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또 다른 고민 1
“다 나간다고?”
“응. 그럴 거 같아.”
시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누나는 어떻게 하고 싶어?”
“모르겠어.”
시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뭐 하나 정답이 없으니 이 상황이 어떤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들 왜 그래?”
“누나.”
“이제 시간도 안 남았잖아.”
“그렇지.”
시우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오늘 밤 떠나는 거면 말 그대로 바로였다.
“하지만.”
“그냥 가자.”
“라시안. 너는 뭐가 그렇게 간단해?”
시안의 말에 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야?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럼 그렇게 복잡할 것은 뭐가 있어? 우리는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여기에서 언니가 생각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지니? 아니. 달라질 거 하나 없어. 우리가 이미 이 상황인데 뭐?”
시인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시안의 말이 옳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간단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거였다.
“이게 우리 운명을 좌우할 거야.”
“운명?”
시안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 이미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야.”
“라시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이미 비행기가 추락할 때 우리는 목숨이 거저야. 그리고 이 섬에 그 망할 인간들이 남는다고 하잖아.”
“그렇긴 하지.”
시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들이랑 같이 가자.”
“그러지 마.”
시우는 시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두 사람이 무조건 시인이 누나에게 강요할 수 없는 거야. 이건 시인이 누나가 정할 거야.”
“하지만 그래도 같이 가야지.”
“왜?”
“뭐라고?”
“왜 같이 가야 하는 건데?”
“라시우.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시우의 대답에 시안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시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답답했다.
“가자.”
“누나 그럴 이유 없어.”
“아니.”
시인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가자. 갈 거야. 내가 선택한 거야.”
시인의 미소에 시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누나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 그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결과일 수도 있어.”
“좋은 결과일 수도 있지.”
시인은 가볍게 시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그 사람들은요?”
“왜요?”
“다 가죠.”
지아의 말에 지웅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모두가 떠난다는 것 이상적이지만 너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사무장님만 두고 가요?”
“그래야죠.”
“아니요.”
지웅의 대답에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웅 혼자만 두고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건. 그건 우리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걸 가지고 아무도 탓할 사람 없어요.”
“다들 두려워할 겁니다.”
“그래도요.”
지아는 씩 웃으며 지웅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사람이잖아요.”
“네? 그게 무슨?”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죠. 우리는 그 누구도 누군가를 처벌할 자격이 없어요.”
“그러군요.”
지웅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갈 겁니다.”
“그게 무슨?”
도혁의 단호한 대답에 지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문도혁 씨하고 친구들을 제외하고 모두 다 나간다고 해요.”
“우리가 무서워서 가는 걸 겁니다.”
도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유로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이죠.”
“문도혁 씨.”
“차라리 잘 된 겁니다.”
도혁은 한숨을 토해내고 씩 웃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건 사람들이 이제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 해도 다행이죠.”
“그래서 다들 여기에 남는다고요?”
“네. 그럴 겁니다.”
병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석구도 있고요.”
“그거야. 석구 씨도 같이 가면 되는 거죠.”
“아니요.”
병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병태를 보며 도혁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석구가 제대로 제어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석구 스스로도 그 점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쪽만 이 섬에 남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다 생존자에요.”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겁니까?”
“네? 그게 무슨?”
“우리를 구하러 올 거잖아요.”
도혁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쪽이 먼저 구조를 받으면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말을 할 거잖아요. 그쪽은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거 같으니까. 우리는 거기에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태욱이 데리고 가는 것도 그렇잖아요.”
“뭐가 그렇습니까?”
“그래요. 좀.”
도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은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한 번 토해냈다.
“우리 넷은 가지 않습니다. 무조건.”
“안 됩니다.”
지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왜요?”
“나는 사무장이니까요.”
지웅의 말에 도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건 낯선 일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미친 소리를 하는 건지. 하지만 그래도 이 미친 소리는 해야 합니다. 저는 사무장입니다. 제 비행기에 탑승하신 모든 승객을 챙겨야만 합니다. 지켜야만 합니다.”
“이곳은 비행기가 아니에요.”
“아니요.”
도혁의 대답에 지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승무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일입니다. 지금 저는 그것을 하지 못했어요.”
“사무장님 책임이 아니잖아요.”
“이제 제 책임이 되려고 하는 거죠.”
지웅의 말에 도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석구가 위험할 거예요.”
“그 정도 알고 이렇게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그런 거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도혁과 석구가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강요는 아닙니다.”
지웅은 미소를 지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두 시간 남았어요.”
“두 시간이요? 밤에요?”
“네. 그래야 해가 뜰 때 헤매죠. 낮에 갔더니 어두워지고. 우리가 이 섬에서처럼 묶인 거죠?”
“그거야.”
도혁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웅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모두 지난 일이었다.
“그쪽에 달렸어요.”
“저요?”
“그쪽이 리더 아닙니까?”
“아니요.”
도혁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올릴 자격도 없었다.
“아무튼 정해줘요.”
“그건.”
“지금 당장 말고요. 두 시간이에요. 두 시간.”
지웅은 손가락 두 개를 들고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도혁도 그런 지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도 생각 좀 할게요.”
“제발 그렇게 해줘요.”
지웅의 간절한 말에 도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들이 해야 하는 선택은 정해진 것 같은데 다른 것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지웅이 멀어지고 도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떻게 할 거야?”
“모르지.”
병태의 물음에 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뭘 해야 할까?”
“문도혁.”
“모르겠어.”
도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고 싶어.”
“그러면 가면 되는 거지.”
“그럼 석구는?”
“석구야 뭐.”
병태도 할 말이 없었다. 석구를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지금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였다.
“석구가 문제이기는 하지.”
“지금은 조금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리일 거야. 너무나도 힘든 선택이지.”
“뭐가?”
그때 갑자기 들린 석구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석구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는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할 겁니다. 거기에 제 아들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소중한 대한민국 국민이 있어서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 그들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의 간절한 목소리가 광화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것을 제대로 듣는 이는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건 진심입니다.”
대통령은 간절한 눈빛으로 시민들을 쳐다봤다.
“신호가 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먼 섬에서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국민들을 구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대통령의 무대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더욱 더 목소리를 키웠다. 지금이 그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여론. 오직 이것만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디 국민들을 구할 기회를 주십시오.”
대통령이 다시 연설을 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물병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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