 그냥 기자님을 좋아하니까. 기자님이 하고 싶은 것. 그것을 위해서 다 할 수 있기를 바라요.”
“내가 그렇게 좋아요?”
“당연하죠.”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답하는 윤태를 보며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왜요?”
“부담스럽잖아.”
“뭐가요?”
“그런 믿음?”
“그런가?”
윤태는 혀를 살짝 내밀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지아의 선택을 응원하는 편이 나았다.
“나는 어차피 이 섬에 있으나 나가나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까 기자님이 하는 거 그냥 따를 거예요.”
“그거 되게 좋으면서도 부담이네.”
“그래요?”
“그럼요.”
“그럼 좋아만 해요.”
“치.”
지아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윤태의 손을 다시 꼭 쥐었다. 그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편하다.”
“그래요?”
윤태는 지아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좋다.”
“나도 좋다.”
지아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아주 살짝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너무 무서웠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무조건 앞으로만 가야 하는 거였다.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자꾸만 망설이다 보면 결국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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