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장. 다시 새로운 섬으로 1
“미친 거야. 미친 거라고.”
“그만 해.”
짐을 꾸리면서도 시안이 계속 이런 말을 하자 시인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우리는 그 사람들하고 같은 배를 타지 않을 거잖아.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하지만 같이 가잖아.”
시안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나는 그게 싫어.”
“라시안 너 정말.”
“그만 둬.”
시인이 잔소리를 하려고 하자 시안은 검지를 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나는 내 뜻을 굽혔어. 뜻을 굽혔는데 여기에 다른 잔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그거 이상한 거야.”
“그래.”
시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 이미 자신의 뜻을 숙였는데 더 이상 잔소리를 할 것도 없었다.
“나는 진짜 싫어.”
“그만 해.”
“싫다는 말은 해야지.”
시안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이제 그 누구도 되돌릴 수가 없는데 말이야.”
“그건 기쁨 씨가 정한 거야.”
“하지만.”
“아무도 그 뜻을 어길 수 없어.”
“맞아.”
시우가 보태자 시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기쁨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 누구도 쉽게 말을 할 수 없을 거였다.
“이미 자신의 남편도 잃었고. 자신의 남편의 복수도 할 수 없어. 그런데 누가 뭐라고 더 하겠어.”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시인은 미소를 지으며 시안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너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말라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좋은 사람인 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더 한다고 해서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우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시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시우도 입을 다물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지웅의 사과에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쪽이 나에게 사과를 할 것이 뭐가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아니요.”
기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이 사고는 그 누구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저절로 난 사고였다.
“아무 문제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만 해요. 그리고 나도 그 사람들을 두고 가면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지웅이 다시 인사를 하자 기쁨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뭐가 고마워요?”
“사무장이니까요.”
“네?”
“사무장이니까 승객을 한 사람이라도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기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야죠.”
기쁨은 심호흡을 하고 씩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은 아니니까.”
“네?”
“복수를 못하게 해서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죠.”
“그런가요?”
“그럼요.”
기쁨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석구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길석에게 그랬을 수도 있었다.
“임길석 씨를 여기에서 보는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어요. 그래도 그 모든 화를 참을 수 있게 된 거니까. 그걸로 다행인 거죠. 안 그래요? 나는 이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행인 거죠.”
“그런 거군요.”
“그런 거예요.”
기쁨의 슬픈 미소에 지웅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장 사랑할 이와 와서 혼자 가게 되는 이의 웃음이었다.
“그럼 저는 가서 정리를 하죠.”
“네. 잘 부탁드려요.”
지웅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기쁨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친 거야.”
“왜요?”
“다 미친 거라고.”
진아는 미간을 모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섬의 사람들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라면 자기들끼리 뭉쳤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는데 왜 같이 간다는 거야.”
“괜찮은 사람들이겠죠.”
“아니.”
나라의 말에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선배가 어떻게 알아요?”
“어?”
“선배도 잘 모르시잖아요.”
“나라 씨.”
“죄송해요.”
나라는 곧바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나라의 모습에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도 모르지. 그러니까 겁이 나고 무서운 거지. 이 섬의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거고.”
“왜요?”
“혹시 사고가 뭔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해?”
“네? 그게 무슨?”
나라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건 그저 버드 스트라이크였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는 사고였을 뿐이었다.
“전에 강지아 씨가 했던 말 기억해?”
“어떤?”
“자신의 짐에 대해서.”
“네? 그게 무슨?”
“자기가 가지고 오지 않은 짐이 있다는 거.”
진아의 말에 나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기억이 안 나니?”
“네. 잘 안 나요. 너무 오래 전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다들 그냥 넘어갈 일이니까. 그런데 우리 비행기에 대통령의 아들도 있는 거잖아.”
“그게 사실이에요?”
“그럼. 사무장님은 아시겠지.”
“그래요?”
나라는 혀를 살짝 내밀고 미간을 모았다.
“그럼 누구일까요? 라시우 씨는 다른 가족들하고 왔으니 아닐 거고. 이윤태 씨. 권윤한 씨. 그리고 표재율 씨? 이 정도일까요? 아 이 섬에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니.”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무장님은 원래 그 섬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렇다는 이야기는 우리랑 같이 있었던 그 셋이지.”
“그래요?”
“도대체 누구일까?”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그런 걸 따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럼 지금 선배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누가 일부러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건가요? 그런 거예요?”
“그럴 수도 있는 가능성이 아예 제로는 아니다. 뭐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거지. 무조건은 아니고.”
“에이. 설마요.”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진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네? 하지만.”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지.”
나라의 경고에 진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는 거였으니까.
“됐다. 잊어.”
“네?”
“괜히 이런 생각을 했다가 오만 생각도 더 나겠지. 나도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말을 한 거니까.”
진아가 별 것 아니라는 미소를 지었지만 나라는 입을 내밀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거 같았다.
“만일 그게 사실이면요?”
“응?”
“누가 사고를 낸 거면요?”
“에이. 아니야.”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고를 일으킬 이유는 되지 않을 거였다. 게다가 그건 누가 봐도 버드 스트라이크였다. 이미 자신도 새와 부딪치는 것을 봤으니까 당연한 거였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일부러 그럴 수 없을 거야. 미안.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정리하자.”
“네? 네. 알겠습니다.”
나라는 진아의 말을 따라 짐을 정리하면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미친 거니?”
“엄마.”
“미쳤구나?”
영부인의 차가운 말에 재희의 얼굴이 구겨졌다.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엄마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 제정신이 아니야.”
영부인은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네가 어떻게 그래?”
“뭐가요?”
“어떻게 네 아빠 편이야.”
“당연하죠.”
“뭐?”
재희의 단호한 말에 영부인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뭐라고? 도대체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부정을 저지른 건 네 아빠인데 어떻게 그래?”
“엄마 아직도 그래요?”
영부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딸은 오롯이 자신의 편이어야만 하는 거였다.
“너 어떻게 그래?”
“뭐가요?”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엄마.”
재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금 영부인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은 물건이 아니었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건 이건 내 선택이야.”
“안 돼.”
“왜요?”
“너는 어려.”
“뭐라고요?”
재희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늘 자신보다 동생을 아꼈다. 그래서 자신이 어른이길 바랐다.
“재호에게 모든 희망을 거세요.”
“네가 거기에 있으면 내 뜻이 망가지잖아.”
“왜 저는 엄마의 뜻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거죠.”
“내 딸이니까.”
“그럼 엄마도 저를 위해서 희생하세요.”
재희는 씩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제 엄마니까요.”
재희는 이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영부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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