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장. 절망 4
“어떻게 방법이 없나?”
“없을 겁니다.”
비서의 말에 대통령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사람을 구해야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에게 힘이 없는 거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무 작은 거였다.
“내가 뭘 해야 하나?”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권 비서관.”
“죄송합니다.”
비서는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냈다. 총리를 몰아세우는 것도 이 사람의 생각이었다.
“내가 자네를 얼마나 믿는지 알지?”
“죄송합니다.”
“비서관.”
“사직서입니다.”
“응?”
비서관이 갑자기 종이를 내밀자 대통령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저는 영부인의 사람입니다.”
“뭐라고?”
“그러니 주위를 더 살피십시오.”
비서관의 말에 대통령은 숨을 멈췄다. 생각을 해보니 이 사람은 장인이 자신에게 추천한 사람이었다.
“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아무리 대통령께서 모두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주위를 더 살피세요.”
대통령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더 살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걱정이 되었다.
“모두 다 대통령께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 일을 못하게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저는 그저 대통령님을 존경할 따름입니다.”
비서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대통령은 침을 삼켰다. 의원이던 시절부터 자신의 편이던 이였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 하던 이였는데 아니었다.
“그 동안 고마웠네.”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들 이래요?”
나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진아도 이해가 갔지만 이건 다소 과한 느낌이었다.
“성진아 씨.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살고 싶어요. 그리고 이 섬에 있는 거. 그건 우리에게 어떤 것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우리들이 살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믿어요.”
“나가면 달라져요?”
“여기에서는요?”
“달라지겠죠.”
“아니요.”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 누구도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거라는 거였다.
“나는요. 우리들이 무조건 잘 되기를 바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가면 더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강지아 씨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만.”
“나는 무서워요.”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자신이 뭘 할 수가 있는 건지. 그리고 뭘 해야 하는 건지 아무 것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많은 것을 생각해도 그 어떤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사무장님이 허락을 하신다고 해도 저는 반대에요. 그러다가 우리들이 살아갈 기회가 사라지는 건요?”
“진아 씨.”
“싫다고요.”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지아를 응시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저는 반대에요.”
진아의 반응에 지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한 건데요?”
“다 미안해요.”
“강지아 씨.”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어요.”
지아의 단호한 반응에 진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의 지아와 전혀 달랐다. 이전의 지아는 적어도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진아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뭐. 혼자 잘 났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니요.”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무작정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내가 쓰러졌잖아요.”
“그게 무슨 문제인데요?”
“다른 사람들은 안 쓰러질 거 같아요?”
“뭐라고요?”
“누구라도 쓰러질 수 있어요.”
“그건.”
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너무나도 끔찍해서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위험하고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거였다.
“나가다가 다치면요?”
“감안해야죠.”
“뭐라고요?”
“모두 나가자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부탁이에요.”
지아의 간절한 표정에 진아는 멍해졌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은 그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제가 반대해요.”
“뭐라고요?”
“제가 반대하다고요.”
나라의 갑작스러운 말에 지아는 멍해졌다.
“그게 무슨?”
“저도 승무원이에요. 제가 생각할 때 승객들이 위험한 일은 절대로 하게 할 수 없어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
“나갈 겁니다.”
윤태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나갈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이 이 섬에 남는 것을 막지 않아요. 그리고 승무원인 이세라 씨도 막지 않았어요.”
“그건 다르죠!”
진아는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그걸 가지고 걸고 가면 안 되는 거였다.
“그건 당신 매니저도 마찬가지잖아요.”
“이세라 씨가 남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준이 형도 남지 않았어요.”
“그건.”
진아는 대답이 궁해졌다. 윤태의 말이 사실일 거였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나는 나갈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이 섬에 있는 건 우리가 탈출하기 위해서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섬에 계속 머물다가는 우리는 모든 걸 다 잃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닐 수도 있잖아요.”
“한 달 보름이죠?”
“네?”
“우리가 이 섬에 있던 기간이요.”
“그렇죠.”
“지나가는 배라도 봤어요?”
진아는 숨을 크게 쉬었다. 지아의 말이 옳았다. 그 긴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오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고 변화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기다릴 따름이었다.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 우리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이 상황은 이대로 멈출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에게 말해보죠.”
“뭐라고요?”
“모두랑 대화를 나눠 봐요.”
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또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게 진실이었다. 그래야만 하는 거였다.
“좋아요.”
진아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요.”
“하지만.”
“너무 위험해요.”
역시나 시안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른 태도가 아니었다. 모두 애매한 태도를 취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다가 구조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떠난다고 답은 없잖아요.”
“답은.”
“위험해요.”
기쁨도 입을 열었다. 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에 자신의 입장을 잘 밝히지 않던 기쁨이었기에 더욱 난처했다.
“강지아 씨가 지금 왜 그러는 건지 알아요. 자신이 쓰러져서 우리들도 그럴 거라고 말을 한다고 하죠. 그래도 괜찮아요.”
“하지만.”
“일단 이 섬의 사람들도 설득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배를 쓰지 못해요.”
“아니.”
지아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다들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러다가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다들 너무나도 안일한 모습이었다.
“여기에 있다가 다 죽을 수도 있어요.”
“이미 산 건 아니죠.”
재율이 가볍게 한 마디 보탰다.
“그러니까 있는 거죠.”
“나는 갈 거에요.”
“우리 배를 주지 않아요.”
“뗏목이라도 만들 거예요.”
“뭐라고요?”
지아의 말에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뭘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알 것 같고.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 것인지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을 그냥 감당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틀린 거였다.
“나는 나갈 거예요.”
“강지아 씨.”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갈 거예요.”
지아는 단호히 말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더 이상 이 섬에서 멍청하게 기다리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였다.
“이 섬에서 머무는 일은 너무나도 위험해요. 우리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할 거라고요. 아니에요?”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서 선택을 하죠.”
“뭐라고요?”
“나갈 분 계십니까?”
지웅의 말을 듣고 그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세연과 윤한 역시 지아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강지아 씨와 이윤태 씨. 두 분만 이 섬을 나가기를 원해요.”
지아는 침을 삼켰다. 다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거였다. 이곳은 그렇게 낭만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우리 모두 죽어요.”
하지만 지아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지아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잘 뭉쳐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흩어진 거였다. 아니 이제 지아만 떨어져 나온 셈이었다. 윤태도 지아가 아니었더라면 이 섬에 남을 거였다. 이 모든 상황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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