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희망 3
“선배 너무 그 사람 말 다 들어주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진아의 지적에 지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도 있네.”
“선배.”
진아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러다 모두 다칠 거였다.
“그 여자 전문적인 지식 하나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도대체 뭘 맡기려는 건데요?”
“그럼 자기가 할래?”
“네? 뭘요?”
“이 섬 탐험.”
“선배!”
지웅의 말에 진아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웅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나는 그렇게 뭔가 나서서 할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강지아 씨가 무조건 응원을 하고 싶어지는 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을 믿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선배도 이미 아시는 거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선배 이상해요.”
진아의 말에 지웅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냥 너무 관대해서.”
“그럼 너도 행동해. 그럼 너에게도 관대할게.”
진아는 입술을 꽉 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지웅을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더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답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지웅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갈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아니요.”
윤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새로운 섬에 와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문제였다.
“사람들이 지치는 거.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일단 나부터도 그렇고. 뭐라도 하고 싶어요.”
“고마워.”
일단 이걸로 불편한 것은 해결이었다. 세 사람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이 될 거였다.
“그나저나 휴대전화가 전혀 켜지지 않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변수네요. 연락이 되지 않을 상황은 생각은 했지만 아예 휴대전화가 켜지지 않느다는 것은 확실히 사람들 사이에 불편한 뭔가가 될 거 같은데요.”
“그러게.”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다들 불안함을 느끼는데 이건 정말 큰 문제였다.
“그래도 뭐라도 해결이 되겠지.”
“그렇겠죠?”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윤한을 보고 씩 웃었다.
“세연이하고도 풀어.”
“풀긴 뭘 풀어요?”
“둘이 싸웠잖아.”
“그걸 아세요?”
“딱 보이거든.”
지아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면서 씩 웃자 윤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해보려고요.”
“그래. 그럼 나는 갈게.”
“네. 내일 같이 가요.”
“오케이. 알았어.”
윤한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복잡했다.
“세연 씨.”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였다.
“그래. 내가 또 숙여야지.”
윤한은 아랫입술을 물고 씩 웃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하는 겁니까?”
윤한이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옆에 앉자 세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한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지 마요. 맹세연 씨가 다른 곳에 가면 나는 또 맹세연 씨를 따라서 일어나야 해. 그거 너무 힘들잖아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좋아해요.”
윤한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세연의 눈이 커다래졌다.
“뭐라는 거죠?”
“맹세연 씨를 좋아한다고요.”
윤한의 고백에 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런 건 아니에요. 우리 두 사람 헤어진 거야. 이미 헤어졌는데 도대체 무슨 대화를 더 해요?”
“나는 안 헤어졌어요.”
“나는 헤어졌다고요!”
세연의 악다구니에 윤한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세연 씨. 섬의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어요. 그렇기 떄문에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힘든 순간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거. 그게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윤한 씨랑 뭘 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이상해요.”
“안 이상해요.”
윤한의 다정한 대답에 세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지 마요.”
“뭘 그러지 마요?”
“어차피 윤한 씨도 나를 떠날 거잖아.”
세연의 말에 윤한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아니요.”
세연은 윤한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돌아섰다. 윤한은 잠시 망설이다 세연의 손을 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
“미안해요.”
“미안하면 놔요.”
“그러지 마요.”
“권윤한 씨.”
“맹세연 씨 슬퍼하지 마요.”
윤한의 말에 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하나도 모르면서 뭐라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싫었다.
“윤한 씨 나에 대해서 모르잖아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잖아요. 그래놓고서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럼 알면 되는 거죠.”
윤한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답했다. 세연은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저었다.
“윤한 씨도 나를 싫어할 거야.”
“그 전에 세연 씨가 나를 싫어할 걸요?”
“뭐라고요?”
“나도 내 곁에 오래 있었던 사람 없거든요. 그러니까 나를 밀어내려고 하면 뭔가 다른 이유가 필요할 걸요? 그러니까 그렇게 가지 마요.”
세연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윤한의 눈을 보더니 미간을 모으고 검지로 가슴을 쿡 찔렀다.
“뭐 하자는 거예요?”
“연애하자는 거.”
“수작이죠?”
“수작이죠.”
윤한의 간단한 대답에 멍하니 있던 세연이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 입을 막고 미간을 모았다.
“뭐 하는 거야. 정말 싫어.”
“맹세연 씨가 좋아요.”
“그런 말 하지 마요.”
“진짜 좋아요.”
윤한의 고백에 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입술을 살짝 내밀다 혀로 아랫입술을 축였다
“권윤한 씨가 나를 몰라서 그래요. 사람들은 아무도 나랑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도 먼저 이 비행을 한 거고요.”
“내가 있잖아요.”
“뭐라고요?”
“내가 맹세연 씨와 함께 있으려고 하잖아요. 그거면 되는 거 아니에요? 다른 게 더 필요한가?”
세연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윤한은 그런 세연의 눈을 보고 씩 웃었다.
“맹세연 씨. 조금 더 자신을 좋아해도 돼요.”
“나는 나를 이미 좋아하거든요.”
“그럼 된 거고요.”
윤한의 간단한 대답에 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앞으로 또 이럴 건데.”
“얼마든 받아줄게요.”
“정말이요?”
“그럼요.”
세연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힘들었다.
“아. 그리고 내일 누나랑 같이 섬 탐사하기로 했어요.”
“여기서도요?”
“그럼요. 여기에서도 해야죠.”
“그럼.”
세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들었다.
“그럼 나도 갈래요.”
“뭐라고요? 안 돼요.”
“왜요?”
“위험해요.”
“하나도 안 위험해요.”
윤한의 말에 세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윤한은 미간을 모았지만 세연은 그저 밝은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추경 통과가 요원할 거 같습니다.”
“이건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예비비라거나. 뭐든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비서관의 말에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냈다.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돈이라는 게 이럴 때도 발목을 잡는군요.”
“그렇죠.”
“돈이라.”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뭘 하려고 하더라도 이렇게 어려운 것이 많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에는 대통령이 되면 많은 권력을 쥘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손에 쥔 게 없습니다.”
“휘두르시지 않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대통령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신호는요?”
“그 이후에 잡히지 않습니다.”
“잡히지 않는다.”
그들이 적어도 문자 메시지라도 확인하면 밀어붙일 힘이 될 거였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거기에 가만히 있는 걸까요? 그 섬의 사람들은 왜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을까요?”
“지쳤을 겁니다.”
“지치다니.”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지칠지 모르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들에게 힘을 줄 방법을 찾아야죠.”
“힘을 줄 방법이라.”
하지만 위성에서 잡히는 SOS 글자도 더 이상 크기가 변하지 않았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만일 가면 그 섬으로 가는 거죠?”
“네. 가장 먼 섬이요.”
“그렇군요.”
일단 그 섬에 가서 누구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일 거였다. 그게 어떤 동력이 될 거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게 망가질 거였다.
“잘 될 겁니다.”
대통령은 비서관에게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물러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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