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장. 또 다른 고민 3
“달이 예쁘네요.”
“그러게요.”
서준의 말에 세라는 입을 쭉 내밀었다.
“달 보면 뭔가 무섭지 않아요?”
“뭐가요?”
“아니 그런 말이 많잖아요. 보름달이 뜨는 날 뭐가 어떻다고 하더라. 뭐 이런 것들. 그러니까 그러죠.”
“에이.”
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다 미신이래요. 13일의 금요일도 범죄율이 가장 높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요?”
“그 있잖아요. 뭐지.”
서준은 잠시 미간을 모으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시계를 봤을 때 늘 4시 44분을 보는 사람.”
“나요.”
“그거 그냥 그게 각인이 되는 거래요.”
“그래요?”
세라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뭔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의외로 똑똑하시네요.”
“의외요?”
“음. 그냥 똑똑하시네요.”
세라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기다리는 시간에 할 일이 없더라고요. 윤태가 연기에 들어가고 나면 저는 할 일이 크게 없으니까. 보통 대기고. 제가 신경을 쓸 일은 없거든요. 그래서 연기가 들어가고 윤태가 대본을 보면 책을 읽는 것밖에 할 일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많이 알게 되네요.”
“그래도 좋네요.”
“뭐가요?”
“그 시간에 잠만 잘 수도 있으니까.”
“뭐.”
서준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 봐주니 고맙네요.”
“뭐 딱히 좋게 보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요.”
세라는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괜히 몸이 아팠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더 아픈 거 같아.”
“일 많이 하잖아요.”
“아니요.”
서준의 물음에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 그리고 비행을 할 때를 생각하면 생선을 씻는 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도 이제 생선도 줄었잖아요.”
“그렇죠. 우리 두 사람이 먹을 거니까 그렇게 많이 필요도 없고. 겨울이 오니까 그래도 좋아요.”
“뭐가요?”
“생선이 안 썩으니까.”
“아. 그렇죠.”
서준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습도가 높은 계절을 지나고 나니 그럴 걱정을 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거요?”
“구조.”
서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요.”
“아니요.”
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그 상황에서 당황하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나도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요.”
“맞아요.”
세라는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잘 있겠죠?”
“그렇겠죠.”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세 사람이 죽은 거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라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것. 그것은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승무원이니까. 내가 그 모든 것을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이상하게.”
“에이. 아니에요.”
서준은 세라의 곁에 서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왜 그쪽이 전부 다 신경을 쓰려고 해요? 이건 승무원들이 막을 수가 없는 사고였어요.”
“그래도요.”
세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한국에 가면 곤란한 일들을 겪겠지만 그래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에 갈 수 있겠죠?”
“당연하죠.”
“그랬으면 좋겠네요.”
세라의 어색한 미소에 서준이 가만히 팔을 문질렀다. 세라는 잠시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의지해야죠.”
“그렇죠.”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나간다면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같이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같이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일단 가서 봐.”
“뭘?”
“사람들을.”
병태의 말에 석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네 말처럼 사람들이 괴물로 생각하는지. 아닌지. 그것을 보라고. 그러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건.”
석구는 겁이 났다. 사람들이 자신을 도대체 뭐라고 할지. 그게 너무나도 두렵고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다들 나를 싫다고 하면?”
“우리도 내릴게.”
“아니.”
석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 때문에 도혁과 병태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가자.”
“응?”
“가자고.”
석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이 순간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가자. 무조건 나가자.”
“그래.”
도혁의 얼굴이 환해졌다.
“병태야. 네가 석구를 데리고 가. 내가 태욱이를 데리고 갈게.”
“그래.”
병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나간다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태욱도 나가야 하는 거였다.
“같이 나가야지.”
“그렇지.”
도혁은 씩 웃었다. 병태는 한숨을 토해내고 석구의 팔을 잡았다. 석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태야 고마워.”
“고맙긴.”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내가 진정이 되는 거 같아. 네가 아니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아니야.”
병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그저 곁에만 있으면 되는 일을 가지고 너무 귀찮게 생각을 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마찬가지라니.”
“나도 너를 귀찮아했으니까.”
“당연한 거지.”
석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가자.”
“그래야지.”
석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회가 있을 거였다. 혼자서 나올 기회. 그 기회를 무조건 잡아야 하는 거였다.
“여론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뭐?”
보좌관의 말에 대통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재희도 몸을 바로 했다.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거였다.
“대통령님의 연설이 있었고, 또 영애님의 연설이 있어서. 지금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
“긍정적입니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준다는 것. 그리고 구조에 나설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국회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직 모르다니.”
대통령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것이 무엇인가? 그저 정쟁이야? 그저 이것을 정쟁으로 만드는 것이 전부인 건가?”
“아무래도 내년에 지방 선거가 있다 보니. 그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말도 안 되네.”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는 거였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없습니다.”
“뭐라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재희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니.
“그게 말이 돼요?”
“그래. 말이 돼.”
대통령은 힘이 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론이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전부였다.
“이걸 통해서 압박을 해야 하는 거지. 이것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거지.”
“이렇게 시간이 가면 사람들이 더 위험해진다는 사실. 그거 너무나도 간단한 거잖아요. 아니에요?”
“그렇지.”
대통령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곳이니 만큼 어떤 병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그런데 다들 그냥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어요? 아빠 뭐. 할 수 있는 거 없어요? 계엄이라거나. 아무 거나 다 해서. 그 사람들을 다 살려야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이건 안 되는 거잖아요.”
재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럴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거라면 절대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다들 왜 그렇게 이기적인 거예요? 다들 너무 이상하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왜 그래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니까.”
“뭐라고요?”
재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니. 누구라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는 거였다.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 거라고요.”
“아니.”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네 덕이다.”
“아빠.”
“네가 아니었더라면 여론이 이렇게 움직이지도 않았을 거야. 이제 이걸로 사람들을 움직여야지.”
“그게 무슨?”
“네가 나를 도와야 할 거다.”
다른 때와 다른 모습에 재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늘 엄마랑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러니?”
“아니요.”
재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 소설 완결 > 어쩌다 우리[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2 [75장. 다시 새로운 섬으로 1] (0) | 2017.07.31 |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2 [74장. 또 다른 고민 4] (0) | 2017.07.26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2 [72장. 또 다른 고민 2] (0) | 2017.07.26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2 [71장. 또 다른 고민 1] (0) | 2017.07.26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2 [70장. 생각하지 않았던 일 4] (0) | 201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