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장. 절망 3
“싫어요.”
“뭐?”
“싫다고요.”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도 하지 않았던 복병에 지웅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사무장님도 아시잖아요. 누구 하나 그렇게 예외를 두면 안 되는 거라고요. 그거 문제가 될 거예요.”
“하지만 그 정도 문제는 생겨도 괜찮아요. 어차피 임길석 씨의 배도 있으니 여기에 배가 세 척이 아닙니까.”
“그래도 안 된다고요.”
진아는 정말 단호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배가 한 척이라도 더 부족하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일 거였다.
“지금 우리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그 배를 타고 오는 데도 우리 되게 힘들었어요. 그거 아시잖아요.”
“하지만.”
“사무장님. 그렇게 무조건 양해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우리 지금 여기에 한 달 보름 있는 거예요. 더 있다가는 모두 죽을 수도 있는 거 아시죠?”
“알죠.”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배를 쓰지 말라는 건 이유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아닙니까?”
“당연히 이유가 되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요.”
“성진아 씨.”
“안 돼요.”
진아는 너무나도 단호했다. 지웅은 어색하게 웃었다. 진아가 너무 단호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성진아 씨가 왜 그러는 건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렇게 겁을 낼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겁을 내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살 가능성이 하나 줄어드는 거. 그게 싫은 거라고요.”
“그들은 우리의 기회를 가져가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요?”
“따라갈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지웅이 이렇게 말하자 진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웅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갈 수도 있었다.
“일단 강봄. 그 사람은 무조건 갈 겁니다.”
“간다고요?”
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지웅이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무장님. 지금 더 큰 것을 생각을 하셔야 하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들을 다 생각하셔야 하잖아요.”
“그래서요?”
“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고민하다가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거 모르는 겁니까?”
“그건.”
진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웅의 말이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의 말을 따를 수도 없는 거였다
“지금 사무장님 혼자 생각해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지만 무조건 물러날 생각도 없습니다.”
“사무장님.”
“무조건 물러나서 가능한 것 아니잖아요.”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보내서 어떻게 하려고요? 그 사람들이 나가면 우리의 생존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을 모르세요? 그 사람들에게 어떤 기회를 주는 만큼 우리가 위험한 거라고요. 안 그래요?”
“그러면 진아 씨도 나가요.”
“네?”
“나는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어요.”
지웅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사무장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섬에 남겠다고 하면 남을 거예요. 하지만 진아 씨는 달라요. 진아 씨는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진아 씨는 결정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진아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답이라도 내려야 했다.
“사무장님 생각을 바꾸세요.”
“왜요?”
“그렇게 예외를 만들면.”
“애초에 임길석 씨랑 차석우 씨도 예외였어요.”
“그거 그렇죠.”
“우리 승무원인 이세라 씨도요.”
진아는 침을 삼켰다. 지웅의 말이 옳았다. 모든 사람은 다 특혜였고 다른 상황의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의 선택을 강요할 자격도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줄 수도 없는 거죠. 사무장님께서도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다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거 너무 위험한 거잖아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죠.”
“뭐라고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 아시잖아요.”
“왜요?”
“왜라뇨?”
진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튼 저는 반대에요.”
“그럼 반대해요.”
“뭐라고요?”
“나는 찬성할 겁니다.”
지웅은 이미 태도를 단호히 정한 모양이었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무작정 어떤 경우를 준다는 것. 무작정 그렇게 허락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은 자신보다도 사무장인 지웅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왜 그러시는 건데요?”
“뭐가 말이죠?”
“지금 이상하세요.”
“아니요.”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사무장님.”
“진아 씨 잘 들어요.”
지웅은 진아의 눈을 마주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우리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어요. 그건 내가 진아 씨에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진아 씨도 강지아 씨에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들에 대해서 그냥 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할 것 없어요. 알죠?”
“하지만.”
“그만요.”
지웅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다 봐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경우. 그리고 우리의 경우. 이건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에요.”
지웅은 다시 한 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웅의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에 진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싫다고 하면요? 그 누구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요?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
“막아야죠.”
“다른 사람들을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지웅의 너무나도 간단한 말에 진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웅이 이렇게까지 생각을 굳혔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웅의 생각이 너무나도 단호하다는 것에 진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 저랑 싸우시겠네요.”
“그래요.”
지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이에요.”
“상관없어요.”
“노력하라고요.”
지웅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지웅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쪽의 편을 들어야 했다. 지웅과 다투는 것은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지아 씨.”
해변에는 다행히 지아와 윤태가 있었다. 진아가 부르자 지아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 잡고 그녀를 응시했다.
“왜요?”
“나가지 마요.”
“네?”
“나가지 말라고요.”
진아의 말에 지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단순히 두 사람을 위해서 배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에요. 너무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거고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요. 그거 나쁜 거예요.”
“나쁜 거라뇨?”
지아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윤태가 먼저 나섰다.
“성진아 씨. 어차피 배는 세 척이잖아요. 그 중 하나를 탈출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쓰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가능성이 있어요?”
“뭐라고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존 기회를 하나 줄이는 거. 그거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건.”
“미안해요.”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진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물러날 수 없어요.”
“뭐라고요?”
“이건 내 결심이에요.”
“이봐요.”
“당신도 내가 이해가 안 가지만. 나도 당신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이 섬에서 뭘 하려고 하는 건데요?”
“기다리는 거죠.”
“기다려요?”
지아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섬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섬에서 누가 우리를 구하러 올 거예요.”
“누가요?”
“나라에서.”
“아니요.”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누구도 오지 않아요.”
“왜들 그래요?”
나라가 놀라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지아는 어깨를 들썩였다.
“아직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네.”
검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법대로 처리하세요.”
“회장님.”
검사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이건 아니죠. 이제 고령이세요. 그냥 대충 넘어가시는 편이 더 낫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항공사 회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항공사에서 사고가 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론도 좋지 않고 이거 비용. 정말 말도 안 되게 큰 금액이라는 거 아시는 거 아닙니까?”
“압니다.”
“아는데 그러신다고요?”
항공사 회장이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검사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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